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검찰, 공익제보자의 저승사자인가?

道雨 2013. 5. 3. 15:05

 

 

 

      검찰, 공익제보자의 저승사자인가?
잘못된 걸 잘못했다고 내부고발해봤자 보호받기는커녕 파면

 

 

<국정원 압수수색을 마치고 나오는 검찰차량. 출처 연합뉴스>

 

 

어제 검찰이 국정원 전 직원의 자택을 압수수색했습니다. 그런데 번지수가 영 이상합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였던 집은 댓글공작을 벌였던 국정원 직원이 아닌,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의 집이었습니다.

 

이 기막힌 압수수색이 있기 하루 전, 검찰은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하여 국가정보원을 전격 압수수색했습니다.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것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이후 두 번째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국정원게이트 수사의 양상은 8년 전 그 사건의 수사양상과 매우 흡사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국정원사건 제보자를 압수수색으로 대하는 검찰의 태도는 삼성X파일 사건 당시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의원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와 매우 유사합니다.

두 사건에서 공히 드러나는 대한민국 검찰의 형상은 '공익제보자의 저승사자'입니다.


 

본말전도의 전형, 삼성X파일 수사

 

지난 2월 대법원은 ‘삼성 X파일’에 등장한 ‘떡값 검사’의 실명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혐의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에게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형을 확정했습니다.

 

‘삼성 X파일’ 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받은 이학수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특정 후보에 대한 정치자금과 검찰 고위간부에 대한 ‘떡값’제공을 공모하는 대화를 안기부가 녹취한 파일입니다.

2005년 MBC 이상호 기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수사팀은 향후 9년간의 떡값 전달계획까지 치밀하게 녹음돼있던 파일을 입수하고도, 공소시효 등을 문제 삼아 수사를 사실상 덮어버렸습니다.

 

이학수, 홍석현 등 사건의 당사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됐고, 오히려 사건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수사팀을 총괄 지휘했던 인물은 황교안 현 법무장관입니다.

 

본말이 전도된 수사결과에 분노했던 노회찬 의원은 이 파일에서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검사 7인의 실명을 보도자료로 배포했고,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같은 자료를 올렸습니다. 무능한 사법기관을 대신해 국민들에게 ‘공익제보’를 한 셈입니다.

 

공익제보자 노회찬 의원이 재판을 받게 된 이유는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 중 1명이었던 안강민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노 의원을 허위사실유포로 검찰에 고소하자, 검찰이 그것을 받아 노 의원을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기 때문입니다.

보도자료배포는 무죄이지만 홈페이지 게재는 유죄라는, 재판부의 황당한 판결이 있기 이전에, 떡값 검사의 고소와 그를 비호하던 검찰의 기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X파일 사건의 주모자들은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고, 공익제보자 3명(이상호, 김연광, 노회찬)은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누구나 1분 안에 검색할 수 있는 명단. 출처 ‘아이엠피터’ 블로그>


 

축소∙은폐수사의 전형 민간인사찰 사건

 

작년 3월 국정원 사건에 버금가는 엄중한 국기문란사건이 터졌습니다.

2010년 6월 PD수첩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던 민간인 사찰사건이 사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폭로가 나온 것입니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민간인들을 청와대의 지시로 총리실이 불법사찰했고, 이 정보를 넘겨받은 검찰이 대상을 표적 수사해 구속까지 시켰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에서 스스로가 몸통이었던 검찰은 사건을 철저하게 축소∙은폐하려 했고, 검찰과 사건의 주모자들의 혐의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단순 가담자였던 7급 공무원을 증거인멸의 주범으로 몰아 기소했습니다.

자칫 깃털도 뽑지 못하고 덮힐 뻔 했던 ‘민간인 사찰사건’은, 바로 이 7급 공무원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실 주무관의 폭로로 인해 전격 재수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민간인사찰 사건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정황과 폭로를 막으려 다양한 협박∙회유를 시도했던 ‘윗선’의 행각이 담긴 사진과 녹취록을 공개해서 나라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검찰의 재수사 역시 사건의 몸통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불과 5명을 추가 기소하는데 그친 처참한 수준이었지만, 장 주무관의 폭로는 이 추악한 사건의 전모를 세상에 알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익제보자의 지위를 얻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대기발령 상태에서 외로운 법정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장 주무관은 대법원에서도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공무원 옷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사회가 지켜야 할 공익제보자들. 왼쪽부터 노회찬 의원, 장진수 주무관 , 권은희 과장>


 

공익제보의 처벌은 곧 부패의 용인

 

우리사회에서 중대한 공적 부조리를 고발한 ‘의인’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이 법률상 공익제보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침해행위를 ‘소비자의 이익 및 공정한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로 국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떡값검사 사건이나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같은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가 공익침해행위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난 4월 17일 민주통합당 박범계 의원은 공익신고자의 범위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행위 신고자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익신고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행위’까지도 공익침해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이러한 행위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들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의혹,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여직원 사건 등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행위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이 같은 행위와 관련, 이번 개정안을 통해 양심적 내부고발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 - 4.17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


그러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국정원게이트를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여당의 행태를 볼 때,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정말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을까?

 

검찰이 노회찬 의원을 기소했던 이유는 떡값검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었고, 검찰이 어제 국정원사건의 제보자의 집을 압수수색한 이유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의 주장처럼 과연 그것들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을까요?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1분 안에 검색할 수 있는 떡값검사들의 명단이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목에 칼을 겨눈 것이나 다름없는 국정원게이트를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 한다면, 검찰이 모든 선한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공에 해악를 끼치는 ‘국가의 비밀’은 숨겨져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국정원사건과 같이 국가안위에 심대한 해악을 끼칠만한 범죄라면 그것을 알고도 묵인한 자들에게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不告知罪]’가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익제보는 분명 처벌의 대상이 아닌 권장해야 할 미덕입니다. 공익제보를 처벌한다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부패를 용인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가 국민 앞에 ‘나쁜 비밀’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국가기관이 사회정의를 해치는 ‘나쁜 비밀’을 만들고, 그것을 고발한 선한 이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용납되어서는 안될 ‘나쁜 국가’입니다.

 

검찰이 지금처럼 공익제보자의 저승사자 노릇을 계속하는 이상 대한민국은 결코 ‘나쁜 국가’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잘못된 걸 잘못했다고 내부고발해봤자, 보호받기는커녕 파면되기 일쑤인데, 누가 입을 열고 싶겠어요. 제발, 우리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찾아주세요”

                                                                                      - 장진수 주무관(한겨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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