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대통령적 제왕’의 시대착오적 언어

道雨 2023. 8. 30. 12:20

‘대통령적 제왕’의 시대착오적 언어

 

 

 

“지금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대통령적 제왕제다.”

 

얼마 전 한 토론회에서 이 말을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이보다 현재 이 나라의 상황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겠는가.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수장이 아니라, 중세시대 절대군주처럼 행동한다. 누구도 대통령을 막을 수 없고, 어떤 기구도 대통령을 제어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원리인 삼권 분립이 이리도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검찰과 경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을 통치의 전면에 내세웠으며, 야당이 180석으로 다수인 입법부조차 대통령의 폭주를 막아내지 못한다.

세계가 경탄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대통령의 허울을 쓴 제왕’에 의해 하릴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만 시대에 역행하는 ‘제왕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고색창연하고 시대착오적이다. 지난 8월15일 광복절 기념사를 보라.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

‘위장’, ‘허위 선동’, ‘공작’ 등 냉전 시대의 폭력적 언어를 한 문장에 담아내는 재주도 놀랍지만,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는 ‘공산전체주의’라는 말을 ‘발명’한 데에는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산전체주의라니, 이런 말이 어디에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보면, ‘공산전체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대구를 이루는 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새로이 형성된 신냉전체제, 그러니까 한국-미국-일본과 북한-중국-러시아의 대립 구도를 염두에 두고, 전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후자는 공산전체주의 체제라고 대립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이다. 지금 공산주의 체제가 지구상 어디에 있는가. 중국이 과연 공산주의 체제인가.

 

몇해 전 베이징 대학에서 직접 경험한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체제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고 정의한다. 당시 학술심포지엄 자리에서 중국 학자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참다못해 내가 반박했다.

“대중들을 상대로 쓰는 프로파간다의 언어를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학문에 대한 모독이다. 냉정하게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 체제가 어떻게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중국 특색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가.”

이 말이 끝나자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들의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을 외국 학자가 대신 해준 것에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러시아는 다른가.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될 때 공산주의 체제도 함께 붕괴했다. 당시 인민 소유 국영기업들을 민영화,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주요 정보를 독점한 소련 정보기관(KGB) 요원들이 막대한 부를 쌓아 신흥 자본가로 변신했다. 이 새로운 특권계급 ‘올리가키’의 우두머리가 바로 푸틴이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은이 소망하는 미래는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국가적 비전으로서 오래전부터 ‘베트남 모델’과 ‘중국 모델’을 연구해왔다.

 

이 세상 어디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없다.

그렇다면 ‘공산전체주의’는 존재하는가.

이것 또한 역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전체주의’는 알다시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고안한 개념이다.

아렌트는 소련의 스탈린주의나 독일의 나치즘이 개인보다는 전체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체제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테러적 지배 형태인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공포적 지배체제인 스탈리니즘은 전체주의라는 동일한 특성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전체주의라는 말에는 이처럼 공산주의 비판과 함께 자본주의 비판이 내장되어 있다. 그러니 공산전체주의라는 말은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윤 대통령의 ‘아무 말 잔치’는 특히 교육자들에게는 크나큰 도전이자 시련이다. 제왕처럼 군림하는 막강한 권력자가 이처럼 말도 되지 않는 용어를 수시로 내뱉는다면, 도대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란 말인가.

 

19세기 중반 카를 마르크스는 ‘유럽에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라고 ‘공산당선언’에서 천명했다.

21세기에 대한민국의 제왕은 제2의 공산당선언을 설파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공산주의의 유령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절대권력자처럼 행세하는 대통령적 제왕의 시대착오적 언사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나라를 더욱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걱정이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