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사전쟁, 막장이냐 최전선이냐. 베트남 마저 국정교과서 폐지하는데...

道雨 2015. 10. 21. 10:25

 

 

 

역사전쟁, 막장이냐 최전선이냐

 

 

 

시인 황지우는 1980년대를 두고 “막장이냐, 최전선이냐”를 물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질문은 ‘역사전쟁’을 두고 다시 유효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는 하나의 ‘막장’이다.

40년 전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유신 정신’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국정화는 무엇을 위한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가?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국정화에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은 그간의 대통령 발언 등에 비추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유신으로의 회귀’라는 강력한 비판에 직면할 줄 알면서도,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종북몰이를 하면서까지, 현 정권이 출구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이 ‘역사전쟁’은 권력이 막장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선언이다.

 

한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효녀 심청은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지만, 효녀 대통령은 그 아버지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 차라리 전 국민의 눈을 멀게 만들려 하고 있다.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

역사교육이란,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살피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미래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작업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현재의 권력이 과거의 역사를 독점해 그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결과적으로 미래에 대한 시선을 차단한다는 점에서도, 한 사회를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막장이라고 할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말 그대로 ‘최전선’의 문제이기도 하다.

김무성 대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만 하는 역사전쟁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역사전쟁’이라는 전쟁의 비유는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1984>)

정권의 목적은 ‘장기집권을 위한 진지 구축’에 있다.

과거-현재-미래를 규정하기 위한, 정권 주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총체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학생이 대자보에서 지적했듯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점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최전선의 싸움이다.

1992년 헌법재판소가 지적했듯이,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세계관, 다양한 사상의 형성에 역행하는 교육내용이나 교육방법 등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용납될 수 없”(변정수 재판관)고, “교과서 문제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하여 획일화를 강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이념에 부합하는 조처라 하기 어렵다.”(결정문)

국정교과서는 우리 사회가 질서의 뼈대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를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주도하는 ‘역사전쟁’은,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의 프레임을 정권 비판이 아닌 ‘종북 프레임’, ‘좌와 우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으로 삼기 위한 선거전략의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까운 장래의 권력 결정에 변수가 될 수 있는 정치적 ‘최전선’의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합리적인 상식의 차원에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피할 수도 패해서도 안 되는 싸움이다.

 

 

황지우가 ‘꽃말’이라는 시에서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의 머리를 좌경화시킨다는 것을 몰라요?”라고 했던 질문을 이번 ‘역사전쟁’에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국정화를 막을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국정화에 반대하는 상식적인 시민들이 이 ‘전쟁’에 함께하고 있다는 점만은 무엇보다 큰 희망이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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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도 검정 채택…‘박근혜표 교과서’만 거꾸로 간다

 

 

 

‘교과서 검정제 등 교육개편 비준’
공산당 기관지 인터넷판서 확인
“선진교육 추세에 완전 부합” 평가
‘한국제도 배우자’ 수년전 사절단도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역사 과목을 포함한 전체 교과서를 ‘검정’으로 전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베트남은 북한·방글라데시 등과 함께 국정제를 전면적으로 채택한 국가로 분류돼왔다.

사실상 공산당 일당 체제인 베트남마저 국정 교과서를 폐기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 전환은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 시도라는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가 20일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의 인터넷판인 <베트남 공산당 전자 신문>의 기사를 확인한 결과, 베트남 정부는 지난 4월20일 ‘하나의 교육과정과 다양한 교과서’를 핵심으로 하는 전면적인 교육과정·교과서 개편안을 비준한 것으로 밝혀졌다. 

 

<베트남 공산당 전자 신문>은 이날치 기사에서 “정부가 비준한 교과서 개편안으로, 더이상 유일한 독점 교과서 체제가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며, “개편안에 따라 2018~2019 학년도에, 하나의 표준교육과정 틀 안에 많은 출판사들에 의해 다양한 교과서들이 나와 각급 학교에서 가르치게 된다”고 전했다.

 

 

기사는 팜민학 전 베트남 교육개발부 장관의 말을 인용해 “이것은 선진 교육 추세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과서와 교육 프로그램에 중점을 둔 개편안은, 학생들의 적극성과 주도성,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여 자기 주도형 학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베트남 공산당 전자신문 사이트의 ‘교과서 개편’ 관련 기사.
* 베트남 공산당 전자신문 사이트의 ‘교과서 개편’ 관련 기사.

 

 

 

 

이 기사는 “수업에 사용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는 교과서를 채택하기 위해서는, 교육개발부가 주도하는 국가 차원의 심의 검정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베트남어로 작성돼 있으며, <한겨레>는 복수의 베트남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기사 내용을 번역·확인했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교육부 산하 교육과정연구소와 국가에서 경영하는 교육출판사가 교육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으며 교과서의 집필·발행·배급을 관장해왔다.

그러나 경제 부문 개혁·개방 이후 교과서 발행의 국가 독점에서 오는 폐해를 인정하고, 국외 기관들과 협력해 교육개혁 방안을 마련해왔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3월 베트남 정부에 ‘국정 교과서 폐지’를 권고한 보고서를 채택했다.

 

특히 베트남은 그동안 한국을 ‘모범’으로 삼아 교육과정과 교과서 발행체제 개정 작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방지원 신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베트남은 검정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몇년 전 사절단을 보내 한국의 교육개혁 성과와 교육제도를 살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방 교수는 “베트남은 공산당의 통제가 강한데도 아이들의 경쟁력과 창의력을 위해 교과서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창의·융합 인재를 기르겠다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 교과서로 회귀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에 너무도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