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정통성에 의문 던진 ‘원세훈 판결’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국정원 조직을 동원해 후보들을 지지·비방하는 댓글·트위터 활동을 벌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판결과 달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인정됐다는 점에서 항소심 판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이 국가기관의 부정선거로 오염됐다는 점을 사법부가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드러난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공작 실태에 비춰보면 이번 판결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앞선 1심 판결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선거 기간에 특정 정당·정치인을 지지·비방하는 활동을 벌인 게 국정원법상 금지된 정치관여라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선거운동으로 볼 만큼 능동적·계획적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모순된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정치관여 활동이 (선거 시기에) 선거개입으로 전환되는 것은 이미 내포하고 있었던 문제”라고 핵심을 짚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야당 후보 비방 글이 급증하고 선거 쟁점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들어, 능동적·계획적 선거운동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법리와 더불어 사실관계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1심은 국정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175개와 트위트 글 11만여건만 증거로 인정했으나, 항소심에서는 트위터 계정 716개, 트위트 글 27만4800건으로 늘어났다. 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공작의 실체가 인정된 것이다. 실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친 정도도 그만큼 컸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 사건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는 약칭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장과 일부 직원들이 정치관여라는 구시대적 일탈행위를 저지른 데 그치지 않고, 선거라는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한 훨씬 심각한 범죄행위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지적했듯이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근본적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도 의문에 직면하게 됐다.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공작이 실제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계량하기 힘들겠지만, 선거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민주적 권력 창출의 근본 원리가 흔들린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싼 혼란을 막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의 실체를 더 철저히 밝혀야 한다. 그동안 수사팀은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수뇌부의 방해 속에 혐의를 입증할 최소한도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도 힘겨웠다.
원세훈 전 원장의 범행 동기나 배경, 박근혜 후보 쪽의 인지 여부 등 더 확인돼야 할 대목이 여럿 남아 있다. 박 대통령도 이런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이라고 본다.
[ 2015. 2. 10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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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구속에 '朴대통령 정당성 논란' 급확산
야권-시민사회 "朴대통령 해명하라", 靑 침묵속 전전긍긍
2심 재판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뿐 아니라 공직선거법까지 위반했다며 법정구속하자,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등, 파장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과 자신의 무관성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6월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국정원 국정조사 수용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오자,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은 그해 9월 김한길 대표와의 회동에서도 "(당시) 국정원에 지시할 위치가 아니었고, 도움받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러다가 2심 재판부가 선거법 위반으로 원 전 원장을 법정구속하자, 청와대는 아연실색하는 분위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에 야권이나 시민사회 분위기는 다르다.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곳은 진보신당 창당을 추진중인 '국민모임'이다.
국민모임 신당추진위 오인애 대변인은 9일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은 박근혜 현 대통령이 국정원의 조직적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된 가짜 대통령임을 거듭 확인시켜 준 사법부의 역사적 판결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로써 자동적으로 대통령의 법적 지위를 상실케 됐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을 더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정의당 반응도 강력하다.
김종민 정의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대선, 국정원으로부터 도움 받지 않았다던 박 대통령이 이제 답해야 한다"고 박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그는 또한 "국정원은 최고 권력자와만 직접 소통하는 비밀스런 기관"이라며 "그렇다면 원세훈 전 원장에게 누가 지시를 했는지, 그리고 어떤 경로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국민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MB를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전 박 대통령과 MB 회동때 모종의 밀약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인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공식반응은 상대적으로 조금 조심스럽다. 유은혜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에 대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 야권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신임 당대표가 된 시점에 강력 문제를 제기할 경우 '대선 불복'이라는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별 의원들 반응은 다르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 불법으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직은 유효인가? 무효인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중대사가 될 듯!”이라고 말했다.
그는 10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도 "실제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국정원의 본연의 업무를 벗어나 댓글조작을 했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잖나?"라고 반문한 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당성 논란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노웅래 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조직적으로 대선개입 선거에 영향 미쳤음이 확인됨”이라며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도움 안 받았다고 한 말에 대해 답해야 한다”고 박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역시 트위터를 통해 “이제 MB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정배 전 법무장관도 10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로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이 원세훈 원장의 지휘하에 광범위한 불법선거운동을 했다하는 것이 확인됐다"며 "그들의 불법행위로 사실은 대선 결과에 심각한 영향이 있었지 않나 생각될 정도"라고 우회적으로 박 대통령의 정통성을 문제삼았다.
시민사회 반응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18대 대선이 불공정하게 진행되었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에 큰 흠결이 있음이 사법적으로도 확인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가뜩이나 박 대통령 지지율이 레임덕 수준으로 급락한 상황에서 정통성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향후 정국은 더욱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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