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좌절,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
현시점 우리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정서적 양극화’라는 용어로 정리된다.
이념적, 정책적 차이에 기반한 양극화와 달리, 정서적 양극화는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인 집단논리로 정치적 대상을 구분하고, 상대방을 타자화함으로써 극단적인 정파적 갈등이 유발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정당 간 갈등은 이념이나 정책적인 내용의 차이에 기반하기보다는, ‘내집단’에 대한 무비판적 호의와 ‘외집단’에 대한 맹목적 반감에 따라 형성된다.
작금에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논란은, 양극화로 정당 간 갈등이 극대화되어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상황 속에서도, 이에 줄곧 비판적이었던 국민의힘에 더불어민주당이 동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극심한 당파적 갈등의 시대 속에서 실로 아이러니해 보이는 현상이다.
초당적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금투세 폐지 주장은, 우리의 정파적 양극화가 더 이상 이념과 정책적 차이에 기반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애초에 금투세 도입은 문재인 정부 시기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추진되었다. 과세 형평성과 세원 확대를 위해 5천만원 이상의 금융투자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금투세는, 2020년 6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여, 2023년 1월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시행을 앞둔 금투세의 도입을 금융시장 위축을 이유로 2년간 유예하였고, 유예기간 종료가 임박한 2024년 11월4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 폐지에 공개적으로 동의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금투세를 둘러싼 세부적인 논란을 차치하고, 이러한 상황 전개는 민주당, 특히 이재명 대표의 입장 선회에 따른 것이다.
금투세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현실에서 이의 완화를 위한 방편으로 그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근로소득과 달리 비과세 대상이던 금융투자소득은, 일부 극도의 위험 부담을 안고 있는 투기성 투자를 제외하면 투자자금의 보유 여부가 중요한 전제이며, 특히 5천만원 이상의 투자소득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투자자금의 투입이 불가피하다.
결국 금투세 부과는 일부 고소득층과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이의 도입을 주저하는 정당의 입장은 과세 형평성보다는 고소득, 고액 자산가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염두에 둔 정책적 판단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금투세 도입 폐지는, 경제적인 불황 속에서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해 그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는 정부의 복지 지출을 위한 세원 확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런 맥락에서 금투세 도입 폐지는, 경제적 불평등 완화와 복지를 위한 세원 확보를 지체시킴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하는 정부의 공적 책임을 방기하는 결정이다.
만일 지금의 예상과 같이 금투세 도입이 좌절된다면, 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이재명 대표를 위시한 민주당이 져야 한다.
정당의 정책적 입장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금투세 도입의 배경인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세원 확보 필요성이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었던 시기에 비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의 도입 폐지에 동조하는 민주당의 정책 입장 선회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민주당의 선회는, 그간 국민의힘을 기득권 정당으로 비판하고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당으로 내세웠던 것이 외적인 포장에 불과한 것임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거를 기제로 한 현재의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은 지지 유권자들에 대한 약속을 책임감 있게 이행함으로써 신뢰를 얻는다. 정당의 정책 입장은 유권자들에 대한 약속이며, 약속을 어길 때에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금투세 도입을 둘러싼 민주당의 입장 선회는 그러한 과정이 미비한 채, 충분한 설명 없이 그간 기득권 정당으로 비판하던 국민의힘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신뢰를 저버리는 결정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신뢰를 잃은 정당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마련이며, 선거의 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민주당이 애초에 금투세 도입을 주장했던 원칙을 되새기고 폐지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유성진 | 이화여대 교수·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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