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한겨레는 <‘주52시간 상한제’ 탓?…게임업계 ‘빅3’ 모바일게임 ‘풀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게임 업계 부진이 주 52시간 상한제 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국산 인기 모바일게임에 대한 중국 판호(게임 출시 허가)가 늦어지고, 지난해 실적이 좋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 시행 영향이 컸다” (업계에선..)
“모바일게임 사업은 다양한 신작을 끊임없이 내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 시행으로 야근과 특근이 사라지면서 애초 예정됐던 신작 출시가 늦어졌고, 그에 따라 3분기 실적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한 업체 임원은)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가 시행되면, 신작 출시 등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권영식 넷마블 공동대표)
한겨레 김재섭 기자는 게임 업계의 입을 빌어 게임 업계 빅 3인 넥슨, 엔씨 소프트, 넷마블의 부진이 모두 주 52시간 상한제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기사를 읽은 네티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sogn****
그럼 사람을 더 뽑아야지. 계속 공돌이 못 갈아넣었다는 핑계만 대네…
dark****
게임을 ㅈ같이 만들었는데 무슨 주 52시간탓이야
apxk****
52시간 전에는 잘만들었냐 그냥 핑계야 돈독에 올라서 게임성보다 수익성에만 집착해놓고 52시간 탓하냐 스토리는 맨날 마족과 천족 영웅이 나타나고 플레이는 현질해서 높은 등급을 뽑아야하고 이딴걸 만들어놓고는 비슷한걸 양산해놓고는 무슨 52시간이야
dkdl****
사람 열명이서 할일을 5명 4명이서 시키고 꿀빨다가 안되니 징징대네
psyc****
주 52시간이라고 게임 못 만들면.. 선진국에서 만든 게임은?? 개소리하지마라..
야근을 밥 먹듯 해도 수당은 없었던 게임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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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9일 중앙일보 기사. 게임 개발자들이 수당도 받지 않고 야근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도했다. ⓒ중앙일보 PDF |
한겨레의 기사가 네티즌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을 받은 이유는 게임 업계에서 벌어지는 노동 강도와 무급 야근 등을 외면한 채 게임업계, 즉 고용주의 입장에서만 기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7년 2월 9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직원들 잇단 사망에 야근 줄이는 게임업계>라는 기사에는 ‘밥 먹듯이 야근을 해도 택시비만 받을 뿐 수당은 없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게임업계의 노동 수준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사 말미에는 “업무량과 직원 수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야근과 주말 근무를 없앤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게임업계의 개발자와 직원 숫자는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신작 게임 출시는 여전히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2016년, 게임업체 직원들의 자살과 돌연사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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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넥슨과 넷마블에서 일했던 개발자와 직원들이 투신 자살을 하거나 과로 때문에 숨졌다. ⓒ연합뉴스 화면 캡처 |
2016년에는 게임업계 직원들의 자살과 돌연사가 이어졌던 해였습니다. 엔씨소프트 개발직으로 일했던 직원이 판교 사옥에서 투신해 숨졌고, 넷마블의 한 개발자도 구로구 사옥에서 투신했습니다.
2016년 7월에는 넷마블 직원이 돌연사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당시 넷마블은 “해당 사망 사고는 과로와 연관 지을 근거가 없는데 과로사를 전제로 설문해 문제가 크다”라며 ‘노동건강연대’의 실태 조사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사결과 직원은 1주일에 무려 89시간이나 근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정했습니다.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긴 한국의 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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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상한제의 사회경제적 효과에 나온 OECD 국가별 노동시간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OECD 국가별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최악일 정도로 긴 편입니다. 정부가 OECD에 보고한 한국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6년 2,069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연간 2,255시간) 다음으로 길었습니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원래부터 근로 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입니다.
근로기준법 제53조를 보면 당사자가 합의하더라도 주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법률로 근로시간을 정한 이유는, 아무리 법이 있어도 회사나 고용주들이 막무가내로 일을 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법정 근로시간을 10% 줄이더라도 실제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8% 정도만 단축됩니다. 법에서 강제를 해도 현실은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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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7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게임 개발자 크런치 모드’ 관련 기사 ⓒ조선일보 뉴스 화면 캡처 |
게임업계에서는 ‘크런치 모드’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게임 출시를 앞두고 비상근무를 한다는 뜻입니다.
2017년 게임업계의 크런치 모드를 보면,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토요일과 공휴일도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출근을 합니다. 휴가와 일요일 휴무도 최대한 자제를 하고, 게임 출시가 지연되면 회사는 수당을 반납하도록 지시합니다.
우리나라가 게임 강대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게임업계의 크런치 모드를 보면, 마치 60~70년대 구로공단에서 밤새 미싱을 돌리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주 52시간 상한제는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강제 규정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한겨레가 주 52시간 상한제 때문에 기업이 부진하다고 보도한 것은, 노동자가 아닌 기업주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게임 수준은 OECD 최고이지만, 게임 개발 노동 환경은 OECD 최저 수준인 나라에서, 게임업계 대표의 말을 검증 없이 기사로 쓰는 것은 언론이 취해야 할 보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