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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자도 모르는 고발

道雨 2011. 11. 4. 20:27

 

 

 

          고발자도 모르는 고발 

[정치] ‘50여 개 보수 시민단체’의 아름다운재단 검찰 고발의 실체

 … 검찰 고발 사실 모르는 단체 많고 실체 불분명 단체도 수두룩

 

 

“시민단체, 아름다운재단 검찰에 고발”(<연합뉴스>), “보수단체, ‘불법 모금 의혹’ 아름다운재단 검찰 고발”(<뉴시스>), “시민단체 ‘공금유용 의혹’ 檢에 고발장”(<서울신문>), “시민단체, 아름다운재단 검찰에 고발”(<한국경제>)….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인 10월21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신문 지면을 채운 기사와 제목들이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중앙지검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플래카드가 펼쳐졌다. ‘아름다운재단 검찰고발 및 수사 촉구하는 시민단체연합(50개 시민단체 연합)’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자들의 펜과 카메라가 분주히 움직였다. <한겨레21>을 포함한 기자들의 전자우편함에도 보도자료가 날아왔다.

 

 

고발→언론 보도→검찰 배당→언론 보도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최근 폭로한 자료에 의하면 한전에서 지난 10년간 아름다운재단에 후원한 자금이 실제 내용과 다르게 나와 공금을 유용한 의혹이 짙은 것으로 드러났고 이 돈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나 기타 다른 용도로 유용된 의혹이 크므로 우리는 박원순 후보 및 아름다운가게를 검찰에서 철저히 조사해줄 것을 촉구한다.”

 

<중앙일보> 등 많은 언론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50여 개 보수 시민단체’라는 주어로 기사를 썼다. <프런티어타임스> <올인코리아> 등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의 보도도 잇따랐다.

검찰은 다음날 곧바로 사건을 배당했다. 언론에 배당 사실을 밝혔다. 검찰이 사건을 배당했다는 보도가 다시 뒤를 이었다.

박원순 캠프가 반발했다. <조선일보>가 이를 박 후보의 ‘반발’을 싣는 방식으로 재보도했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캠프는 선거운동에 이 고발 사건을 이용했다. 나 후보 선거대책위 대변인을 맡은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10월23일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열었다.

“아름다운재단에 대한 지적은 계속돼왔다. 고발이 들어오면 검찰은 법에 따라, 수사 관행에 따라 진행한다.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야당이 해온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박원순 후보 캠프는) ‘정치 검찰’을 언급하기 전에 정치 시민운동에 대한 심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안 대변인의 말이 다시 기사화됐다. ‘보수단체 검찰 고발→언론 보도→검찰 배당→언론 보도→나경원 캠프 비난→언론 보도’라는 흐름이 보인다. 나경원 후보는 뜻하지 않게 언론플레이 효과를 본 셈이다.

 

<한겨레21> 취재 결과, 이른바 ‘50여 개 보수 시민단체’는 대부분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한경호협회’ 등 시민단체로 보기 어려운 직능단체, 동호회가 많았다. 그나마 대부분의 단체는 주소와 연락처 등을 인터넷·전화번호부에서 찾을 수 없었다. 활동 내역, 운영비 모금, 자발적 회원 여부 등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단체가 실제 존재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고발인인 인터넷 언론 <민족신문> 대표 김기백씨는 통화에서 “그 사람들(시민단체 연합)과 (기자회견에 대해) 사전 협의한 적도 없다. 나는 기자회견 때 가지도 않았다”며 “플래카드는 그 사람들이 알아서 만들었겠지”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단체라는 게 명실상부한 단체가 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좌파·우파를 막론하고 이름만 걸친 데도 있고 유명무실한 곳이 많다. 그게 뭐 특별한 의미가 있나”라고 말했다.

김기백 대표는 “8명쯤 (기자회견과 관련해) 내게 연락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대표는 연락을 해왔다는 관련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 고발 사건이 대체 뭔가”

 

지난 10월21일 시민단체연합이 플래카드와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참여 단체 수는 모두 47개다. 인터넷과 전화번호부 등에 검색되는 단체는 10여 개였다.

연락처가 검색되는 단체는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미디어워치’ ‘독립신문’ ‘종북좌익척결단’ ‘전국자연보호중앙회’ 등 그 수가 더 적었다.

발행인이 변희재씨로 똑같은 <미디어워치>와 <빅뉴스>는 따로 이름을 올렸다. 중복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민단체(비정부기구)라기보다 직능단체, 동호회에 가까운 이름이 많았다. ‘대한청소년무술연맹’ ‘다문화가족지원연대’ ‘숭례문복원국민참여운동본부’ ‘청년벤처기업인협회’ ‘해병대특수수색대전우회’ ‘멸공산악회’ ‘아줌마카페협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고발인 김기백씨가 대표로 있는 <민족신문>이나 <빅뉴스>는 언론사다.

 

단체의 동의 없이 이름을 올린 경우도 눈에 띄었다.

‘전국자연보호중앙회’ 유명준 총재는 통화에서 “박원순 시장 고발 사건이 대체 뭔가”라며 “전혀 모르는 일이다. 중앙회 회원이 자의적으로 이름을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종북좌익척결단’을 주도하는 최우원 부산대 교수는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검찰 고발 기자회견 전에 연락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워치><빅뉴스> 발행인 변희재씨는 통화에서 “(<빅뉴스> 이름이 포함된) 검찰 수사 촉구는 나와 상의한 게 아니다. 지금 알았다. 우리는 (시민)단체가 아니잖나. 내 불찰이다”라고 말했다.

변씨는 “(기자회견을 주도한 것이) 인터넷미디어협회 쪽 분들인 것 같다”고만 말했다. 인터넷미디어협회는 변희재씨,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등이 주도해 만든 극우보수 성향 인터넷 언론들의 모임이다.

 

고발인 김기백씨도 변희재씨도 잘 모르는 ‘8명’이 ‘50개 단체’ 명의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 고발이 나경원 캠프의 박원순 시장에 대한 공격에 사용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검증 없는 중계보도 관행이 큰 구실을 했다.

<연합뉴스>는 ‘아름다운재단 검찰 고발 및 수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연합’ 명의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했다. <중앙일보> <뉴시스> <한국경제>는 ‘50개 단체’라는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 적시했다.

 

 

 

아름다운재단, “그들이 시민단체인가”

 

아름다운재단은 강하게 반발했다. 실체가 없는 것도 심각하지만, 이 보수주의자들이 단체 성격에 걸맞지 않게 스스로를 ‘시민단체’라고 주장하고 언론이 이들이 원하는 대로 ‘시민단체’로 부르는 것도 문제라는 태도다.

 

아름다운재단의 서경원 기획홍보국장은 “시민단체연합 참가 단체들을 보면 직능단체나 단순 회원 모임이 많다.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쓰기 부끄러울 정도”라며 “이들을 시민단체로 부르는 게 오히려 시민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실체가 있는 단체라도 이 보수단체들이 아름다운재단을 고발할 만큼 투명한가. 고발 지지 명단에 오른 보수 인터넷 매체들을 보면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스스로 투명하게 운영하는지 돌아보라”고 되물었다.

이들 보수단체들이야말로 시민없는 시민단체라는 취지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