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용공(조작) 사건

'증거조작' 결재권자는 대공수사단장... 지휘부 수사 불가피

道雨 2014. 4. 3. 11:07

 

 

 

 

'증거조작' 결재권자는 대공수사단장... 지휘부 수사 불가피

 

 

국정원 영사에 위조지시 전문, ‘결재자’ 최단장도 개입 정황
3급 팀장은 내부회의 주재해, 검찰, 형사처벌 방안 검토

 

국가정보원이 국외 파견 요원에게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 조작 관련 지시를 전달할 때 활용한 전문이 2급인 대공수사단장의 결재가 있어야 하는 문서로 확인됐다.

최소한 대공수사단장까지는 이번 사건의 증거 조작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2일 정보당국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정원이 국외 파견 요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할 때 사용하는 암호화된 전문은 2급이 전결권자다. 공작금도 최소한 2급 이상이 결재해야만 집행된다고 한다.

 

이번 증거조작 사건 지휘·보고선상에 있는 2급은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이다. 최아무개 단장은 지난해 5월께 부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첩 혐의를 받는 유우성(34)씨의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될 증거들은 지난해 10월께부터 위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찰은 최 단장 바로 아래인 이아무개 대공수사처장(3급·팀장)이 4급인 대공수사국 김아무개(48·일명 ‘김 사장’·구속기소) 과장, 권아무개(51) 과장과 함께 증거조작 관련 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보고, 이 처장까지만 형사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전문에 실제로 결재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누가 결재했는지는 최종 수사결과 발표 때 밝히겠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윤갑근)이 지난달 31일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을 보면, 김 과장과 권 과장은 국정원에서 파견된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 이인철 영사에게 4차례에 걸쳐 전문을 통해 증거조작 관련 지시를 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12일 “중국 시각 오전 10시30분께 길림성 공안청이 아닌 화룡시 공안국으로 (대검찰청의) 발급사실 확인 요청 공문을 발송하라”고 시킨 데 이어, 11월27일과 28일에도 이 영사에게 자신들이 위조한 문서를 정식 절차를 거쳐 대검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12월16일에는 국정원 협조자 김원하(62)씨가 위조한 ‘삼합변방검사참(세관) 정황설명서에 대한 답변서’ 등의 내용이 맞다는 ‘확인서’를 작성해 외교행낭으로 보내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5월께까지 대공수사단장이었던 김아무개씨도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단장은 유씨 수사를 위한 태스크포스의 일종인 ‘종합반’ 반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김 전 단장은 항소심에 제출된 증거의 조작에 직접 관여한 건 아니지만, 유씨 사건을 초기부터 주도한 사람이다. 1심에서 불거진 증거 은닉 등 여러 의혹을 밝히고, 이 사건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려면 김 전 단장 조사가 필수”라고 말했다.

 

한편 수사팀은 유씨 변호인단이 낸 중국 공문서 입수 경위와 탈북자 단체가 제기한 위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유씨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하지만 유씨의 변호인들은 “고발사건 조사는 재판이 끝나고 해도 되는데 자꾸 소환 통보를 하고 있다. 변론 준비를 못 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유씨가 앞으로도 출석 요구에 일절 불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검찰은 유씨가 계속 출석하지 않으면 구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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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선' 뻔히 보이는데, 수사 미적거릴 이유 없다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간첩 혐의 증거조작 사건’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검찰 수사를 통해 하나둘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단서 삼는다면 누가 증거조작을 최종 결정하고 승인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검찰 수사팀이 국정원 대공수사국의 김아무개 과장 등을 기소하면서 낸 공소장 등을 보면, 국정원은 지난해 말 4차례에 걸쳐 중국 선양 총영사관의 국정원 출신 영사에게 전문을 보내 증거조작과 관련한 지시를 했다.

이런 암호 전문의 발송은 국정원 내부 규정상 대공수사단장 등 2급이 전결권자라고 한다. 4급인 김 과장이 독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 단서도 있다. 공소장에는 국정원 협조자 김아무개씨가 문서 위조 비용을 요구하자, 김 과장이 74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온다.

국정원에서 이 정도 돈을 지급하려면 2급 이상 간부의 결재를 거치도록 돼 있다고 한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철저한 결재를 요구하는 국정원에서 전문 발송이나 공작금 집행의 경위와 명목을 상급자가 모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 부서가 관련된 일인 만큼,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윗선’이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고 재가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도 맞는다.

 

그렇잖아도 김 과장 등은 서울 내곡동 국정원 사무실에서 일과시간에 사무실 팩시밀리를 통해 위조문서를 선양 총영사관에 보내는 수법으로 가짜 증거를 만들어 법원에 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버젓하게 위법을 저질렀으니, 조직 차원에서 용인되고 추진된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증거조작은 1심 법원에서 간첩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뒤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대선개입 댓글 사건으로 국정원의 존립 근거가 의심받던 시점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한 국정원 지도부의 독려나 묵인이 있었으리라는 의심은 당연하다.

 

이 정도 단서와 정황이라면 김 과장의 상급자인 3급 대공수사처장 외에 2급인 대공수사단장과 1급인 대공수사국장도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 차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정치적 책임을 묻기에 앞서 실제 관여 여부를 조사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팀은 과장이나 처장에게 증거조작의 책임을 묻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하려는 기색이라고 한다.

범죄 혐의와 수사 대상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렇게 중도에 수사를 접는다면, 검찰은 스스로 특검의 재수사를 불렀다는 불명예를 또 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 수사의 엄정함과 독립성을 믿는 사람도 줄어들 터이니, 검찰이 수사권과 독점적 기소권을 고수하기도 힘들어진다. 검찰이 명운을 걸고 나서야 할 이유다.


[ 2014. 4. 3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