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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있되 범인없는 ‘KBS 도청 무혐의’에 불신 가중

道雨 2011. 11. 9. 10:30

 

 

 

범죄있되 범인없는 ‘KBS 도청 무혐의’에 불신 가중
 

 

사쪽 “경찰 결론냈는데 진상조사위 왜 꾸리나”
노조 “김인규 사장, 명쾌한 해명 한번도 안내놔”
안팎서 “국민신뢰 상실·퇴행적 저널리즘” 지적

 

 

‘도청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사 대상자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넉 달 넘게 민주당 비공개 회의 도청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이 내린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2일 애초 유력한 도청 용의자로 지목했던 장아무개 <한국방송>(KBS) 기자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고 사실상 수사를 끝냈다.

지난 6월24일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의 “이것은 틀림없는 녹취록” 발언에서 비롯한 도청 의혹 사건은 결국 사건만 있고 범인은 없는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한국방송은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경찰 발표는 우리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불법행위에 관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면죄부를 받았다는 태도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한국방송 안팎에서는 경찰의 부실수사로 공영방송 한국방송은 오랜 기간 ‘도청의혹 집단’이란 불명예를 안고 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7월 말 한국방송 새노조(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가 조합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7%는 ‘도청 사건에 케이비에스가 연루됐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권태훈 한국방송 노동조합 편집국장은 8일 “김인규 사장 등 경영진은 한번도 ‘도청하지 않았다’는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며 “한국방송은 이미 국민적 신뢰 상실이라는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도청 의혹을 증폭시킨 주체는 바로 한국방송이었다.

도청 여부에 대한 사장의 애매한 언급, 말이 달라지는 해명, 우연에 우연이 겹친 휴대전화·노트북 동시 분실, 진상조사에 대한 사쪽의 소극적 태도 등. 상당수 한국방송 내부 구성원조차도 자사가 도청에 연루됐을 것이라고 믿은 이유다.

 

도청 사건에 대한 한국방송의 첫 반응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은 없었다”(6월30일)였다. 홍보실 이름으로 나온 성명이었다.

한국방송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회사에 중요한 사안이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취재한 것은 당연했고, 당시 우리 기자들은 여러 명이 달려들어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귀대기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벽치기’ 취재를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이에 민주당이 “당일 벽치기 취재는 없었다”고 반박하자 며칠 뒤에는 다시 정치부 이름으로 “제3자의 도움으로 (민주당) 회의 내용을 파악했다”고 말을 바꿨다. 아울러 용의선상에 오른 장 기자는 경찰에서 사건 당일 쓰던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모두 ‘분실했다’고 밝혔다.

 

김인규 사장은 도청과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는 야당 등의 요구에 “도청을 지시한 바도 보고받은 바도 없다”는 식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도청 의혹이 불거진 뒤 일부 한국방송 이사진과 야당은 김인규 한국방송 사장에게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서라도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김 사장은 “자칫 수사를 특정 방향으로 이끈다는 오해를 낳을 우려가 있어 경찰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는 식으로 빠져나갔고, 수사가 끝난 7일 한국방송은 “경찰이 무혐의로 결론을 내린 마당에 우리가 스스로 진상조사위를 꾸리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우진 새노조 홍보국장은 “한국방송 스스로 자율적인 조사를 통해 의혹을 완전히 씻어내지 않는다면 사쪽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우리가 도청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수신료 인상안 처리 과정에 대한 한국방송의 무리한 취재는 자사 이기주의와 취재윤리 위반 등 퇴행적 저널리즘의 보기로 남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막으려 하는 민주당의 한 의원에게 “다음 총선에서 보자”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한국방송 보도본부의 한 간부는 도청 의혹 사건이 터진 직후 “정치부 기자 가운데 세 명은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위해 각 정당 의원을 상대로 직접 뛰었다”고 밝혀 ‘수신료 로비’ 사실을 간접 시인하기도 했다.

 

야당 추천 한국방송 이사인 이창현 국민대 교수(언론정보학부)는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던 김인규 사장에게 있다”며 “도청 의혹과 특정 정당 비공개 회의 내용을 취재해 얻은 정보를 상대 정당에 전달했다는 혐의는 그 자체로 한국방송에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