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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회의 과정에서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 발언록을 공개한 것을 두고 정치권이 시끌벅적하다.
민주당은 국회 당 대표실이 도청당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한나라당은 “도청의 증거를 내놓으라”며 맞서고 있다.
민주당의 발표에 따르면 당시 회의는 실무 당직자들까지 전부 퇴장하고 최고위원과 상임위원 몇명만 참석한 완전 비공개 회의였다. 또 한선교 의원이 국회에서 발언을 할 때까지는 녹취록도 작성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 의원은 천정배 최고위원의 발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읽었으니 민주당으로서는 도청 의혹을 제기할 만도 하다.
당사자인 한 의원은 애초에는 “틀림없는 녹취록”이라고 했다가 뒤늦게 “내 주변 측근이 민주당의 모 인사로부터 메모를 입수한 것”이라고 말을 뒤집었다.
하지만 그런 변명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 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고 해도 이번 사태에는 야당에 대한 불법사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회의 발언록을 누가 어떻게 작성했는지, 한 의원 쪽에 발언록을 전달한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명백히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야당의 비공개 회의 내용까지 곧바로 여당에 현장중계되는 상황에서 여야간 신뢰니, 제대로 된 정치 따위를 입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나라당은 정치의 금도에서 벗어난 치사한 행동을 하고서도 전혀 반성의 기색이 없다. 특히 사태의 발단을 제공한 한선교 의원의 경우 정신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남의 속옷 속을 몰래 들춰봤으면 가만히나 있지, 그런 사실을 만천하에 떠벌렸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자신의 뛰어난 정보수집력을 과시하고 야당에 겁을 주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앞뒤도 분간하지 못하는 천방지축 정치인이다.
사태가 불거진 뒤 “도청 증거가 있느냐”며 뻗대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참으로 적반하장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에나 있었던 불법도청이 마치 지금 행해진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극히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불법도청의 원조는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며, 불법 민간인 사찰 등 시대착오적 비행을 수없이 저지른 것도 바로 이 정권이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정권이니 도청 의혹도 제기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한 의원의 잘못을 사과하고, 자체 조사를 통해 진상을 소상히 밝히는 일이다. |
[2011. 6. 27 한겨레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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