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없을 때 사로잡히는 공포와 망상
“속으로는 진위를 의심하더라도 깜짝 놀랄 만한 정보를 보고하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는 미국이 핵 공격을 한다고 확신했다.
국가보안위원회(KGB·케이지비) 국장 시절 그가 조직한 ‘라이언’(RYaN, 러시아어로 핵미사일 공격의 약자) 작전은, 그가 서기장이 된 뒤 더 활기를 띠었다.
요원들이 수집할 중점 정보 분야를 군사, 정치, 정보, 경제, 민방위 5가지 범주로 체계화하고, 이 보고들은 모여서 ‘핵전쟁을 준비하는 미국’이라는 상이 만들어졌다. 사력을 다해 수집한 정보에는 혈액량, 심야 관청 건물 점등 수, 도살장 가축 수 등이 포함되었다.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 1983년 9월과 11월,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까지 가는 위기 상황이 조성되었다.
자밀 자키는 그의 저서 ‘희망찬 회의론자’에서,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을 습격한 극우 단체 ‘오스 키퍼스’와 함께 라이언 작전을, 대화가 없을 때 사로잡힐 수 있는 공포와 망상의 사례로 제시한다.
어떤 주제든 실제로 대화한다면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더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적은 나와 반대라는 냉소적 오해가 국가의 합의 구도를 망가뜨린다.
“자유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 (…)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12월3일 윤석열 대통령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 중 일부)
자밀 자키의 사례에 한국 윤석열 대통령에 의한 12·3 내란도 포함해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가장 잘하는 것이 대화여야 하는 점에서 더 비극적이다.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대화를 거부해왔다.
그가 입법 독재라 칭하는 것에 대한 대응책은 ‘거부권 행사’였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7인이 행사한 거부권 총횟수(16회)를 2년 만에 넘어서고, 계엄 선포 직전 ‘김건희 특검법’까지 총 24회를 행사했다.
취임 뒤 720일 만에야 야당 대표를 만난 게, 야당과 한 대화의 전부였다.
선한 인간에게서도 가장 악한 행위를 잡아내야 하는, 오랫동안 윤 대통령이 해온 검사의 일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에게서 공통점을 이끌어내는 정치와 정반대되기 때문일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번도 상대를 설득하는 정치, 정책에 의견을 구하는 정치를 해 보지 못한 자가 불러낸 망상의 말로다.
구둘래 : 텍스트팀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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