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폐지 결론”, 조세정의 역행하는 민주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정부·여당이 밀어붙여온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2020년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금투세는 시행 한달여를 앞두고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올바른 정책도 정략적 이해에 따라 쉽게 뒤집어진다는 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정이다.
이 대표는 금투세 폐지 동의 이유로 몇가지를 들었는데 모두 납득하기 어렵다. 이 대표는 “원칙을 따지면, 금투세를 개선한 후에 시행하는 것이 맞다”며, 면세한도 상향 등 개선안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걸로는 한국 증시의 구조적 위험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며, 1500만 투자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금투세를 시행하면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금투세에 반대하는 세력의 ‘공포 마케팅’일 뿐이다. 주요국들은 모두 세금을 거둬도 주식시장이 멀쩡한데, 규모가 세계 12위인 한국 시장만 폭락한다는 건 현실을 왜곡한 것일 뿐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다.
이 대표는 “이 문제를 유예하거나 개선 시행을 하겠다고 하면 끊임없이 정쟁 수단이 될 것 같다”는 이유도 들었다. 2~3년 유예를 할 경우, 차기 대선 국면에서 또 발목이 잡힐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란 갈등 사안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조정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인데, 선거에 불리할 것 같으니 아예 제도를 없애겠다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주식세제는 1979년부터 증권거래세만 물리다, 1999년 대주주의 주식양도차익 과세부터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해왔다. 100억원 이상 투자자부터 시작해 50억, 20억, 10억 이렇게 늘려오다 금투세 도입까지 이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금투세 폐지를 들고나오면서 모든 게 엉망이 돼버렸다. 이를 야당인 민주당이 제어해야 하는데, 방기한 것이다.
정부는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계획된 거래세 인하·폐지도 되돌릴 수 없다고 하는데 황당하다. 금투세를 폐지한다면 최소한 거래세는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래세(코스피 기준)도 없고, 대주주를 제외하곤 자본이득세도 없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시장이 될 판이다.
정부와 거대 양당의 각성을 촉구한다.
[ 2024. 11. 5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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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투자자 표심 의식…갈지자 행보 끝 금투세 폐지
민주당이 도입한 금투세 4년 만에 폐지
유예 시사→보완 시행→결국 폐지
공평 과세 원칙-개미 공포 사이서
오락가락 하다 게도 구럭도 놓쳐
“금융투자소득세 시행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의 갈팡질팡 행보는 결국 부자감세 동조로 귀결됐다. 신뢰와 (민주당의) 강령, 정체성을 훼손한 채, 결국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결정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규탄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4일 금투세 폐지를 당론으로 공식화한 직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복지재정위원회,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 단체는 이런 성명을 내놨다.
‘투자자 표심’을 의식해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금투세를 시행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없애겠다고 한 것은 물론,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민주당의 조세 원칙마저 허물어버렸다는 비판이다.
이 대표는 “원칙과 가치를 저버렸다는 개혁·진보 진영의 비판, 비난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당 안팎에선 이번 금투세 폐지 결정이 실리도 명분도 불분명한데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 관리에도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던 금투세를 두고 야당 안에서 회의론이 고개를 든 건 4개월 전이다. 이 대표가 8·18 전당대회를 앞두고 7월10일 ‘유예’를 시사한 게 시작이었다. 2022년 연말 여당에 등 떠밀린 모양새로 2년 유예에 합의한 데 이어, 2027년 대선을 바라보는 이 대표가 근거가 부족한 ‘증시 폭망설’에 기댄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에 편승한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정치 이슈 많은 날 발표해 뒷말도
“상법 개정 처리로 진정성 입증을”
이 대표는 논란이 일자 ‘보완 시행’으로 입장을 틀었다가, 당내 토론과 의원총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이날까지 입장을 함구해왔다. 하지만 이 대표가 넉달 가까이 좌고우면하면서 결정에 이르는 과정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 9월 이뤄진 민주당의 금투세 찬반 토론회는 ‘답이 정해진 역할극’이란 논란을 불러왔고, 시행팀(찬성팀)에서 “주가가 내릴 것 같으면 인버스(특정 지수 하락에 베팅)에 투자하라”는 돌출 발언이 나오면서 개미 투자자들의 거센 비판과 여론 악화만 불러왔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를 두고 “집권 여당도 아닌 야당이 비판을 의식해 정책을 놓고 오락가락하며 게도 구럭도 놓친 형국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다소 전격적으로 이뤄진 입장 발표를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공천 개입’ 의혹으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게 눈길이 쏠린 시기에 숙제를 해치우듯 입장을 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조국혁신당 관계자는 “중요한 정책인 만큼 책임 있게 발표하는 게 맞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등 여러 정치 뉴스가 많은 날 슬그머니 흘려보내듯 밝힌 태도가 정정당당하지 않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금투세 시행에 앞서 자본시장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만큼, 상법 개정안 처리 등에 제대로 총대를 메야만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을 거란 지적이 나왔다. 각종 특검 등 정치 현안만큼 상법 개정안도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상법 개정의 구체적 일정을 밝힐 때 이 대표의 ‘고뇌에 찬 결단’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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