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

[스크랩] 경주 사천왕사 출토 유물 특별전 - 사천왕상 복원

道雨 2009. 5. 26. 11:27

 

경주 사천왕사 특별전

 

 

 

 

 

2006년 10월26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사천왕사지 발굴현장에서 공개한 '녹유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

윗 부분이 파현 형태로 수습한 녹유전이며 아랫부분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 중인 녹유전 유물의 사진.

이것이 사천왕이 아니라 신중(神衆)을 표현했다는 등의 이설도 많다.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마련한 '사천왕사' 특별전에는 그 복원품이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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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사천왕사의 발굴 성과를 보여주는 특별전 ‘四天王寺’를 개최합니다.

그동안 일부만 발견되어 전모을 알 수 없었던
녹유 사천왕상의 온전한 모습을 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전시기간 : 2009년 5월 26일(화)~8월 23일(일)
- 전시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 개막식: 2009년 5월 25일(월)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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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집 합쳐 비로소 하나된 사천왕상

 

 신라시대 경주 지역 저명한 사찰 중 한 곳인 사천왕사(四天王寺) 터에서 출토된 '녹유 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이 마침내 '별거'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로 합쳐졌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사천왕사 터 동ㆍ서 두 목탑 기단 유적에서 여러 점이 발굴된 불교미술품인 사천왕상전은 표면에 녹색 유약을 바르고 불교에서 사방을 수호하는 신들로 묘사하는 사천왕(四天王)을 각각 형상화한 벽돌이라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그 정체가 과연 사천왕인지, 아니면 다른 신상(神像)인지는 격렬한 학계의 논쟁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

정체가 무엇이건, 이들 녹유전은 그동안 다섯 집으로 뿔뿔이, 그것도 각각 파편 형태로 흩어져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동국대 서울캠퍼스 박물관과 같은 대학 경주캠퍼스 박물관 외에도 최근에는 이 사천왕사를 대대적으로 발굴 중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도 두 쌍탑 바닥면을 발굴조사한 결과 적지 않은 녹유전 유물을 수습해 소장하기에 이르렀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사천왕사' 특별전 공동 개최에 즈음해 이들 5개 기관에 소장 중인 녹유전 파편들을 전부 한 자리에 모았다.

그 결과 4점 가량 되는 녹유전을 완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각각의 파편을 하나하나 끼워 맞춘 성과물이다.

이들 녹유전은 경주문화재연구소가 본격 발굴을 벌이기 전까지만 해도, 평면 정방형인 사천왕사 동ㆍ서 목탑 기단의 네 면 중앙에 각각 하나씩 박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녹유전은 당초 추정처럼 동ㆍ서 목탑터에서 각각 목탑 기단부를 장식하던 면석(面石)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그 동ㆍ서ㆍ남ㆍ북 네 바닥면에 각각 6개씩(3쌍×2조), 모두 24개씩(4면×6개)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이 녹유전은 사천왕상을 구현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신중상'(神衆像)이나 '신왕상'(神王像) 정도로 보아야 한다는 반론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그 정체야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아무튼 처음으로 합쳐져 하나가 된 사천왕사 녹유전들이 26일 경주박물관에서 개막하는 이번 특별전에 선보인다.

오는 8월23일까지 계속될 이번 특별전에는 이처럼 사천왕사의 역사와 관련 인물, 사천왕사 발굴조사의 어제와 오늘을 엿볼 수 있는 자료 외에도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기와와 벽돌, 토기, 금속제품 등의 다른 사천왕사터 출토품이 망라되어 전시된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09.5.25>

 

 

사천왕사(四天王寺)


※ 사천왕사(四天王寺)는 문무왕(文武王) 10년(670) 당나라 군사의 침입을 막고자 명랑법사(明朗法師)가 문두루비법을 행한 곳이다.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 -  일종의 밀교의식으로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의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비법)
사천왕사는 통일신라 내내 가장 으뜸가는 절의 지위를 누렸으며, 고려와 조선까지도 변함없이 중요한 사찰로 여겨졌다.
특히 고려 문종(文宗) 28년(1074)에는 고려를 침입한 여진을 물리치고자 사천왕사에서 문두루도량(文豆婁道場)을 27일간 베풀기도 했다.
조선 태종 때는 경주의 자복사(資福寺), 즉 경주의 복을 빌어주는 절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언젠가 폐사됐다
.

 

사천왕상은 통일신라의 조각승 양지(良志)가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조각상은 갑옷 차림에 화살·칼 등을 든 수호신들의 자태가 드러난 걸작품이다. 악귀를 깔고 앉아 눈을 부릅뜬 강인한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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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수호신 미스터리’

벽돌파편 복원하니 3종류… ‘4종’-‘8종’설과 달라 주목

 

 

경북 경주시의 신라 고찰 사천왕사 터(사적 제8호·7세기)에서 나온 녹유전(綠釉塼·녹색 유약을 입힌 벽돌판)에 새긴 불교 수호신의 조각상들이 부분 복원돼 공개된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26일∼8월 23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사천왕사’ 특별전을 마련해 일제강점기부터 지난해까지 사천왕사에서 나온 녹유전의 파편을 모아 조각상의 형태를 알 수 있도록 복원한 12점을 비롯해 사천왕사에서 나온 기와, 토기, 금속제품 등을 선보인다. 이 12점의 녹유전 조각상들은 3종의 수호신 4점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조각상들은 칼과 화살을 들고 갑옷을 입은 수호신들이 악귀를 짓밟고 있는 모습을 정교하게 새긴 걸작으로 1300년여 전 탑 기단부의 4면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녹유전이 조각난 채 출토된 데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등 5곳이 분산 소장하고 있었는데 복원 작업 끝에 이번에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

녹유전 조각상들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악귀 위에 앉아 있는 수호신(A형) △투구를 쓰고 화살을 든 수호신(B형) △한쪽 다리를 다른 쪽 허벅다리 위에 올려 앉은 반가부좌 자세로 칼을 들고 있는 수호신(C형)으로 나뉜다. 특히 A형 조각상은 1916년과 1936년 출토된 하반신과 2006년 발견된 상반신이 각각 90년, 70년 만에 결합돼 완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녹유전 조각상은 불법(佛法)의 세계를 수호하는 4명의 신(神)인 사천왕(四天王)이라는 주장과 불법을 수호하는 8종의 신장(神將)인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는 주장이 맞서왔다. 하지만 수호신이 3종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054-740-7535

***********************************************<동아일보/윤완준 기자>

 

 

 

왜 3종류의 상 밖에 없는가?

(본 블로그: 서라벌이야기/사천왕사의 사천왕상은 왜 3개? 2009.2.27> 참조)

 

 

 

사천왕사(寺) 사천왕상(四天王像) 왜 4개가 아니라 3개일까

 

강우방 前경주박물관장-"경주 김씨는 흉노 후예 북쪽 지킬 필요 없었다"

 

 


 

 

지금은 터만 남은 경북 경주시 사천왕사(四天王寺)는 통일신라의 대표적 호국 사찰이었다. 문무왕이 당나라의 침공을 사전에 탐지하고 이 절을 지어 원력으로 당을 분쇄했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일제시대 사천왕사 터를 발굴했더니 수호신의 부조상이 조각된 '녹유전(綠釉塼·녹색 유약을 입혀 구운 벽돌판)' 파편들이 나왔다. 통일신라의 조각승 양지(良志)가 만든 것으로 갑옷 차림에 화살·칼 등을 든 수호신들의 자태가 드러난 걸작품이다. 이 수호신 조각의 정체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렸지만 수호신상의 정체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라는 통설이 유력했다.

그런데 2006년부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사천왕사 터를 다시 발굴한 결과 녹유전상(像)이 3개만 확인돼 학계를 당혹시켰다. 사천왕상은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方位神)이어서 4개의 상이 한 세트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사천왕상이라면 왜 상은 3개뿐일까. 사천왕이 아닌 다른 수호신으로 봐야 하지는 않을까?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26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사천왕사의 사천왕상이 3개뿐인 이유를 문무왕 비석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이 조각들이 사천왕상이라고 주장해온 강씨는 "신상들의 차림새는 분명 사천왕인데 왜 상이 3개뿐인지 이해가 안됐는데,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했다.

문무왕 비문에 쓰여 있는 신라 김씨 왕가의 계보에는 '투후(禾宅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5행),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6행) 등의 문구가 나온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투후는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 김일제다. 한나라와 전쟁 과정에서 포로가 됐고 무제에 의해 '투후'로 임명됐다. 경주 김씨는 흉노의 후예라는 것이다. '성한왕'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로 추정된다.

강씨는 "사천왕사의 사천왕상은 불법(佛法)의 수호신인 동시에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의 수호신"이라며 "문무왕이 북방에 위치한 훈 제국의 후예임을 비석에 천명했기 때문에 북방을 방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사천왕상 중 북방에 맞서 국토를 수호하는 다문천상(多聞天像)은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조선일보/허윤희 기자 200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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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녹유전 조각 정체는 神王
임영애 교수 사천왕.팔부신중설 모두 비판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 동ㆍ서 목탑터 기단부에서 출토된 녹유전(綠釉塼.녹색 유약을 바른 벽돌)에 새긴 상(像)은 정체가 무엇일까?

이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전개됐다. 하나는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 제기한 사천왕(四天王)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명대 전 동국대 교수가 주도한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유적 정비차원에서 2006년 이후 사천왕사지를 발굴조사한 결과 종래에는 알 수 없던 녹유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사결과 이런 녹유전은 동서 목탑터 모두에서 같은 양상으로 출토됐다. 즉, 녹유전은 기단부 네 면에 목탑 기단부를 장식하던 면석(面石)으로 사용됐으며, 아울러 그것들은 기단 계단을 중심으로 각 면에 6개씩(3쌍×2조), 모두 24개(4면×6개)를 배치되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아울러 비록 그 전부가 파편 형태라고 해도, 일제시대 때 출토되어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 중인 파편과 최근 조사에서 확보한 조각들을 토대로 복원한 결과 이 녹유전들이 구현하고자 한 상은 3종류 정도로 분류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 같은 결과들은 사천왕상이라는 주장에는 타격이었다. 불교에서 사방 세계를 수호한다는 사천왕은 네 가지로 나타나야 하지만, 세 가지에 지나지 않으며, 더구나 탑 하나를 장식한 총 숫자가 무려 24개나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팔부신중이라는 주장이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더욱 탄력을 받게 됐을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가 11일 경주 보문단지 내 드림센터에서 개최한 '신라 호국의 염원 사천왕사' 학술심포지엄에 토론자로 등장한 미술사학 전공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이 녹유전 상은 사천왕도 아니며, 그렇다고 팔부신중도 아닌 신왕(神王)으로 보아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을 들고 나왔다.

임 교수는 "먼저 이것이 사천왕이라면 북방을 관장하는 사천왕은 반드시 손에 탑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례가 발견되지 않으며, 나아가 활이나 화살을 든 모습을 사천왕상으로 보는 근거로 들기도 하지만, 이런 사천왕상이 등장하는 것은 9세기 이후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팔부신중이라고 할 때 무엇보다 그 점수가 8개가 아니라 24점에 달한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각종 불교경전을 보아도 팔부신중은 8명이라 했지, 그 외 숫자를 거론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임 교수는 사천왕사 창건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불교미술품들을 비교 사례로 들면서 이 녹유전 상은 "불법 전반을 수호하는 '신왕'으로 보아야 하며, 이는 불설관정경과 같은 불교 경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미술사학 전공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 또한 임 교수의 발표에 동조했으며 그 외 다른 불교미술사학자들도 이 녹유전 상이 대체로 사천왕상이나 팔부신중 어느 한 쪽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주장에 동조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각국 전문가를 초빙해 중국과 일본의 절터 발굴 및 복원사례를 듣기도 했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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