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오세훈표 무상급식의 살풍경

道雨 2011. 8. 5. 11:51

 

 

 

           오세훈표 무상급식의 살풍경 

 

소득순으로 줄을 세워 절반만 무상급식을 하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나아

 

 

» 박순빈 논설위원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배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아이들 교실엔 가난의 부끄러움조차도 얼씬거리지 못하기를 대부분의 부모들은 바란다.

 

그래야 아이들이 학교에서 꿈을 키우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모자란 것을 서로 나눴을 때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서울시민들은 초·중학교에서 가난한 아이와 부자 아이를 나눌지 선택하는 황당한 투표를 하게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초·중학생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기어이 못박았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공약한 ‘전면적 무상급식’이냐, 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한 ‘단계적 무상급식’이냐를 놓고 서울시민의 판단을 직접 묻겠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번 주민투표에서 승리하면 ‘무상복지 포퓰리즘’에 마침표를 찍을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이들 밥 먹이는 정책에 대한 논란을 이런 경지로 끌어올린 그의 정치력이 놀랍기만 하다.

 

오 시장이 내세운 무상급식 실시안은 사실 ‘소득 하위 50%’에 더 방점을 둬야 한다.

서울시에서 초·중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소득 수준을 파악해 50% 이하의 가정에만 급식비를 지원하자는 안이다. ‘반쪽 무상급식’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서울시는 이 안의 장점으로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꼽았다. 오 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에 견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복지”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들어가 보면, 반쪽 무상급식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게 금방 드러난다.

 

 

가구소득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데서부터 막힌다.

50%를 선별하려면 모든 가구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해 딱 중간선을 정해야 하는데, 현재 행정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얘기다.

통계청이 월별로 가구소득을 파악하고 있지만, 전국 7000가구 남짓의 표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일 뿐이다. 그나마 시도별로는 표본오차가 너무 커 수치를 내지도 않는다.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국세청도 세금을 면제받는 가구의 소득은 모른다. 자영업자 소득 파악률은 60%도 안 된다.

 

정확하게 전체 가구의 소득을 파악해서 50%를 선별하려면 그에 따른 행정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든다. 세계 최고의 복지선진국에서도 그런 복지전달체계를 갖춘 데는 없다.

 

급식비를 아이들 모르게 지원할 수 있는 방법도 간단치 않다.

한나라당은 학생들이 직접 학교에 급식비를 신청하지 않고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을 통해 주민자치센터에서 처리하자고 한다. 그러나 사회복지통합전산망 도입 목적은 중복과 사각지대 해소일 뿐이다. 찾아가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억지로 50% 선을 정해 지원 신청을 받는다 해도 문제가 남는다.

통계청이 파악한 올해 1분기 도시가구의 중위소득은 월평균 339만원이다. 소득이 이보다 밑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에서 급식비 지원을 신청할 수 있을까?

웬만한 부모라면 혹시 아이가 받을 상처를 우려해 머뭇거릴 게 뻔하다. 그러면 실제 지원 대상의 언저리가 점차 낮아져, 결국에는 정말 가정형편이 어려워 굶주리는 아이들만 구석으로 내몰리게 된다.

 

 

선별적 복지서비스는 부작용 없이 합리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처럼 수혜자가 사전에 기여한 몫이 있거나 실제 한계상황에 몰려 스스로 구제를 호소하는 경우에 적합한 복지서비스 방식이다.

선별적 무상급식도 아이들이 “우리집 가난해요”라고 손들지 않으면 제대로 시행되기 어렵다.

 

가난은 분명 죄가 아니다. 가진 것 없다는 게 죄가 되는 현실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을 공짜밥을 미끼로 낙인찍어 주눅들게 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한다면 그야말로 중대 범죄다.

 

< 박순빈, 한겨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