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제사·차례, 꼭 지내야 하나?

道雨 2012. 1. 21. 12:47

 

 

 

           제사·차례, 꼭 지내야 하나?

 

죽음보다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

 

차별이 가혹한 시절 만들어진 허세적인 양반문화일 뿐이다
살아계신 동안 가족여행, 소풍, 오락회를 열어 함께 즐겨보자

 

 

 

 

조상 제사가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 황실의 문화를 조선 왕실과 양반들이 모방한 것이며, 평민과 상민이 따라 하면 불러다가 곤장을 때릴 정도로 상류층이 독점했던 문화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평민의 집 마당에 능소화를 심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문화를 고집했던 것이 그 시절 신분제 사회의 질서였다.

중국 갑골문 전문가인 김경일 교수는 3300여년 전 중국 은나라의 조갑이 형을 해치우고 왕이 된 뒤 권좌에 오른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천신과 황하신에게 지내던 제사를 없애고 무당들로 하여금 까다로운 형식의 조상 제사를 관장하게 했다고 그 기원을 밝힌 바 있다. 이성계가 고려 왕을 배신하고 조선을 세운 뒤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지어 자기의 조상들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으며 그런 조상의 후손임을 내세워 쿠데타를 합리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족보 만들기나 조상 제사가 대중에게 일반화된 것은 양반의 세도가 무력해진 일제강점기 이후의 일이다. 일제는 식민지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호적제도를 도입했고 성씨가 없던 평민과 상민들은 그때 비로소 성을 만들어 관청에 등록했다. 그러니 그 뒤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족보가 가짜일 수밖에 없고, 김·이·박 3성이 전 국민의 45%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희귀한 ‘성 쏠림 현상’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왕조 시대의 귀족들은 자기의 피가 다르니 감히 자신의 권력을 넘보지 말라는 차별화 전략으로 조상 제사나 족보를 이용했다. 프랑스 민중은 혁명을 성공시켜 독점권력을 무너뜨리고 자유·평등·형제애와 같은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지만, 조선의 백성은 외세의 침략으로 양반이 무력해지자 양반의 문화를 흉내 냄으로써 차별의 서러움에서 벗어나려 했다. 양반 또한 과거의 자존심을 잊지 않으려고 족보나 조상 제사를 고수했으니 일제강점기에 조상 제사는 전 국민의 행사가 되었다.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래전 신분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이 가혹했던 시절에 만들어지거나 유통된 문화가 지금에도 필요하거나 아름다울 리 없다. 작가 이문열은 제사상에 올릴 떡시루에 김이 안 올라 목을 맨 며느리에게서 섬뜩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하지만, 우리 여성들에게는 이문열의 미적 취향이 섬뜩할 뿐이다.

조상 제사의 원조국인 중국에서도 이제는 사후 1~3년간만 아들딸 불문하고 형편 되는 자식이 상을 차린다. 우리의 관혼상제 문화에 아직도 허례허식이 많은 것은 그것이 창의적인 것도 아니며 차별적이고도 허세적인 양반문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타이가에 살면서 지혜를 전하는 아나스타시야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그의 영을 깨어나지 못하게 하며 그를 죽은 상태에 묶어둠으로써 그의 영혼을 괴롭히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윤회·내세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덤, 비석, 수십년씩 이어지는 제례를 통해 죽음의 세계에 가두어 두고 후손을 위해 복을 달라고 비는 것은 망자를 위해서도 예의가 아니다.

어느 인디언의 시처럼 죽은 뒤엔 천 개의 바람이 되고, 눈 위의 반짝임이 되며, 곡식 위로 내리쬐는 햇빛이 되고, 고요한 아침 부드럽게 내리는 가을비가 되며, 새들의 날갯짓이 되고, 나는 별빛이 되는 것이, 된다고 믿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은가.

혹 꿈에 망자가 안 좋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무덤을 옮기거나 점집을 찾을 일이 아니라, 찬란한 빛 속에서 환한 미소를 띠고 세상 만물에 사랑과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수시로 상상해드리는 것도 좋겠다. 남들이 하니까, 옛날부터 해온 것이니 그대로 따를 게 아니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살아보자.

고령화 사회다. 살아 계신 동안 가족여행, 가족소풍, 가족오락회를 열고 검은 흙에서 돋는 초록 새싹과 노랗고 빨간 꽃에 감동받으며 새들의 예쁜 지저귐이나 나와 타인의 미소를 감사하며 함께 즐겨보자. 부모·조상의 유전자는 모두 내게 전해지는 것이니 나와 타인을 귀하게 여기며 서로 돕는 우리에게 조상들은 박수를 쳐주실 것이다.

 

» 고은광순 여성운동가·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