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나쁜 농협

道雨 2011. 12. 12. 15:30

 

 

 

                      나쁜 농협 

 

양파같은 농협, 까도 까도 불투명
농협이 죽어야 농업이 산다

 

 

 

» 김현대 사회2부 선임기자
농협이 나쁜 이유는 많다.

당장, 들판에 나가 농민들 말 몇마디만 들어보면 된다. 농협이라고 운을 떼기가 무섭게, 막말이 튀어나온다.

‘걔들이 은행원이지, 농민 편 절대 아니유.’

‘농민 다 죽고, 농협만 돈 벌어예.’

‘조합장, 그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니께….’

 

가장 나쁜 것은 협동조합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리인이 되레 주인을 호령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장과 대규모 회원조합장들은 명색이 비상근 명예직이다. 유럽의 협동조합들처럼, 권력을 농단하지 말고 연봉도 많이 받지 말고 300만 농민 조합원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이다.

 

실상은 어떤가?

최원병 회장의 비서실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사실상 상무급이라는 비서실장을 포함해 1~4급 간부가 11명이고, 그 아래 3명의 여비서까지 모두 14명의 직원이 널찍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농협 권력의 심장부이다.

 

최 회장은 8조원의 통치자금(무이자자금)으로 전국 1167명의 조합장들을 통제한다. 중앙회와 자회사의 주요 인사권도 행사한다.

최 회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무려 7억원대의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농협에서 인정한 공식 연봉만도 그렇다. 그중 2억5000만원은 <농민신문>의 상근 회장으로 이름을 걸쳐놓은 보수이다. 최 회장은 한달에 한차례 농민신문사로 출근해, 이사회를 주재한다.

 

최 회장은 지난달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문제의 무이자자금 규모를 1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 자금의 단맛을 아는 조합장들과 손뼉을 맞춘 대표적인 선심성 공약이었다.

읍·면의 조합장들 또한 웬만하면 억대 연봉을 받는 농촌의 소황제들이다.

최 회장은 얼마 전 농민신문 대표로도 재선임됐다. 물론, 2억5000만원 연봉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같은 날 농협 이사회에서는 전체 조직개편안이 통과됐다.

“중앙회에 전략기획실을 신설해 그룹사들의 총괄 컨트롤타워로 운영한다”는 등 ‘농협 재벌그룹’의 탄생을 예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농민 조합원에서 올라오는 협동조합의 상향식 지배구조를 고민한 흔적은 63쪽 개편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무슨 협동조합인가?

 

기자들은 농협을 두고 양파 같은 조직이라고 꼬집는다. 조직체계가 복잡한데 투명하지도 않으니, 제대로 알 길이 없는 것이다.

8조원이나 되는 무이자자금의 집행 명세(내역)가 보안이고, 대의원 288명의 명단도 비공개이다. 이사회에서 통과한 조직개편 내용조차 막무가내로 공개하지 않았다.

농협은 편리할 때만 협동조합의 가면을 쓴다. 정부에 6조원의 자본금을 지원해 달라면서, 감시는 전혀 받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제대로 된 협동조합이라면, 정부 돈 받지 않고 감시도 받지 않겠다고 해야 마땅하다.

 

사실, 농업 개혁의 절반은 농협 개혁이다. 우리의 농업을 망쳐놓은 책임에서 농협은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고 비준되는 동안에도, 농협은 정부만 쳐다보고 뒷짐지고 있었다.

다행히, 농협 내부에서 작은 변화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 독립적인 노조가 직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고, 농촌 현장에서는 혁신을 이끌어가는 조합장들의 싹이 자라나고 있다.


언젠가 농협을 비판하면서, ‘미워도 농협’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농협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고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그게 순리이다.

 

오늘은 ‘나쁜 농협’을 더 거칠게 몰아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리수가 없이는 변화가 어렵겠다는 확신이 깊어진다.

혁신하지 않으면 혁명당한다. 농협이 망해야 농업이 산다.

 

김현대 사회2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