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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필자의 책 <가난에 빠진 세계>가 반자본주의라는 이유로 군대의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미 2008년 군인들의 독서를 금하는 불온서적 리스트를 지정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올해에도 ‘장병들의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합한 서적’의 최신 리스트를 추가로 지정했다고 한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21세기에도 불온서적이라는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선 황당한 일이다. 군인은 민주공화국의 국민도 아니란 말인가. 게다가 같은 책을 문화체육관광부는 교양 도서로 추천하더니 국방부에서는 불온서적이라 하니 우습기까지 하다.
사실 이 군대의 불온서적이라는 책들이 대부분 인기 있는 교양도서들이고 그 리스트에 들어가면 책이 더욱 잘 팔린다니 필자로서는 감사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거나,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하거나,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고민하는 이 책들에 반자본주의라는 빨간딱지를 붙이는 건 역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필자의 책은 전세계 그리고 한국에도 만연한 가난과 불평등을 보고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반자본주의라면, 빈곤과 소득분배를 고민하는 그 많은 경제학자들이 모두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셈이다. 그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불온해져야 하는 것일까.
2008년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많은 네티즌들은 오히려 필독서 목록이라고 코웃음쳤고, 여러 서점들은 불온서적 판매 특별코너를 개설하기도 했다. 양심과 정의를 외면하지 못한 군법무관 7명은 불온서적 지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작년 10월 결국 합헌결정을 내렸고, 군은 오히려 2009년 이들 법무관에게 파면과 근신 등 징계조처를 내렸다. 법무관들은 이에 불복하여 재판을 신청했고 올해 8월 법원은 군의 파면결정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불온서적 지정만큼이나 씁쓸한 뒷이야기다.
소위 이 불온서적들을 읽는 것이 군인들의 정신전력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많은 군인들이 제대해서 사회에 나갈 생각을 하면 그저 막막하고 걱정부터 앞설 것이다. 이 청년들에게,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지 못하게 하고 변화에 대한 희망조차 갖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들의 정신건강에는 해로울 것 같다.
하지만 종북과 좌파라는 이름표를 붙이며 진보적인 이들을 삐딱하게 보는 것은 군대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보수우익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빈곤의 경제학을 논의하는 서적을 불온한 반자본주의라며 금지하는 행태는 세상을 보는 이들의 눈이 얼마나 편협한지 잘 보여준다. 이런 편협함은 분명 자본주의의 건강한 발전조차 가로막는 것이다.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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