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비핵화 과정 8개월, 북한도 남는 장사 했다

道雨 2018. 11. 12. 10:14



비핵화 과정 8개월, 북한도 남는 장사 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간 비핵화의 도정에 나선 지 8개월,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이미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그 변화를 실감하려면 우리가 작년까지 겪었던 네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된다. 한반도의 위기를 끝없이 고조했던 북한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매년 몇차례씩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수반하며 치러졌던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 휴전선과 북방한계선(NLL)에서 일촉즉발의 남북 간 대치국면.


2018년 이들 장면은 단 하나도 재연되지 않았다. 그리고 영구 삭제 작업에 돌입해 있다. 확신하건대 우리가 비핵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평화와 경제적 공동번영이 기약된 한반도를 맞게 될 것이다.


이런 극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 협상 교착이 길어지자,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회의론이 득세하기에는 짧은 비핵화 과정에서 미국도 북한도 이미 꽤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조야에서 회의론에 바탕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접근법을 비난하지만, 사실상 미국이 지금처럼 북핵 문제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본 적이 없었다. 트럼프 이전의 어느 미국 대통령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북한에 한푼의 달러도 지불하지 않고 이것들을 얻어냈으며, 풍계리 지하 핵실험장 폐기도 챙겼다.

1998년 북한 금창리에 소재한 ‘핵시설 의심 땅굴’ 하나를 보기 위해서 밀가루 50만톤을 북한에 제공했던 미국이다.


북한도 비핵화 과정에서 미국의 선 핵포기 입장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사실 상당한 것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일 안보적,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 우리에게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단순히 방어훈련이지만, 북한은 북침훈련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이 훈련이 시작되면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 전쟁 대비 체계로 돌입하며, 전체 사회가 동원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에 올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은 지난 4월부터 국가발전 총노선을 ‘경제건설 총력 집중’으로 설정한 뒤, ‘그 실현을 위해 한반도와 그 주변의 평화적 환경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북한 스스로가 핵, 미사일 도발을 중단한 상황에서, 이 평화적 환경을 위해 한-미가 해주길 바랐던 것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8개월 동안 비핵화 과정에서 남한, 미국, 중국 등의 지도자들과 빈번하게 정상회담을 치르면서, 대외적으로 자신과 북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대내적으로는 외교 역량을 갖춘 완성된 국가지도자상을 구축했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주민들을 ‘백년 숙적’ 미국발 공포에서 해방시키고, 경제제재 해제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처럼 비핵화 과정은 한반도 안보환경을 극적으로 개선하고, 출발부터 미국과 북한 모두에 상당한 이익을 주고 있다. 이는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를 향해 계속 전진해야 할 분명한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미 양측은 현재 비핵화 수순 등 방법론을 두고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북한이 좀더 대담한 유연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북-미 양측의 주장을 순수하게 논리로만 평가하면, 극한의 불신으로 점철된 기존의 북-미 관계를 고려할 때, “신뢰 조성을 선행시키며” 북-미 공동성명의 조항들을 균형적, 동시·단계적으로 이행해나가자는 북한의 주장이 합리적이다. ‘북한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미국의 입장은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그러나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은 최근 통상문제에서 보여주듯이, ‘자기 명분이 뚜렷하면’ 대외관계에서 국익 관철을 위해 종종 비합리적인 주장도 밀어붙인다. 이 경우 강대국들조차도 미국과 절충점을 찾아 타협을 시도한다. 그게 냉엄한 국제 역학 속에서 각국이 국익을 증진해나가는 현실적인 길이다.

더욱이 비핵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일방주의는 상당 부분 ‘역사 속의 북-미 관계에서’ 미국이 경험하고 쌓아온 ‘북한 불신’에 기인한다. 북한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유연성을 끌어내기 위해 좀더 진전된 추가 제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런 양보 조처는 미국의 대북 신뢰를 조성하여, 이후 비핵화 과정에서 동시 이행과 균형적인 북-미 관계 형성은 물론이며, 비핵화가 열어놓을 북한의 새로운 미래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본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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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9794.html?_fr=mt0#csidx92c087dfa16c9ff9fa295721c8308f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