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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화 고려궁성 유적 처음 확인

道雨 2009. 12. 22. 15:27

 

강화 고려궁성 유적 처음 확인

 

도성 성곽 중 '중성' 모습 드러나

 

 

몽고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고려시대 궁성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차용걸)은 인화-강화 도로건설 구간에 포함된 인천 강화군 강화읍 옥림리 산62-3번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강화도읍기(1232-1270) 고려 궁성 담장 중에서도 황도(皇都) 방어를 위해 집권자 최항 주도 아래 1250년에 쌓은 강화 중성(中城) 유적 120m 구간을 확인했다고 17일 말했다.

나아가 그 주변에서는 이 궁성 담장과 동일한 중심축 배치를 지닌 고려시대 건물터 6개 동과 각종 고급 청자류가 같이 발견됐다고 연구원은 덧붙였다.

강화 고려 도성은 그 존속시기가 40년 가까이에 이르며, 더구나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비롯한 각종 문헌기록에는 이 강화 도성이 개경의 궁성과 거의 똑같은 구조로 건설됐다고 전하지만, 정작 지금까지 강화도 일대에서는 그것을 뚜렷이 증명할 만한 고고학적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내성(內城), 중성(中城), 그리고 외성(外城)의 3중 성곽 방어시스템을 갖춘 도성 구조 중에서도 중성 유적이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강화 도성의 실체 접근을 위한 단서가 비로소 잡혔다고 조사단은 평가했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강화로 도읍을 옮긴 고려는 천도 직후인 1232년에 내성을 먼저 쌓고, 1237년에 이르러서는 외성을 완성했으며, 이후 1250년에 황도를 병풍처럼 둘러싼 중성을 완공했다.

조사단은 "내성은 궁궐을 두른 궁성, 외성은 해안 방어를 위한 성격을 각각 지니는 데 반해, 중성은 도읍지를 둘러싼 도성 성벽으로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 결과 중성은 당시 토목 최고기술과 공력을 투입한 흔적이 발견됐다.

흙을 차례로 다져서 쌓아올리는 판축(板築)용 틀과 그것을 고정하기 위한 외곽 기둥시설, 그렇게 해서 쌓은 토루(土壘. 흙담장)가 드러남으로써 "고려시대 판축토성의 축조기법과 구조 및 그 결합 방식 등도 해명할 수 있게 됐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2009.12.17>

 

 

 

 

도로 건설구간에 포함된 강화군 강화읍 옥림리 산62-3번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1250년에 쌓은 강화 중성(中城) 유적 120m 구간을 드러나고 청자상감국화문접시(사진)를 비롯한 고려청자도 다수 수습됐다

 

 

고려시대 건물지를 중심으로 막새류와 치미(사진)를 비롯한 유물이 다수 수습됐다.

 

 

강화도에서 나온 백제토기

격자타날문 대형호로서 흔히 대옹(大甕)이라 일컫는 대형 토기다. 고려궁성 중 중성(中城) 담장이 확인된 강화군 강화읍 옥림리 산62-3번지 일원에서 발굴됐다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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