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현직 대통령의 장모는 어쩌다 법정 구속됐나

道雨 2023. 8. 11. 18:37

현직 대통령의 장모는 어쩌다 법정 구속됐나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법정 구속됐다. 〈시사IN〉은 최은순씨의 1심과 항소심 판결문, 이 사건 이해관계자의 소송 판결문 및 재판 기록 등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 7월21일 의정부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된 최은순씨(왼쪽 두 번째)의 항소를 기각하고 법정 구속했다.ⓒ연합뉴스

 

 

 

“장모 사건, 300억원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 아십니까. 피해자 9명이 저를 찾아오셔서 윤석열 지검장 장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장모 대리인은 구속돼 있는데 주범인 장모는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사건 은폐 배후에 윤 지검장이 있다’라고 온 데를 돌아다니면서 피해자들이 말씀을 하세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본인 문제예요. 장모 문제가 아니라. 상당한 증거, 팩트가 있거든요.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018년 10월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장제원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제기한 장모 최은순씨 관련 의혹이다. 장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위조됐다’는 잔고증명서를 화면에 띄우고 관련 의혹을 상세히 설명했다.

의혹 속 이해관계자들의 소송전이 잇따르면서 알려진,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었지만,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이 문제가 제기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윤석열 당시 지검장은 “그런 사건이 있는지도 몰랐다”라며 부인했다.

 

“저를 법정 구속시킨다고요? 판사님, 그건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약이라도 먹고 죽고 싶습니다. 이건 절대 안 됩니다. 세상에 하나님.”

 

7월21일 의정부지방법원 제3형사부(부장판사 이성균)는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된 최은순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법정 구속했다. 장 의원이 5년 전 제기한 의혹 일부가 그대로 인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같은 판단을 내리면서, 감형 없이 징역 1년도 그대로 유지했다.

현직 대통령의 장모가 법정 구속된 건 처음이다.

최은순씨는 7월2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상고심은 법률심이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실심과 달리 원심 판결의 법령 위배 등을 심사한다. 1심과 항소심 법원을 거치며 확정된 사실관계들은 ‘움직이지 않는 사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판결문 속 사실관계들을 통해 그동안 제기된 잔고증명서 관련 의혹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법원 판단으로 비춰보면 외면할 수 없는, 되짚어봐야 할 쟁점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다.

 

* 2018년 10월19일 장제원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장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연합뉴스

 

 

 

최은순씨의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거액이 쪼개져 오갔고, 얽혀 있는 소송과 이해관계자가 많다.

 

의혹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2013년 동업자 안 아무개씨와 부동산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신안저축은행 통장 잔고증명서를 위조해 사용했고, 이 증명서가 허위임을 최씨가 인정했는데도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이 의혹이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2018~2021년에는 최씨가 수사를 받지 않은 배경에 검사 사위(윤석열 대통령)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 의혹의 불씨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은 2015년 최은순씨가 안씨를 사기 혐의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고소한 사건에서 처음 불거졌다. 당시 최씨는 안씨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근무 경험이 있고 그곳에 지인도 많아, 캠코가 관리하는 땅을 수의계약 형태로 낙찰받을 수 있다고 자신을 속이며 투자를 제안해 계약금 등 수십억 원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2016년 안씨의 캠코 근무 이력 등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판단해, 구속한 뒤 재판에 넘겼다. 안씨는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그런데 안씨 사건의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고소인’ 최은순씨에 대한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최씨가 자신의 신안저축은행 통장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안씨의 사기 사건 판결문에는 총 4장의 신안저축은행 통장 잔고증명서가 등장한다. 3장의 예금주는 최은순씨고, 나머지 1장의 예금주는 최씨 관계회사였다.

이 4장의 잔고증명서에는 각각 △2013년 4월1일 100억원 △6월24일 71억원 △10월2일 38억원 △10월11일 138억원의 예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적혀 있다.

 

2015년 6월 최씨로부터 고소를 당한 안씨가 뒤늦게 금융감독원에 잔고증명서 진위 확인을 요청한 결과, 신안저축은행이 발행한 서류도 아니었고, 은행이 사용하는 문서 형식도 아니었다. 안씨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를 문제 삼자, 최씨는 이들 잔고증명서가 위조됐다고 인정했다. ‘문제가 된다면 처벌받겠다’라고도 진술했다.

 

안씨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6년 7월에는 잔고증명서로 인한 ‘피해자’도 나왔다. 안씨가 가져온 최씨 통장 잔고증명서를 보고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 한 개인사업자가 최은순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이유는 검찰의 판단과 최씨, 안씨 주장이 엇갈린다.

안씨 사건 판결문과 앞서의 최씨 항소심 판결문, 재판 기록 등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검찰: 안씨가 ‘캠코 인사에게 부동산 정보를 얻으려면 재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동업자와 공모해 통장 잔고증명서를 위조했다.

②최씨: 안씨가 캠코 인사나 ‘전주’에게 비공식적으로 보여주기만 한다며 허위로라도 만들어오라고 요청했다.

③안씨: 최씨에게 위조 잔고증명서를 만들어오라고 요청한 적 없고 오히려 최씨에게 속았다.

 

 

최씨와 안씨에 대한 법원 판단을 종합하면, 안씨는 사업 과정에서 최씨와 공모해 허위로 잔고증명서를 만들었다. 최씨를 대리해 부동산 매매계약과 이와 관련한 민사소송, 개인사업자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등에 사용했다. 쉽게 말해 ‘잔금을 치르거나 대출금을 갚을 동업자(최씨)가 재력이 있어, 돈 떼일 일 없으니 안심하라’는 취지로 활용한 것이다.

 

잔고증명서가 위조된 2013년 당시, 최씨와 안씨는 여러 건의 사업으로 얽혀 있었다. 최씨는 일부 사업에선 단순 투자자격으로 참여했지만, 위조된 잔고증명서가 사용된 사업은 안씨와 동업자 관계로 보인다는 설명이 안씨 사건 판결문에 적혀 있다. 최씨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은 안씨에 대한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았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검찰 수사로 번져 이번 최씨 항소심 선고까지 이르렀다.

 

■ 사건의 전말

잔고증명서가 사용된 사업은 2013년 1월부터 시작된, 최은순씨와 안씨가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땅 6필지(농지 2필지+임야 4필지)를 매입하기로 한 부동산 매매계약이다. 6필지 면적의 합은 약 55만3000㎡, 여의도 면적의 약 5분의 1이었다. 최씨와 안씨는 이 땅을 40억원에 사기로 했다.

최씨와 안씨는 도촌동 땅 매입 과정에서 두 차례 실패를 겪었다. 2013년 1월 시도한 첫 번째 토지 매매계약 당시, 최은순씨는 토지거래 허가를 받기 위해 성남시에 사는 아들의 지인을 차명 매수인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등기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름을 빌려준 차명 매수인이 부담을 느껴 허가 절차에 협조하지 않았다.

 

최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토지 소유주(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2013년 4월2일, 잔금(약 36억원) 납부 약정일이 지났음에도 최씨와 안씨가 거래 허가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몰취(국고에 귀속)한다고 통보했다. 당시 최씨와 안씨가 낸 계약금은 4억원. 최씨(3억원)와 또 다른 동업자(1억원) A씨가 마련해온 돈이었다.

 

최씨와 안씨는 토지 소유주를 만나 계약해제 통보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소유주는 요청을 거절하면서도 ‘형식적으로라도 소송을 제기하면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2013년 5월13일, 최씨와 안씨는 소유주를 상대로 계약금 4억원의 반환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 최씨와 안씨는 법원에 최씨 명의의 통장 잔고증명서와, 이 증명서가 사실이라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2013년 4월1일 만든 첫 번째 위조 잔고증명서였다.

 

 

 

 

두 번째 도촌동 땅 매매계약 시도는 2013년 6월이었다. 민사소송 진행 중 토지 소유주에게 계약금 4억5000만원을 주고 계약을 재추진했다.

그러나 2차 시도는 안씨의 과실로 무산됐다. 안씨가 사채업자로부터 잔금을 빌려오기로 했지만 실패했다. 계약은 무산되고 계약금도 몰취됐다. 몰취된 계약금은 전부 앞서 1차 계약 당시 계약금을 낸 다른 동업자 A씨가 마련해온 돈이었다. 최씨와 안씨는 잔금을 마련하던 시기, 두 번째 잔고증명서를 위조했다.

 

2013년 10월21일 3차 시도에서 계약이 체결됐다. 이번에는 최씨와 안씨가 도촌동 땅을 담보로 신안저축은행에서 48억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 형식 프로젝트 파이낸스 대출을 받았다. 여기서 36억원을 꺼내 잔금(3차 시도 당시 계약금 4억원은, 앞서의 다른 동업자 A씨가 전부 납부했다)을 냈다.

최씨와 안씨는 차명 소유주를 내세워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안씨의 사위와 최씨와 관계된 한 회사가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가진 것으로 등기했다.

세 번째 계약 시도 과정에서도 잔고증명서가 추가로 위조됐다.

마이너스 통장의 빚은 최은순씨 측과 동업자 안씨 측이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이자를 내다가 땅을 되팔아 시세차익이 생기면 대출금을 갚을 계획이었다. 실제 최씨와 안씨에게 땅을 사겠다는 제안은 금방 여러 곳에서 들어왔다.

 

그런데 당시 토지 매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지분 절반을 가진 최씨가 ‘일방적으로’ 토지 매도계약에 협조하지 않았다. 이는 앞서의 안씨 사기 사건 항소심 판결문에서 확인된다.

재판부는 도촌동 땅 사업을 언급하며 이렇게 밝혔다.

“피고인(안씨)은 3차 매매계약 체결 이후 건설사와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등 부동산을 전매하기 위해 노력했다. 피고인이 부동산을 팔아 차익을 얻지 못한 것은 최은순씨가 매매계약을 일방적으로 불이행했기 때문이다. (도촌동 사업에서) 피고인에게 특별히 귀책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안씨 사기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도촌동 사업에 대해서는 안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도촌동 땅 매도 계획이 미뤄지면서, 안씨는 최씨와 함께 만든 앞서의 마이너스 통장 이자조차 내지 못했다. 당시 마이너스 통장에는 잔액이 12억원가량 남아 있어, 안씨는 이 돈으로라도 이자를 내려고 했으나 최씨가 반대했다.

2015년 7월, 한 회사가 나타났다. 안씨의 이자 연체로 부실화된 최씨와 안씨 채권(마이너스 통장)을 48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이 회사는 ESI&D. 최은순씨가 대표이사를 맡았고(2004~2014년), 이후 최씨의 아들이 대표직을 넘겨받은 최씨의 가족회사다.

■ 동업자 배제

최은순씨가 빚을 지고 보유한 토지를, 가족회사가 사들이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안씨와 도촌동 땅을 매입하면서 소유주(안씨 사위와 최씨 관계회사)를 차명으로 내세워뒀기 때문이다. ESI&D가 채권을 사들이고 한 달이 지난 2015년 8월, 도촌동 땅의 안씨 지분이 경매시장에 나왔다. 당시 토지에 대한 감정가는 90억원. 그러나 계속 유찰되면서 33억원까지 떨어졌고, 2016년 7월 이 가격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ESI&D였다.

안씨는 경매 과정에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2015년 최씨가 안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고, 2016년 구속돼서다. 동업자 지분까지 모두 가지게 된 최씨는 도촌동 땅을 전부 매각했다. 경매가 끝나기 전인 2016년 4월1일 먼저 자신의 지분 절반을 팔았다. 앞서 도촌동 땅 1~3차 계약 당시 계약금을 낸 다른 동업자가 26억원에 샀다. 2016년 11월에는 최씨와 다른 동업자 지분, ESI&D가 경매로 낙찰받은 안씨 지분 등 도촌동 땅 6필지 전부가 다른 법인에 매각됐다. 매각 대금은 130억원이었다.

최씨가 도촌동 땅 투자로 낸 실제 수익은 법원 판결문과 재판 기록 등만으로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대출이자와 거래비용 등이 있어서다. 다만 앞서의 과정을 정리해보면, 최씨가 도촌동 사업을 위해 직접 투자한 자신의 돈은 3억원. 몰취된 1차 계약금이다.

 

2020년 3월27일, 최은순씨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을 수사한 의정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효상)는 최씨를 재판에 넘기며 다음과 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①동업자 안 아무개씨와 공모해 2013년 4차례에 걸쳐 통장에 거액(4개 증명서 총합 347억원, 사문서 위조)이 있는 것처럼 잔고증명서 위조

②위조 잔고증명서 중 하나를 민사소송 중 법원에 제출해 사용(위조 사문서 행사)

③다른 사람 명의로 부동산 소유(부동산실명법 위반).

 

최씨는 재판 과정에서 ①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만 인정했고 ②사문서 행사와 ③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는 부인했다. 그러나 법원은 세 가지 혐의 모두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021년 12월23일 의정부지법 형사8단독 박세황 판사(1심)는 최은순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판시했다.

 

“최씨는 부동산 차명 소유주를 직접 섭외했고,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직접 부탁했다. 차명으로 부동산을 매입해 상당한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위조된 잔고증명서를 민사 법원에 제출했고, 함께 낸 최씨 명의 사실확인서에 직접 서명한 것으로 볼 때, 최씨가 안씨와 공모해 위조된 잔고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해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위조한 잔고증명서의 액수가 거액이고 수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범행했으며, 이 잔고증명서를 증거로 제출해 재판 공정성을 저해하려 했다.”

 

최근 선고된 항소심 판단도 1심과 다르지 않다. 최씨에게 적용된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최은순씨)이 주도해 막대한 이익이 실현되는 동안, 관련 개인과 회사가 피고인의 뜻에 따라 이용당했다. 자신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경도된 나머지 법과 제도, 사람이 수단화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원심의 형은 적정하고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인정할 수 없다. 피고인의 관여를 부정하기 어려움에도 피고인은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부정하고 있다. 동업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 태도 또한 좋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동업자 안씨는 최은순씨와 분리돼 따로 재판을 받았다.

안씨 또한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남은 쟁점들

최은순씨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검찰의 수사 지연과 혐의 축소 기소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잔고증명서 위조 경위와 사용에 대해서는 최은순씨와 동업자 안씨의 주장이 엇갈렸다. 최씨는 안씨가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위조했고,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최씨에게 위조를 요구한 적 없다고 맞받아왔다.

다만 이와 별개로 문제의 잔고증명서가 허위라는 점은 양측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최씨가 안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할 당시 검찰이 확인한 일이었던 만큼,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 최은순씨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적용된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시사IN 신선영

 

 

다만 검찰과 법조계 안팎에선 안씨 사기 사건 수사 당시에는 최씨의 잔고증명서 위조 행위를 인지수사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고소 사건(사기 혐의)에서 고소인(최은순씨) 범죄를 인지수사하면, 사실상 사건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러한 경우에는 피고소인(안씨) 등에게 별도로 고소나 고발을 하라고 안내하는데, 당시 별도 안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된 2018년 장제원 의원의 국정감사 질의 이후에도, 2020년 3월 검찰 기소하기까지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이 시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직을 맡던 때라 ‘수사 무마’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의혹에 대한 검찰의 답은 2018년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장제원 의원 질의에 “잔고증명서 관련 피해를 본 사람이 있으면 고소를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고소·고발된 게 없으니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을 뿐, 자신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거나 무마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2018년과 2020년 사이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해 표창장 위조 혐의 등에 대해 수사했다. 안씨 사기 사건 때와 달리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되고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된 만큼 충분히 인지수사 여건은 마련돼 있었다. 고소·고발이 없어 수사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으로 비춰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 검찰 관계자는 “조국 전 장관 사건도 고소·고발이 이뤄진 이후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라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법원은 검찰의 혐의 축소 기소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검찰은 최씨가 민사소송에 위조 증명서를 제출한 1건에만 위조 증명서 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2022년 공판 과정에서 “(최씨와 달리) 안씨에 대해서는 2013년 6월24일 위조된 잔고증명서를 사채업자들에게 두 차례 제시하는 등 사용한 혐의를 적용했다.

사채업자들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씨 역시 위조 잔고증명서 행사 범행에 개입돼 있다고 주장한다.

 

최씨를 기소 대상에서 아예 제외한 것은 다소 의문이 있다. 검찰이 안씨가 최씨 동의 없이 단독으로 위조된 사문서를 행사했다고 범죄 사실을 정리한 이유, 법정에서 관련자 증언이 있은 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별다른 의견이나 추가 입증 계획 등을 밝히지 않았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 범위를 잔고증명서 위조에만 맞추면서, 도촌동 사업 과정에서의 일부 석연치 않은 정황들은 법원에서 다뤄질 수 없었다. 최은순씨 가족회사 ESI&D가 도촌동 땅 사업에 참여한 과정이 대표적이다. ESI&D가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고, 대표이사직은 내려놨지만 여전히 이 회사에 지분을 가지고 있던 최씨가 당시 거래에 얼마나 개입돼 있었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최은순씨 법정 구속에 침묵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14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내 장모가 50억원 정도 사기를 당했다”라고 말했다. 2021년 6월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 장모가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 없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온 법원 판단들을 종합하면, 최씨가 안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은 일부 사실이지만, 법정 구속된 도촌동 사업에서는 동업자였다.

땅을 사고파는 방식도 사실상 투기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조 잔고증명서로 인한 피해자가 나온 데다, 재판 과정에도 활용하면서 법원을 속이려 하기도 했던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침묵보다 적극적 해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밖에 최씨 항소심 선고 이후 김건희 여사의 이름도 입길에 오르고 있다.

최씨에게 잔고증명서를 위조해준 인물 김 아무개씨는 김건희 여사 지인이다. 김씨는 김 여사가 대표로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에서 2012년 3월~2015년 3월 감사직을 맡았다.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시기(2013년)와 겹친다.

 

그는 김건희 여사를 2010년께부터 알고 지냈고, 이후 2012년 코바나컨텐츠 전시에서 최은순씨를 만났다. 김씨는 2022년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여사 추천’으로 참석했다. 김씨는 최은순씨가 도촌동 땅 지분 절반을 가졌을 당시 내세운 차명 소유주인 법인의 대표를 최씨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금융권 출신 김씨는 검찰 수사에서 잔고증명서는 인터넷에서 양식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검찰과 법원에서 잔고증명서 위조와 차명 소유주 소개에는 금전적 보상 등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씨는 2013년 6월 자신이 임원을 지낸 회사에서 대규모 수입차 렌트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 추진 두 달 전 설립된 신생 회사였는데도 차량 50대를 공급받았다. 자동차를 공급해준 회사는 도이치모터스였다.

도이치모터스는 김건희 여사의 10년에 걸친 주식거래와 코바나컨텐츠 협찬 등 특수관계로 알려진 회사다.

허위 잔고증명서를 만든 김씨는, 사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최은순씨와 함께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2020년 3월27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고,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문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