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안보는 억제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道雨 2024. 2. 19. 10:07

안보는 억제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 한·미 해군 및 일본 해상자위대는 지난달 15일부터 17일까지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한·미·일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오른쪽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한국 해군 구축함 왕건함,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곤고함, 미국 해군 항공모함 칼빈슨함,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 미국 해군 순양함 프린스턴함,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키드함. 미 해군 제공
 

 

 

 

미국 내에서 한반도 위기론이 대두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지난 1월 미국 내에서 북한 관련 최대 검색어는 ‘북한과의 전쟁’ 혹은 ‘북한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가’였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다음은 대만이 아니라 한반도라는 말들이 반복된다. 그만큼 코리아 리스크는 커졌고, 한국 증시도 내림세를 보였다.

 

정부 태도는 단호하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공조를 통해 충분한 대북 억제력을 갖추고 있고 북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도 한·미 확장억제 강화를 통해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인사들과 전문가들 또한 남북 간에 미미한 군사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한·미 억제력으로 대규모 전쟁 발발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최근 김정은의 전쟁 결정론을 제기하며 시선을 끌었던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는 한국과 미국이 ‘억제력에 최면이 걸렸다’고 지적하며,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실 억제(deterrence)라는 용어는 ‘공포에서 벗어난다’(de-terrere)는 말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강력한 억제력에도 한반도의 안보 불안과 공포감은 오히려 가중되는 분위기다. 이를테면 억제의 역행 현상이다. 왜 그럴까?

 

대북 억제전략의 성격 변화에서 그 일차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전통적 대북 억제전략은 북이 남쪽에 군사행동을 감행했을 때 득보다 실이 훨씬 크리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확전 관리’(escalation management)에 기초해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강조되고 있는 것은 북의 도발이 있을 경우 확전을 감수하더라도 훨씬 압도적인 피해를 가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 ‘확전 우세’(escalation dominance) 전략이다. 선제타격이나 대량응징보복, 참수작전 등 적극적 혹은 공세적 성격의 억제수단이 대표적이다. 한·미 간 확장억제 논의가 제도화하면서 강화된 대북 핵 억제력 또한 같은 맥락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은 군사적 억제에 그치지 않고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같이 외교, 군사적 수단을 통해 북한의 정책 행태를 변경하려는 강압(compellence) 전략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공세적 억제와 강압 전략에 대해, 북한은 핵미사일 전력 강화 등을 통해 맞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강 대 강 구도 아래에서 군사력 확충 경쟁은 심화하고 전략적 불안정은 고조되기 마련이다.

 

억제와 재보장(reassurance) 사이의 모순 또한 대북 억제력의 역기능을 가져오는 요인이다. 억제력은 국가별로 인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대북 억제력에 대해 합리적 충분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란 어렵다.

미국의 국방 당국자들은 대체로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및 핵 억제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놀랍게도 북한 역시 같은 시각인 것 같다.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취약성을 보일 때 미국은 언제든지 평양을 타격할 능력과 의도,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한·미 연합 훈련의 강화나 전략무기의 한반도 배치 등 미국의 대북 군사태세가 조금이라도 강화되면, 북한은 이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핵미사일 전력 증강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국의 대북 억제력과 안보공약에 대해 거의 언제나 회의론이 그치지 않는다. 핵 확장억제의 심화에 대한 지속적 요구가 이를 반영한다.

게다가 미국 국내정치의 가변성 또한 이러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의 의구심과 불만을 무마하고자 미국은 더 강도 높은 재보장 조처를 취하게 되고, 이는 다시 북한의 강한 반발로 이어진다.

이 악순환이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을 해친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확실히 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을 먼저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확신시키는 ‘이중적 안전보장’(double assurance) 조처는 실행하기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군사적 억제력의 강화만으로 한반도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와 안보를 일거에 담보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안보 불안을 일시적으로 경감하는 미봉책에 가깝다.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선 안보 딜레마의 끝없는 악순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억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억제와 강압을 뛰어넘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안보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억제와 교섭의 두 날개가 모두 필요하다는, 국제정치학의 오래된 명제를 되돌아볼 시점이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