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뉴스쇼의 ‘이한영 죽이기’ ①
CBS가 이한영 사건을 다룬 이유 “최근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서”
강진욱
CBS가 왜?
CBS 뉴스쇼가 6월 18일 ‘이한영 살해 사건’을 다뤘다. 아주 엉터리로!
「[탐정 손수호] 대동강 로열패밀리 이한영, 왜 죽였나」.
이한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로 1982년 안기부에 의해 납치돼 서울에 왔고, 1997년 2월 15일 밤 9시 50분 경, 더부살이 해 온 한양대 선배(한양대 직원)의 분당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피격, 열흘 뒤 사망했다.
CBS 뉴스쇼는 이한영 사건을 다룬 이유에 대해 “최근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서”라고 밝혔다. “지난 2년 동안 분위기가 그래도 좋았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분단 이후 그동안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97년 이한영 피살 사건”이라고 부연했다.
남북관계가 가끔 좋은 때도 있지만, 북측은 항시 어떤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앵커의 끝 멘트는 조금 뉘앙스가 달랐지만 주된 논조는 그랬다). 분단체제 아래 체화된 무의식에 잠재된 진심이다. 이 땅의 분단체제가 70년째 지속되고 있는 근원을 발설한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질 만하면 어떤 - 조작된 - 악몽을 상기하며 적대적 분단 구조에 안주하게 만드는 자기기만적 장치다. 남북분단체제가 만든 - 남북분단체제를 조작하고 지탱하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 정신병적 상태 바로 그것이다.
이한영 사건이 일어난 때는 북녘이 ‘100년만의 대홍수’(1995)에 이어 1996년부터 내리 3년 극심한 가뭄 등으로 대기근이 시작될 때였다. 김영삼 정권이 ‘대북 흡수통일론’에 흠뻑 도취해 있을 때였다. 제네바합의를 못마땅해 하는 미국 매파가 이 합의 이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 갖은 수를 쓸 때이기도 했다.
[이 씨 피격이 황[장엽] 비서 망명 요청에 대한 연쇄보복의 신호탄인지, 경고성 단발 사건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렇잖아도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 22일로 예정됐던 북한 신포 경수로발전소 7차 부지조사단의 파견은 ... 불투명해졌다. 또한 남북교역의 계속 진행도 재검토 ... 정부가 대북 현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 한 발 후퇴해 속도를 늦추거나 잘 해야 현상태를 유지 ... 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이후 조문 문제로 난조에 빠진 남북관계는 ... 또다시 정면충돌의 위기를 맞았다.](<동아일보> 1997.2.17)
이한영 사건에 대한 CBS 제작진의 이해는 23년 전 사건 발생 당시의 ‘안기부 해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중.동도 아니고 CBS가 왜 ‘안기부 빨대’ 같은 짓을 할까.
『스위스에 간 지 한 2주쯤 지나서 이한영이 ...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어요. “나는 북한 외교관이다. 내가 북한 외교관 여권도 있고 공무원 여권도 있고 여권이 총 3개 있는데, 혹시 미국 여행을 할 방법이 없겠느냐.”(앵커 : 그렇게 한국대사관에 물어봤어요?) 우리 대사관이 발칵 뒤집혔죠. 그래서 일단 만나자고 해서 만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정보기관의 작전 하에 프랑스, 벨기에, 독일, 필리핀, 대만 거쳐서 김포공항으로 들어옵니다. ... “일단 한국에 가면 그 다음에는 언제든 미국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 서울로 가자.” 이런 설득이 통한 거죠. (앵커 : 우리 정보기관이 설득한 거군요. 망명을.)』(CBS 뉴스쇼)
CBS 뉴스쇼는 23년 전 안기부 해설에만 근거해 스크립트를 만들었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의혹이 제기됐고, 누구는 공개적으로 그 정황을 밝혔다. CBS는 이 사실을 외면했다. 그러면서 뉴스쇼 진행자와 출연자가 말을 주고받으면서 ‘설득에 의한 자발적 망명’이라고 우겼다. 안기부의 역사 조작에 가담한 셈이다.
이한영 서울행은 ‘납치’
‘이한영의 사건’과 관련해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그가 납치돼 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안기부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공개적으로는 그 누구도 이 해설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러니 ‘단정’하지 마라? 그건 안기부가 할 소리! 언론은 어느 쪽 이야기가 맞는지를 면밀히 살핀 뒤 나름의 ‘소결론’을 내려줘야 한다. 그는 납치돼 온 것이 분명하다고! 아니면 납치돼 온 것 같다고! 스위스에 나와 있다 미국에 가고 싶어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는 말은 이한영도 부인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소설가 황석영 씨는 2002년 1월 3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인권센터 창립대회에서 “이한영으로부터 ‘강제로 납치돼 한국으로 오게 됐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황 씨는 ‘무허가 방북’ 때문에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고, 1993년 여름 이한영이 사기죄로 이곳에 들어와 함께 있었다.
운동 시간에 이한영이 먼저 다가 와 자신의 신분과 한국에 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미국에 가고 싶어 한국대사관에 전화했고, 며칠이 지난 1997년 1월 28일 한국대사관 직원을 만나 그와 함께 택시를 탔는데 깨어나 보니 서울이었다고 이야기했다(저쪽 로열패밀리라는 애들이 이렇게 철딱서니가 없을까. 남한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른단 말인가. 우리는 어릴 적부터 ‘북한 = 무시무시한 생지옥’이라는 세뇌를 받았는데!).
이한영은 그렇게 말한 뒤 “선생님이 기자를 불러주면 제가 납치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황 씨는 뭐라 했을까? “그런 얘기 하지 말고 조용히 살라”고 충고했다 한다. 딱한 처지에 놓인 애가 자칫 큰일을 치를 수도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어린 애가 미쳤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가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몇 안 됐기 때문이다. 이한영은 황 씨에게 그런 말을 건넨 뒤 곧 석방됐다.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온 황 씨와 이한영을 같은 구치소에 계속 둘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CBS는 이런 사실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뉴스쇼가 끝난 뒤 ‘댓꿀쇼’라는 유튜브 방송 말미에 출연자가 “자발적으로 왔든, 강제로 왔든 ...”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한영의 납치 정황을 인지는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일단 한국에 가면 그 다음에는 언제든 미국 갈 수 있다. ... 이런 설득이 통한 거죠.” “우리 정보기관이 설득한 거군요, 망명을.”이라고 스크립트를 쓴 것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다는 뜻이다(안기부 빨대가 되기는 매우 쉽다).
또 그런 엉터리 결론을 뒷받침한답시고, “이한영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남한 사회를 동경”한 것처럼 떠벌리면서 이한영 사건의 진상을 또 한 번 왜곡했다. 황 씨의 폭로 직후 <오마이뉴스> 기자는 2주 간 심층 취재 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황 씨의 증언 이후 <오마이뉴스>는 10여 일 간에 걸쳐 이한영이 쓴 자서전, 그의 어머니 성혜랑(66)의 자서전, 당시 국내 언론의 보도 내용, 그리고 한국 체류 시절 [이한영이] 가깝게 교류한 주변 인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82년 이 씨의 ‘귀순’ 당시의 상황을 정밀 점검한 결과 이 씨의 ‘한국 귀순’은 다분히 타의로 이뤄진, 즉 ‘납치’ 쪽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결론내렸다.](손병관 기자「이한영씨, 생전에 “나는 납치됐다” 소설가 황석영씨에 주장」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6459/ 2002.2.14)
이한영의 납치 정황을 외면한 CBS는 이 씨의 이름 ‘한영’이 “한국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민증 번호 중 (생년)월일이 그가 서울에 온 날이라고도. 그럴까? 그 이름과 주민증 번호 역시 그를 납치해 온 안기부가 조작한 것 아니었겠나. 이한영의 주민번호는 서울에 온 날이 아니고 스위스에서 안기부 요원들을 만난 날이다(XX0128)!
언론의 본분은 끊임없는 회의와 사유다.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된 남북관계의 역사를 다룰 때는 더 많이 회의하고 사유해야 한다(하기는 ... 남북관계사가 온통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돼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안기부가 조작한 살해 목격담
다음은 이 씨가 분당의 아파트 14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살해될 때의 상황.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맞은편 집에 살던 박 모 씨 ... 현관 밖에서 소리가 나니까 본 거에요. 현관문에 렌즈가 있었잖아요. ... 권총을 겨눈 남자를 보고 즉시 112와 119에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밖을 봤더니, 한 남자가 권총에 소음기를 꼈고요, ... 두 발을 발사 ... 범인들은 즉각 도주 ... 공작원들이 현장을 떠난 후 목격자 박 씨도 밖으로 나왔어요. [이 씨가] 맞은편에 있던 선배 집 문을 두드렸고, 선배 아내가 나와서 이한영 씨를 보고 이게 무슨 일이냐 물어봐요. ... 이한영 씨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서 간첩, 간첩이라고 말했어요. 이후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 』(CBS 뉴스쇼)
CBS는 안기부 각본대로, ‘정체불명의 괴한’을 ‘(북한)공작원’이라고 확언한다. 그런데 위 목격담은 안기부가 합동수사반을 앞세워 경찰을 따돌리고 초기 목격담을 조작해 만든 것이다. 수사 단계에서 그 조작 정황이 다 드러났었다.
[이한영 씨가 피격 직후 쓰러진 상태에서 “간첩이다”라고 외마디 소리를 했다는 남상화(南相華. 43.여) 씨의 목격자 진술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가 피격당하기 전까지 더부살이를 해 온 김장현(44) 씨의 부인인 남 씨는 18일 “사건 당시 문을 열고 나가 이 씨의 피를 닦으면서 뭔가 웅얼거리는 소리는 들었으나, 내용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남 씨가 들은 것으로 경찰에 조사돼 있는 “간첩이다”라는 이 씨의 마지막 목소리는 합동수사본부가 이 사건을 간첩의 소행으로 규정하는 주요 근거가 됐었다. 남 씨는 이날 밤 재조사를 위해 아파트로 찾아 온 수사관들에게 “사건 직후 주변에서 ‘간첩 아니냐’며 웅엉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며 “그러나 경찰에서 처음 조사받을 때는 다른 사람도 ‘간첩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데 나만 아니라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난처해질 듯 해 얼떨결에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는 이날 밤 이 대목이 논란을 빚자 “남 씨를 상대로 다시 조사한 결과 그는 ‘최초의 진술을 번복한 바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남 씨와 취재진의 직접 대면은 허용하지 않았다.](「“간첩” 외마디 듣지 못했다」<한겨레신문> 1997.2.19)
“그러나 경찰에서 처음 조사받을 때는 다른 사람도 ‘간첩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데 나만 아니라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난처해질 듯 해 얼떨결에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한 것” 이게 무슨 말인지 추리가 안 돼? ‘다른 사람들이 간첩이라는데 당신만 왜 아니라고 해(요)!’ 안기부 수사관이 이렇게 은근히 압박했다는 말 아닌가.
[이 씨가 피격 직후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며 “간첩”이라고 말했다고 전한 최초 목격자 남상화(42.여)의 진술이 바뀌고 있다. 남 씨는 이날 “간첩이라는 말을 정확히 듣지 못했다”며 “옆에서 누군가가 ‘간첩이라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 씨가 자신의 집인 1402호 안에서 비디오폰으로 범행 현장을 보는 동안 남 씨와 마찬가지로 맞은편 집인 1401호 안에서 비디오폰을 토해 내다보다 밖으로 나와 남 씨와 함께 이 씨 옆에 있었던 박종은(朴鍾恩. 44) 씨도 “간첩이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혼선 빚는 경찰 수사」<경향신문> 1997.2.19)
“옆에서 누군가가 ‘간첩이라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사건 현장 또는 조사 과정에 누군가 옆에서 ‘간첩’이라는 말을 진술서에 끼워 넣으려 했다는 말이다. 목격자의 진술이 엇갈리자 <경향신문>은 1401호 주민 박종은 씨의 진술을 토대로 “피격 전후 상황을 재구성”했다.
[이 씨의 임시 거처인 1402호와 마주하고 있는 1401호의 박 씨는 무의식적으로 비디오폰을 통해 ... 남자 2-3명이 복도에 서서 싸우는 듯 ... 즉시 경비원에게 인터폰으로 알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인터폰 통화를 포기하고 계속 비디오폰으로 살펴보니 남자 2명이 황급히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고 ... 이 씨는 쓰러진 채 1402호의 철제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즉시 112와 119로 전화를 한 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이웃인 남 씨가 먼저 나와 있었다. ... 총소리는 없었고 화약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남 씨가 얼굴을 이 씨 가까이 대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예인 아빠, 누가 이렇게 했어[?]”라고 물었다. 한참 후[?] 경비원 김제희 씨가 현장으로 달려왔다. 박 씨는 이 씨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남 씨가 박 씨에게 “뭐라고 얘기하는 것이냐”라고 묻거나 이때 자신이 “간첩이라잖아”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는 것. ... 5분 정도 지나 도착한 구급대가 이 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박 씨는 현장에 달려 온 경찰이 “당시 상황을 말해 보라”고 묻자 “이 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을 뿐이었다.](「앞집 목격자가 본 ‘피격 순간’ : “2명 황급히 도주...화약 냄새도 안 나”」<경향신문> 1997.2.19)
증언자가 또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 김 씨. 애초부터 안기부는 경비원 김 씨의 진술을 숨긴 채 주민 두 사람의 이야기만으로 목격담을 구성하려 했던 것이다. 마치 경비원 김 씨가 ‘간첩이라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다른 주민들이 들은 것처럼 꾸미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 씨도 ‘간첩’ 어쩌고 하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모두 조작이었다.
[목격자인 남상화 씨와 남 씨의 이웃인 박종은 씨는 각각 “이 씨가 그런 말을 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이들보다 늦게 현장에 도착했던 아파트 경비원 김제희(김제희, 58) 씨도 “당초 남 씨가 ‘뒤에서 누군가 간첩이라잖아요’라고 말했다며 나를 지목하고 있으나 나는 간첩이라는 말을 한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이 씨 피격 전문 재수사 ... 목격자 진술 번복, ‘벨기에제 권총’도 근거 없어」<경향신문> 1997.2.20)
[남상화 씨는 18일 ... 재조사 과정에서 “간첩이란 말은 처음에 직접 듣지 못했고, 당시 사건 현장에 달려 온 아파트 경비원 김제희(60) 씨가 ‘간첩이라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 씨의 입술 모양을 읽어 알게 된 것이다”고 말해 애초 진술에 대한 신빙성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남 씨에게 간첩이란 얘기를 해 줬다는 김 씨는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내가 목격자 중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이 씨의 피를 닦아주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 씨로부터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밝혀 남 씨와 동떨어진 진술을 했다.](「예단 갖고 한 수사 ‘흔들’ ... 목격자들 ‘간첩 ...’ 진술 엇갈려」<한겨레신문> 1997.2.20)
안기부와 기무사, 정보사 및 경찰 등이 관여하는 소위 ‘합신조’(합동신문조) 수사 및 발표가 모두 엉터리였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당연지사.
[이에따라 대공수사에 무게를 둬 왔던 경찰은 뜻밖의 암초에 부딪치면서 수사 방향이 총기 논란에 이어 또다시 헝클어지게 된 셈이다. 더욱이 경찰은 그동안 이 씨가 쓰러진 장소에 있던 목격자의 수가 정확히 몇 명인지도 파악하지 못하는가 하면, 이들의 엇갈린 진술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수사본부가 이렇게 불명확한 남 씨 한 사람의 진술 등에 의존해 수사의 금기인 ‘예단’으로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닷새를 보냈다가 원점에서 재수사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이번 사건 수사는 자칫 미궁으로 빠져들 우려를 낳고 있다.](「예단 갖고 한 수사 ‘흔들’ ... 목격자들 ‘간첩 ...’ 진술 엇갈려」<한겨레신문> 1997.2.20) <계속>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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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뉴스쇼의 ‘이한영 죽이기’ ②
권총 증거 조작도 외면
CBS 제작진은 안기부가 사건의 정황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안기부 해설’에 신빙성을 부여하려 무진 애를 썼다. 범행에 사용된 권총에 대한 설명에서였다. CBS 제작진은 ‘댓꿀쇼’에서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지만 ... 암살용으로 쓰는 소형 권총”이라며 “총의 위력이 작아 두꺼운 잠바를 뚫지 못해 (탄환이) 옷 속에서 발견됐다”고 떠벌렸다. “가까이서 쏴 총알의 위력이 떨어졌다”고도 했다. ... 잠바도 못 뚫는 총으로 살인을 해? 총구에서 가까울수록 총알의 위력이 더 센 것 아닌가. ‘벨기에제 권총’ 어쩌고 하는 말도 안기부가 만들어낸 말이었다.
[이한영 씨 피격 사건에 사용된 권총이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이라는 합동수사본부의 최초 판단이 잘못됐던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 밝혀졌다. ... 탄피 2개의 경우 모두 체코 프라하의 ‘셀리어 앤드 벨럿’사에서 제작한 ... 탄피로 확인 ... 사건 직후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이 사용된 것으로 단정하고 ... 북한 쪽의 테러로 본 합동수사본부의 판단 능력에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브라우닝 권총 아니다 - 국과수 감정, 탄피 체코제로 밝혀져」<한겨레신문>1997.2.18)
[김 [수사]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목격자들이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면서 “범인들이 사용한 총기가 벨기에제 권총이라는 경찰의 당초 발표도 처음부터 추정이었다”고 말했다.](「이 씨 피격 전문 재수사 ... 목격자 진술 번복, ‘벨기에제 권총’도 근거 없어」<경향신문> 1997.2.20)
국과수는 안기부가 주도한 합수부의 조사 결과를 부인했지만 문제의 체코제 권총 실탄에 대해서는 “95년 충남 부여에 침투한 간첩 박광남이 지녔던 실탄을 만든 회사와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 이한영을 죽인 범인을 ‘북한 간첩’이라고 단정할 수 있나. 견강부회 즉 억지 결론이다. ‘부여간첩 이야기’ 자체가 어설프니 짝이 없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1995년 10월 24일] 오후 2시 40분께 충남 부여군 석성면 정각사 부근 간첩 2명이 나타났다는 안기부 직원 신고에 따라[?] 군경 합동으로 수색작전을 벌이던 중 정각사에서 300m 떨어진 저수지에서 간첩들을 발견해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간첩 1명은 경찰이 쏜 총에 허벅지를 맞고 현장에서 붙잡혔으나 다른 1명은 군경 포위망을 피해 인근 야산으로 달아났다. ... 붙잡힌 간첩은 “올 8월 남파됐으며 이름은 김도식, 나이는 33살”이라고 진술했다고 ... 달아난 간첩 박광남(31)으로 ... ](<한겨레신문> 1995.10.25)
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부여간첩이 등장한 때는 청진항 ‘인공기게양 사건’(1995.6.27) 넉 달 뒤, 북녘 주민들이 ‘100년 만의 물난리’를 당한 지 두 달 만이었다. ‘북한 붕괴론’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김영삼 정부는 이때는 물론 남은 임기 동안 민간단체들의 대북 식량 지원 노력을 방해했다(베트남에서 쌀을 사 가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말도 있다). 남북관계를 파탄지경으로 몰아야 할 때면 늘 ‘수상한 간첩 사건’이 대서특필되는 것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부여간첩 김동식’은 당시 학생운동권이었던 허인회. 함운경. 이인영. 우상호 등에게 “통일운동을 같이하자”며 접근했다 한다. 함 씨 등은 경찰 조사에서 “김동식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엉터리’ 수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경찰청은 2월 19일 합동수사본부장인 김충남(金忠南) 분당경찰서장을 경질하고, “1960년 경찰에 들어온 이래 37년 동안 줄곧 대공 분야에만 근무”(<동아일보> 1997.2.20) 해 온 홍승상(洪承相) 전남 화순서장을 분당경찰서장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경찰 내부에서는 ‘안기부가 다 해 놓고 애먼 경찰만 잡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분당경찰서 형사들은 “경찰이 겉으로만 수사 주체였지, 실제로는 대공 정보를 독점한 안기부가 이번 사건 수사를 주도했다”(<한겨레신문> 1997.2.21)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은 15일 밤 9시 52분 께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현장감식도 하지 못했다. 그에 앞서 안기부원 4명이 15일 밤 10시 32분에 현장을 선점하고 탄피와 이 씨의 일기장 등 중요한 유류품을 ‘싹쓸이’하고 ... 경찰 감식반은 그 뒤 핏자국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거나 머리카락 몇 올 정도를 채집한 데 그쳤다. “간첩, 간첩이야”라는 이 씨의 외마디 진술을 [했다는] ... 목격자 남상화(44.여) 씨에 대한 초기 조사도 16일 새벽 안기부가 주도하는 합동신문조가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이 사용됐다는 최초 발표도 안기부가 그렇다고 하기에 경찰은 발표만 맡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분당경찰서장 경질에 형사들 “안기부가 다 해 놓고”」<한겨레신문> 1997.2.21)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안기부가 조작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증언 번복’ 논란으로(번복이 아니라 조작된 증언을 바로잡은 것이겠지만), 안기부의 위신을 떨어뜨린 남상화 씨는 무사했을까? ... 섬뜩한 협박 편지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경찰은 “26일 오후 5시 20분 경 김 씨의 아파트 1층 우편함에서 김 씨가 협박편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검은색 사인펜으로 쓴 이 편지는 ‘조국을 배신하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배신한 죄로 일찍이 죽어야 했건만 조금 늦었을 뿐’이라며 수사에 협조한 김 씨 부부에 대한 보복은 물론 김 씨가 살고 있는 418동 아파트 건물을 폭파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이 씨 선배 집 협박편지 수사」<동아일보> 1997.2.28)
북측이 이한영을 살해하고 그 사건 목격자까지 협박해 입을 막으려 한다고? 김영삼 정부 시절은 안기부가 이런 웃기는 각본을 국민들에게 내리먹이던 때였다.
[이한영 씨 피격 사건 목격자인 남상화 씨 앞으로 26일 날아든 보복 협박편지가 숱한 의문을 남기고 있다. 경찰이 27일 공개한 이 편지에는 남 씨와 남편 김장현 씨를 제거하고 현대아파트 418동을 폭파하겠다는 섬뜩한 내용이 담겨 있다.](「김장현 씨 집 협박편지」<경향신문> 1997.2.28)
이한영 살해 장면을 목격한 주민 때문에 자칫 범인이 잡힐지 모르는 상황, 또 더 많은 목격자들이 범인의 행색을 증언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목격담이 나오지 않도록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또 이한영의 선배인 김 씨와 그의 아내 남 씨는 이한영 및 그의 살해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증언으로 인해 안기부의 ‘이한영 스토리’ 및 ‘공작 시나리오’는 곧 거짓으로 드러날 수도 있었다. 특히 기자들의 접촉이 많은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이런 편지를 보냈는지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이런 짓거리를 벌일 조직이 안기부나 정보사 대공조직 말고 또 있을까? <계속>
강진욱 /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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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뉴스쇼의 ‘이한영 죽이기’ ③
안기부의 연막전술 ‘심부름센터’
CBS가 누락한(외면한) 사건 수사 과정을 살펴보자. 엉터리 수사 논란 속에 합동수사본부장이 경질된 뒤 수사가 제대로 됐을까? 그랬을 리가! 신임 합동수사본부장 홍 씨는 5.6공 시절 치안본부에 근무한 악명 높은 고문경찰이었다. 아마도 안기부와 한통속이 돼 사건을 은폐하는데 급급했을 것이다.
그래도 수사본부장이 ‘대공수사 전문 고문 경찰관’으로 교체된 뒤 약 보름 간은 수사가 진척되는 것처럼 보였다(그렇게 보일 필요가 있지 않았겠나). 경찰에 놀라운(?) 제보가 들어왔다(제보자는 안기부였다). 사건 발생 열흘 전 이한영의 거처를 수소문했다는 ‘심부름센터’ 관련 정보였다.
[경기경찰청 수사본부(본부장 김덕순(金德淳) 치안감)는 20일 사건 발생 전 심부름센터 직원이 이 씨의 임시 거처인 남상화(42.여) 씨 집으로 이 씨의 거처 등을 확인하기 위한 괴전화를 했다는 제보에 따라 정확한 경위 파악에 나섰다. 제보자[?]에 따르면 심부름센터 직원이 사건 발생 10일 전인 지난 5일 익명의 의뢰인으로부터 수십만 원의 용역비를 받고 남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 씨의 핸드폰 번호 및 호출번호 등 연락 방법을 캐물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또 심부름센터 직원이 익명의 의뢰 사항을 확인하고 경남 마산 모 은행 온라인을 통해 돈을 송금받은 뒤 이 씨의 연락처 등을 의뢰인에게 전달해줬다고 알려왔다. 경찰은 조사 결과 의뢰인이 가명을 사용하는 등 신분을 철저히 감춘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이 의뢰인을 추적 중이다.](「“심부름센터 통해 괴전화” 제보」<경향신문> 1997.2.21)
세상에! 결정적(?) 증거가 나온 것인가? 곧 CCTV가 등장할 것 같은 기대감이 인다! 그런데 난데없이 ‘러시아 마피아’설을 흘러나왔다.
[경찰은 이 씨가 러시아 마피아단에 의해 살해됐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제보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 이 씨는 1.2년 전 러시아를 상대로 무역업을 하면서 상당액의 빚을 졌으며 ... 또 러시아 매춘여성인 ‘인터걸’ 소개업자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러시아 마피아 단원들과 접촉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1997.2.20)
뭘까? 김 치안감의 심부름센터 추적 발표와 거의 동시에 삐져나온 ‘러시아 마피아’ 설. 복선이었다. 수사를 또 다른 미궁으로 내 몰려는 안기부의 역정보 공작이었을 것이다. 바로 다음날 경찰 손에 넘겨진 안기부 CCTV도 마찬가지.
[경찰은 이날[2.21] 안기부로부터 문제의 의뢰인이 지난 5일 심부름센터에 이 씨의 거주지 확인을 부탁한 뒤 은행에서 용역 비용을 송금하려는 모습이 담긴 CCTV 녹화테이프를 넘겨받았다. 이 남자는 경남은행 동마산지점과 국민은행 동대구지점 등 2개 은행에서 용역 비용을 송금했다. ... 이 남자는 5일 오전 9시 53분 쯤 경남은행 동마산지점에서 ‘김상현’ 명의로 15만 원을, 2시간 30여 분 뒤인 낮 12시 30분 쯤 국민은행 동대구지점에서 ‘최성철’ 명의로 5만 원을 각각 송금 ... 입금서 필적 감정 결과 동일인인 가공인물로 확인 ... 경찰은 이 지역에 연고를 둔 고정간첩이나 이 씨의 거주지 파악을 부탁받은 청부업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CCTV 송금 모습 확인」<경향신문> 1997.2.20)
안기부가 CCTV를 경찰에 넘긴 것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경찰 관계자는 “안기부가 이 자료[CCTV 녹화 테이프]를 토대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면 끝까지 정보를 쥐고 있다가 결판을 냈을 것”이라며 “안기부 쪽이 이미 필요한 추가 수사를 거의 해 본 다음 별 가치가 없자 경찰에 넘겨준 듯하다”고 말했다.(<한겨레신문> 1997.2.24)
아니나 다를까 경남은행 등의 CCTV에 잡힌 송금자의 무통장 입금표에 남겨진 지문을 감식한 결과 국내 거주자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지문이 있어도 안기부가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또 하나의 미궁!
[경기경찰청 수사본부는 22일 은행 폐쇄회로 TV에 잡힌 송금자의 무통장입금표 원부에서 채취한 2개의 지문을 감식한 결과 국내 거주자의 지문이 아닌 것으로 ... 수사본부 관계자는 “용의자는 한국계 외국인으로 간첩이나 국제적 청부 폭력조직의 일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용의자 해외서 잠입 추정” ... 지문 감식서 확인」<경향신문> 1997.2.23)
심부름센터를 활용한 것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안기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제의 의뢰자는 심부름센터에 전화를 건 지난 5일 이미 이 씨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 범행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이 씨가 얹혀살았던 김장현(46) 씨가 세대주라는 점까지 알면서 김 씨를 사칭해 심부름센터에 이 씨의 전화번호와 부인 이름을 알아 줄 것을 요구했다. 일반적으로 집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알 경우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 지난해 말 분당의 아파트로 이 씨가 거처를 옮긴 사실까지 정확히 파악할 ‘정보력’을 갖춘 범인이 이 정도를 심부름센터에 의뢰했다는 대목은 석연치 않다.](「‘의뢰자’ 행적 의문 투성이」<한겨레신문> 1997.2.24)
이한영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궤적을 모두 꿰고 있는 조직이 어디겠나! 며칠 뒤 또 다른 CCTV 테이프가 등장한다. 이전 테이프 속 인물이 범행 약 보름 전인 1월 31일 하나은행 서울 흑석동 지점에서 송금하는 장면이었다. 송금처는 또 다른 심부름센터였지만, 이때도 ‘김상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경찰은 이 남자의 모습이 지난 5일 경남은행 동마산지점의 CCTV에 잡힌 심부름센터 용역비 송금자와 비슷한데다 같은 송금의뢰인 명의(김상현)을 사용한 점 등으로 미뤄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 씨가 피격당하기 보름 전인 1월 31일 서울 종로 소재 ‘ㄷ’심부름센터에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이 씨의 거주지 조사를 의뢰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 심부름센터 측은 이 씨의 분당 거주자를 알아낸 뒤 31일 ‘ㅎ’은행 온라인을 통해 입금된 45만원을 받고 이 남자에게 주거지를 전화로 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심부름센터 측은 평소 잘 알고 있는 현직 경찰관 2명을 통해 이 씨의 거처를 알아낸 것으로 드러났다.](「서울서도 용의자 얼굴 잡혀 ... 지방 송금자와 동일 인물 추정」<경향신문> 1997.2.28)
심부름센터가 경찰관을 통해 이한영의 주소를 알아내 범인에게 알려줬다는 말이다. 아무튼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심부름센터 두 곳에 돈을 보내는 CCTV 화면이 잇따라 공개된 직후 화면 속 인물이 러시아 교포라는 제보(?)가 들어온다.
[부산경찰청은 27일 이한영 씨 피격 사건 용의자와 닮은 러시아 교포가 우리나라에 자주 입국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 러시아를 상대로 무역중개업을 하는 김 모(41.부산 진구 개금동) 씨는 지난 26일 “사업 관계로 지난해 초 세 차례 부산에서 만난 러시아 교포 이 모(35) 씨가 은행 폐쇄회로TV에 잡힌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흡사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용의자 닮은 러시아 교포 안다” 부산서 제보<동아일보> 1997.2.28)
심부름센터 관련 제보와 동시에 ‘러시아 마피아 관련 제보’라는 말이 언론에 등장한 때가 2월 20일이었다. 일찌감치 ‘러시아’라는 운을 띄워 놓고 일주일 동안 CCTV 화면으로 시선을 끈 뒤, 이 화면 속 주인공이 바로 러시아 마피아인 것처럼 몰고 가는 수순 아닌가! 당연히 수사진은 다시 미궁 속을 헤맨다. 이처럼 안기부는 엉뚱한 제보 놀이에 열을 올리면서 정작 범인을 잡을 실마리는 쫒지 않았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의 번호가 그 실마리였다.
[사건 1주일 전쯤부터 30대 남자 2명이 중형 승용차를 타고 이 아파트 주변을 배회했다고 아파트 경비원들이 진술함에 따라 이들이 범행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 아파트 경비원 윤상일(51) 씨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자정께 아파트 418동 앞 주차장에서 30대 남자 2명이 중형 승용차 안에서 시동을 켠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는 것 ... 경비원들이 다가가 “어디서 왔냐”고 묻자 별다른 대답 없이 바로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경비원들은 당시 차량 번호를 확인해 주민들 소유 차량의 번호와 비교해 본 결과, 주민 소유 승용차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윤 씨는 “10일 이전에도 나흘 동안 밤 11시 30분에서 새벽 1시 사이에 같은 차량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승용차가 2명을 태운 채 같은 장소에서 머물곤 했다”고 말했다. 한편 418동 지하주차장을 함께 쓰는 419동 주민 장희철(44) 씨는 “15일 저녁 10시 조금 못 미쳐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다가 진입로 오른쪽으로 키 170cm 가량에 안경을 쓴 누런색 점퍼 차람의 40대 남자 1명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봤다”며 “이어 주차장 안에서는 418동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으로 30대 남자 2명이 걸어나오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경비원 진술 “괴한 2명 5차례 정탐”... 열흘 전부터 자정께 승용차로 현장 주변 배회」<한겨레신문> 1997.2.17)
아파트 경비원은 분명 문제의 차량 번호를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 번호를 공개 수배했어야 했다(보나 마나 안기부·정보사 등이 즐겨 쓰는 ‘대포차’였을 것이다). 안기부가 주도한 당시 합신조는 이런 수사를 하지 않았다. CBS 뉴스쇼라면 ‘왜 안기부는 당시 이런 증거가 나왔는데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나’를 추적해야 하지 않나. <계속>
강진욱 /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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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뉴스쇼의 ‘이한영 죽이기’ ④
“이한영 사건 북 소행이요.” ... ‘간첩의 자백’(?)
그렇게 사건을 미궁으로 몰아넣은 뒤 연말 쯤 ‘간첩의 자백’으로 이한영 피살 사건은 ‘북괴의 소행’으로 정리된다. 안기부가 ‘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을 잡아, 이들로부터 고영복(高永福, 69)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포함된 대형 간첩 사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최-정 부부가 이한영 사건의 배후를 자백했다고 떠벌린 것이다. CBS 뉴스쇼도 “이한영을 살해한 범인들이 밝혀졌다”고 떠벌렸다.
『(앵커 : 범인들은 그 길로 달아나서 결국 못 잡은 거예요?) 대기하던 차량을 타고 고속도로를 통해 남해안으로 갔고 공작용 잠수함 타고 북으로 복귀했습니다. 이후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았어요. 그런데 이건 나중에 밝혀진 거고, ... (앵커 : 그러면, 북한 공작원들의 소행이라는 건 나중에 어떻게 확인된 건가요?) 사건 발생 후 경찰 등 수사기관이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97년 10월에 체포된 또 다른 공작원 최정남과 강현정이 이한영 사건의 범인은 남파공작원 최순호라고 밝혔습니다. 또 그 전에 체포된 간첩들을 통해서 최순호와 함께 한 윤동철의 존재도 밝혀졌고요. (앵커 : 실명까지 나왔군요.) 네, 그래서 안기부는 북한 대남공작부 소속 테러전문요원에 의해 이한영이 살해되었다고 공식 발표했죠.』(CBS 뉴스쇼)
안기부가 ‘순호조’ 운운한 것은 사실이다.
[이한영 씨는 북한에서 남파된 2인조 특수공작조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안기부는 20일 “간첩 최정남이 조사 과정에서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테러전문요원인 최순호와 20대 남자 1명 등으로 구성된 ‘순호조’가 이 씨 피살 1개월 전 남파돼 이 씨를 추적, 살해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최는 “순호조는 북한으로 귀환한 뒤 영웅칭호를 받고 재남파에 대비, 얼굴 성형수술까지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안기부는 밝혔다.](「이한영 씨 살해, 북 공작조 소행 - 최정남 진술」<동아일보> 1997.11.21)
안기부가 이렇게 발표하면 그 발표 내용도 사실인가? 이 나라 분단의 역사는 특무대와 치안본부,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국군기무사령부와 정보사령부 등이 조작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도덕한 국내외 권력에 빌붙어 숱한 국가범죄를 자행한 집단이 김신조와 김현희 등을 내세워 주절주절 늘어놓으면 언론이 이를 퍼 나르고 학자 부류가 이를 정리하면 그것이 남북관계사가 됐다. 안기부(국정원) 등이 제공했을 허접한 자료를 주워 모으다 보면 저절로 안기부(국정원) 빨대가 되는 것이다.
안기부의 이런 발표를 조목조목 부정하기는 힘들지만 발표 내용 가운데 믿을 만한 구석이 없다. 우선, 고영복 교수에 대한 ‘간첩 혐의’ 및 ‘간첩 방조 혐의’는 모두 기각되고 국정원이 지금까지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국보법 위반(회합.통신) 혐의만 적용됐다(1년 3개월 복역, 1999년 2월 형집행 정지로 석방). 그러면 ‘부부간첩’의 정체와 안기부가 말하는 ‘부부간첩의 진술’을 의심해야 하지 않은가.
또 ‘간첩을 잡아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는 안기부 각본의 데자뷔가 있다. 1983년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 때다. 버마가 전두환 정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중간수사 발표(1983.10.17)에서 “코리언이 범인”(남한인지 북한인지 불명)이라고 발표하자 ‘대통령(전두환)이 간첩을 잡아 자백을 받으라’ 해서 두 달 뒤 간첩을 잡아 ‘아웅산 테러는 북괴의 짓이 맞수다!’라는 자백을 받았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졸저 <1983 버마>(박종철출판사, 2017) / 유튜브「[초하사랑방 대담] 전두환 정권 국가조작테러 4건, 그 진상을 밝힌다」(2020.6.20) https://www.youtube.com/watch?v=AHWayaRCQLg).
다음은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의 정체. 남한 내 통일운동단체 관계자를 포섭하려 내려왔다는 ‘북괴 간첩’이라지만 도대체 ‘간첩’ 같지 않았다. 몇 년 전 통합진보당 해체를 위해 국정원이 심은 프락치와 비슷한 존재(들)이었거나, 탈북자를 데려다 사건을 조작하지 않았을까. 이들이 ‘간첩’이라며 안기부가 떠벌린 이야기를 믿기 위해서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수준의 내공이 필요하다.
[최정남.강연정 간첩 부부 사건의 수사발표문을 잘 살펴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행태에서도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남쪽 사람에게 접근하며 만나자마자 “북에서 온 사람”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신분 노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얼굴 사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더기로 찍어가지고 있다가 체포됐기 때문이다. ... 최정남은 이번에 재야인사 정 아무개씨에게 접근하며 노골적으로 신분을 밝히고 “... 만나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 다방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최는 “우리는 북에서 왔다. 장군님께서 정 선생의 글을 읽고 이남에도 이런 훌륭한 사람이 있나 하고 칭찬하시면서, 격려해주라고 해서 찾아왔다”고 말한다. 황당할 정도다.](<한겨레신문> 1997.11.24)
이들이 간첩 맞나? 관악산에 올라가 버젓이 사진을 남김으로써, 안기부가 누군가를 간첩으로 만들기 매우 쉽도록 하는 친절한 배려!
[이들은 스파이들의 절대금기 사항이라 할 수 있는 사진에 대해서도 대단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신분 노출에 치명적일 수 있는 얼굴 사진을 각자 또는 간첩단 여럿이 함께 찍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안기부에 압수된 물품 가운데는 △간첩 강연정이 심정웅을 10월 25일 관악산에서 만나 찍은 사진 △최정남이 역시 같은 자리에서 심정웅과 찍은 사진 등 두 사람끼리 찍은 사진이 들어 있다. 그리고 △강연정이 울산 태화사지 부도 안내판 앞에서 찍은 사진, 불국사 경내에서 찍은 사진 △최정남이 여의도 둔치에서 쌍둥이빌딩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등도 압수했다. 왜 이들 간첩이 사진에 대해 이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 검찰의 관계자는 북한 관료사회의 경직성과 대남공작기구들 사이의 실적 부풀리기 경쟁도 이런 오판을 낳고 있다고[?] 풀이했다.](<한겨레신문> 1997.11.24)
이들의 체포 자체가 웃음거리였다. ‘재야인사 정 아무개 씨’는 이들의 수작을 안기부의 공작으로 보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기자회견을 했다. 정보기관이 프락치를 보내 자신에게 간첩 혐의를 씌우려 한다고. 그랬는데도 ‘장군님께서 보내신 부부간첩’(?)은 다시 정 씨를 만나려다 안기부에 체포됐다. 너무 웃기지 않나. 이들의 정체에 대한 세간의 의혹 때문이었을까, 안기부는 ‘설명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내용은 허접했다.
[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은 남파 전 10여 년 간 ‘이남화 교육’을 받고 특수공작원 훈련까지 마쳤지만 남한에서 전국을 돌며 현지 적용을 하던 2달 간 남한 사정을 잘 몰라 여러 차례 ‘실수’를 ... 안기부가 27일 밝힌 그들의 행적 중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자살한 강[연정]이 1회용 아기 기저귀를 생리대로 착각했다는 사실 ...강은 또 서울 구로동에 월세집을 마련한 뒤 남대문 시장에서 모형만 보고 비키니 옷장을 구입했으나 간단한 설치법을 몰라 환불하러 갔다가 상점 주인으로부터 면박을 당하기도 ... 이들 부부는 이런 실수 때문에 간첩답지 않게 종종 부부싸움을 했다고 ... 최는 또 분식집에서 메밀국수를 먹으면서 면을 찍어 먹도록 한 간장소스를 면다발 위에 붓다가 소스가 넘치는 바람에 바지를 적시는 낭패를 겪기도 ... ](「부부간첩 남한 행적 ‘실수 연발’」<경향신문> 1997.11.28)
‘부부간첩’이 ‘남한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포섭 상대가 서울에서 공개 기자회견까지 했는데도 다시 그에게 접근할 정도로 남한 정보에 너∼무 어두워서 체포됐노라’고 주장하기 위한 허접한 해설!
속이 빤히 보이는 이야기 아닌가. 안기부는 필시 대통령 선거 시기에 맞춰 또 한 번 그럴싸한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려 했을 것이다. 2년 전 ‘부여간첩 공작’에 이어서. ‘통일운동 진영의 간부가 간첩에 포섭됐다’는 각본이었을 것이다. 그 포섭 대상이 공개 기자회견을 했다면 빨리 작업을 중단했어야 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간 것이다. ‘기자회견 사실을 모른 채 다시 접근했다고 하자’면서 ... 정 모 씨의 기민한 움직임으로 통일운동 진영을 치지는 못했지만 ‘부부간첩 사건’ 시나리오는 건졌으니 안기부는 반타작은 했다! <계속>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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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뉴스쇼의 ‘이한영 죽이기’ ⑤
이한영은 망명 공작의 도구
당시 우리 사회는 그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때의 안기부 공작질을 사실로 믿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사건 발생 당시에는 혹시 이 일을 안기부가 한 거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성혜림의 서울행 얘기까지 나온 상황에서 안기부가 굳이 이한영을 없앨 이유를 찾기 힘들지 않을까요?』(CBS 뉴스쇼)
『이한영이 죽으면 성혜림이 한국에 오겠어요? 안기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한영을 보호하려 했겠죠.』(CBS 뉴스쇼 댓꿀쇼)
이한영은 안기부가 성혜림 자매를 서울로 데려오기 위한 공작의 도구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한영 살해는 성혜림 자매의 망명 공작이 진행 중일 때 벌어진 일이 아니라, 그 공작이 실패한 뒤에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성 씨 자매를 데려오려는 안기부가 이한영을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은 전후 맥락의 곡해다. 이한영은 ‘쓸모’가 없어진 상태에서, 이한영의 입에서 자칫 ‘납치돼 왔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제거된 것이다.
CBS 뉴스쇼 제작진은 이한영이 돈이 궁해 언론사를 기웃거리다 자신의 모친(성혜랑)과 이모(성혜림)의 거주지 정보를 판 것처럼, 그렇게 ‘로열패밀리’의 정보를 발설한 죄(?)로 북측 지도부에 의해 살해됐다는 ‘안기부 각본’을 모범답안인양 되뇐다.
『(이한영이) 여러 사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요. 안기부 지원마저 끊기자, 96년부터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 그러다 중요한 정보를 말하게 됩니다. 몇 년 전에 성혜림이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 알려져서 큰 화제가 됐거든요. 이한영이 그곳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안다고 말한 거예요. (앵커 : 김정일 위원장의 동거녀였던 성혜림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안다?) 네. 그러면서 이 씨가 기자에게 내가 지금 어려운데 500만 원만 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기자가 ... “돈 안 갚아도 되니까 일단 성혜림 전화번호를 알려주시오. 아니 그냥 얘기 나온 김에 여기서 한번 직접 전화를 걸어봅시다.”』(CBS 뉴스쇼)
라디오 뉴스쇼가 이렇게 가벼워도 되나? 무슨 딴따라 프로도 아니고, 이한영 사건을 다루면서. 어떤 사건의 진상 또는 감추어진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진지한 추리(미루어 생각함)와 추론(미루어 생각해 얻은 소결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론에 도달함)을 거듭해야 한다. 제대로 보자. 성혜림 망명 공작은 이한영의 <월간조선> 인터뷰로 시작됐다(이때 인터뷰어가 지금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우종창 기자다). 성혜림 자매가 곧 한국에 올 것처럼, 안기부와 <조선일보>가 애드벌룬을 띄운 날(1996.2.13) 이한영이 다른 신문 기자에게 한 말에 진실이 담겨 있다.
[지난 82년 귀순해 88년 결혼, 딸 하나를 두고 있는 이 씨는 [강조]“지난해[1995년] 10월 17일 정부 당국이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공식 통보해 왔으며, 그 뒤 우여곡절 끝에 모스크바의 이모.어머니와 연락이 닿아 생활비를 전해 받게 됐다”[강조]며 “당시 이모가 10만 달러, 어머니가 2만 달러를 보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에 살고 있는 외삼촌 성일기(64) 씨가 모스크바로 가 두 여동생과 해후, 서로 안부를 전하는 자리에서 전달받은 것이라고 이 씨는 설명했다. 이 때 우리 관계 당국이 알게 돼 계속 관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그 뒤 모스크바의 이모,어머니와 10여 차례에 걸쳐 통화를 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털어놓았다.](「“이모가 10만 불 보내왔다.” - 이한영 단독 인터뷰」<경향신문> 1996.2.14)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안기부가 이 씨에 대한 재정 지원을 끊은 뒤 모스크바에 있는 모친과 접촉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 그러면, 이 씨가 <월간조선> 우종창 기자와 함께 모스크바에 있는 모친과 통화한 날짜가 언제인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언제일까?
[- 첫 번 째 전화는 언제였나.
= 5.6공 시절에는 엄두를 못 내고 문민정부 들어 작년 10월에 처음 전화를 했다.](<동아일보> 1996.2.14)
[이 씨는 작년 10월 중순 경부터 12월 말 경까지 자신의 집(경기 성남시 분당구)과 친구 집에서 모스크바의 어머니 성혜랑 씨와 국제전화를 통해 모자 간의 정을 확인하고, 서울 망명을 위한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었다.](「성혜랑-이한영 모자 통화 내용 작년 10월-12월」<동아일보> 1996.2.17)
‘10월 중순’? 정확히 언제였을까? 놀랍게도 10월 20일이었다. 안기부가 재정지원 중단을 통보한 지 사흘 만이다. 안기부가 ‘더 이상 너한테 돈 못 대줘’라고 말하자 사흘 만에 이한영이 <월간조선> 우종창 기자를 찾아가 ‘우리 이모(성혜림. 김정일 국방위원장 전처)의 모스크바 전화번호 알아요’라고 말했다? 이게 말이 안 되잖아!
필시 안기부는 모스크바로 나와 사는 이 씨의 모친 자매를 탈북시키기 위해(성혜림은 1973년부터 모스크바를 오가고 있어 오래 전 거주지 정보가 노출됐을 것이다), 이 씨를 <월간조선> 기자와 만나게 한 것이다. <월간조선> 측이 성혜림의 모스크바 정보를 대가로 이한영에게 500만원을 줬다 한다. 안기부의 사전 작업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안기부는 그렇게 이한영과 <월간조선>을 붙인 뒤 “이한영이 돈이 궁해 정보를 팔려고 언론사를 찾아갔다”는 설을 퍼뜨렸을 것이다. 또 <월간조선>이 이한영과 만났다는 이야기를 흘리면서 다른 언론사들이 이한영에게 접근하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신동아>는 <월간조선>보다 한 달 늦게 이한영과 접촉했던 모양이다.
[그가[이한영] 동아일보 취재망에 잡힌 것은 작년 11월 말. 그는 <신동아> 취재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신분을 털어놓았고, 취재진은 이 씨의 신분을 확인한 뒤 본격 취재에 나서 이 씨의 이모 성혜림과 이 씨의 어머니 성혜랑 자매가 망명 의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감지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 당국이 <동아일보>에 보도 자제를 요청해 왔다. ... <동아일보>는 성 씨 자매의 신변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 씨에 대한 취재는 계속 ... 그러던 중 지난 13일 일부 언론[조선일보]이 이 씨와 성 씨 자매의 망명 관련 움직임을 공개하고 ...](<동아일보> 1996.2.17)
안기부는 1995년 10월 이한영과 <월간조선>을 연결시켜 성혜림 자매 망명 공작에 나선 직후 몇 차례 이한영에게 모스크바 측과 통화하게 한 뒤 이한영의 외삼촌 성일기(成日耆) 씨(성혜림 자매의 오빠) 등을 모스크바에 보내 성 씨 자매의 망명 공작을 추진했다.
성 씨 일가는 남한 출신이다. 성혜림은 이화여대를 나왔다. 일가는 한국전쟁 전 월북했고, 성일기 씨는 전쟁 중 빨치산 활동 목적으로 남한에 내려왔다 체포된 뒤 즉시 전향했고 이후 그는 남한에 거주해 왔다. 성일기 씨 역시 안기부의 ‘공작 도구’로 쓰였다.
[[성 씨는 2월 13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 “동생의 안전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북한 탈출 경위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이번 일이 진정되면 모든 경위를 밝히겠다”고 말해, 동생 혜림 씨의 북한 탈출에 관여해왔음을 내비쳤다. 성 씨의 부인 장영호(63) 씨는 “지난 82년 월남해 분당에 살고 있는 조카 한영이가 생모(혜림)와 직접 통화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남편이 지난해 말에 모스크바로 가서 동생 혜랑 씨를 만나고 돌아 온 뒤 뭔가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짐작했다”고 말했다.](「오빠 성일기 씨, 탈출 관여 시사」<한겨레신문> 1996.2.14)
물론 안기부는 이한영을 시켜 모친과 연락하게 하고 또 그의 외삼촌인 성일기 씨를 모스크바에 보내 성혜랑 씨를 만나게 한 사실을 부인했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성일기(64) 씨는 14일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에서 여동생 혜랑(61) 씨를 만나러 갈 때 국가기관에서 다리를 놓아 주었다”며 “그 때 여동생이 망명할 뜻을 비쳤다”고 밝혔다. 성 씨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 집에서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시 모스크바 코스모스호텔 프런트에서 여동생 혜량을 만났을 때 제네바를 거쳐 제3국으로 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는 요청에 “국가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고 했으나, 국가기관의 주선과 관련해서는 “안기부에서 레저베이션(예약)을 해 놓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 씨는 ... “남한에 있는 아들(이한영)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한 게 계기가 돼 탈출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 ... 안기부는 성일기 씨가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에서 여동생 혜랑 씨를 만날 때 이를 주선해줬다는 말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동생 만남, 안기부가 예약” ... 성례림 씨 오빠 회견」<한겨레신문> 1996.2.15)
성혜림 자매 탈북 공작이 1995년 11월 가속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은 고장난 비행기’라고 발설한(1995.12.1일) 시점은 이한영을 앞세운 안기부의 성혜림 자매의 탈북공작이 개시된 직후다). 이한영이 모스크바로 처음 전화를 건 때가 10월 20일이었음을 상기하면 속전속결로 일이 추진됐다는 말이다. 사전 준비 공작이 충분했다는 말이 된다. 안기부는 1995년 11월 성일기 씨를 모스크바에 보낸데 이어 12월에는 이한영의 아내 김종은 씨를 홍콩에 보내 성 씨 자매 측이 보낸 이와 만나게 했다.
[-어머니와 이모가 탈출을 결심[한]... 시기는.
= 작년 11월이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이모는 구체적인 탈출 준비를 했다.
- 준비 내용은.
=이모가 남옥이의 외국인 친구들을 12월초 홍콩으로 보내 아내 김종은(31)와 만났다. 그때 결혼 예물이라며 시계와 반지, 생활비로 12만 달러를 보내왔다. 또 외삼촌(성일기.63)이 모스크바로 갔을 땐 할아버지(성유경.成有慶. 82년 작고) 사진과 유품들을 한국으로 보냈다. 당시 두 분은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
- 이후의 준비 과정은.
= 지난[1995년] 연말 남옥이를 시켜 프랑스 측과 망명 준비에 관한 협의를 시작, 곧 그쪽으로부터 보장을 받았다.
- 보장 내용은.
= 우선 신변의 확실한 안전을 보장받은 것이 주요한 것이다. 또한 프랑스에 도착한 뒤에라도 타국으로의 망명 가능성에 대해 ‘의사를 존중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 성 씨 일행의 움직임에 대해 알고 있었나.
= 해외에서의 이동 상황은 처음부터 정부 당국을 통해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다.
](<경향신문> 1996.2.16)
“외삼촌(성일기.63)이 모스크바로 갔을 땐 할아버지 사진과 유품들을 한국으로 보냈”고 이때 성 씨 자매는 이미 한국으로 오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말은 이한영의 ‘잘못된’ 판단일 것이다. 성 씨 자매는 장손인 성일기 씨에게 선친의 유품을 전달했을 뿐이다(이후 이한영의 모친 성혜랑은 미국에 갔고, 성혜림은 사망할 때까지 계속 모스크바에 살았다).<계속>
강진욱 /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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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뉴스쇼의 ‘이한영 죽이기’ ⑥
이한영은 ‘버리는 카드’
CBS 뉴스쇼는 또 ‘안기부 공식’ 대로, 이한영이 ‘로열패밀리’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을 내 북 지도부의 미움을 샀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전후 상황을 뒤바꾸는 곡해다.
『(이한영은) 김 씨 일가의 사생활도 폭로했어요. 그리고 96년 ... 수기가 출간됩니다. 책 제목은 <대동강 로열패밀리의 서울 잠행 14년>. (앵커: 언론에 특종 보도 소재를 쏟아내면서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있었겠지만 북한에는 상당한 눈엣가시가 됐겠는데요.) 본인도 상당히 불안해했어요. 안기부도 여러 차례 경고했고요.』(CBS 뉴스쇼)
이미 기자들이 그의 신분을 확인한 이상 ‘북한 로열패밀리’에 관한 책이 나오는 것은 필연이었다. 이한영이 책을 내지 않으려 했어도 언론사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내면 자신이 위험해질 것(?)을 알고도 돈이 궁해 책을 내야만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이한영과 안기부의 불화설도 마찬가지다.
『(안기부가 이한영에게) 안전 가옥 제공하면서 여기 머무르라고 했는데, 수기 내용 중 일부에 대한 안기부의 삭제 요청을 거부하면서 안가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후 거주하던 분당 아파트도 채권자 손에 넘어가면서, 가족들을 처가에 보내고 자신은 일정한 주거지 없이 친구 집 전전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다 대학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선배 집 한 칸을 임시 거처로 정하고 가끔 들르며 지내던 중 피살됐습니다.』(CBS 뉴스쇼)
『대동강 로열패밀리의 서울 잠행 14년』은 안기부 검열을 거쳐 <동아일보>에서 1996년 출간했다. 이한영은 이 책에서 자신이 납치돼 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쓰고 싶은대로 썼다면 그런 내용이 들어갔을 것이다.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이는 안기부의 ‘협조 요청’에 따라 <동아일보> 측이 가감삭제하면서 책을 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 때문에 이한영이 안가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또 이 책 때문에 이한영이 위험에 빠졌다는 주장 역시 사건의 현상과 본질을 뒤바꾸는 것이다. 이미 14년 동안 미 CIA와 안기부가 이한영에게서 쪽쪽 빨아먹은 정보 가운데 일부를 공개하면 그것이 북측에 위협이 되나? 납치돼 온 애가 안기부 시키는 대로 안 할 도리가 있나? 북측이 그걸 몰라 이한영에게 보복을 한다? 이 책은 안기부가 - 그리고 미 CIA가 -‘이한영의 최후’까지 대북공작에 - 남녘 주민들에게 대북 적대감과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심리공작에 - 이용한 증거물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 씨가 안기부의 특별관리대상으로 분류됐으면서도 안기부가 최근 들어 신변도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을 정도로 버림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한겨레신문> 1997.2.17)
[검찰의 일선 수사관계자는 “이 씨는 자신이 성례림의 조카라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여기저기서 떠들고 다녔다”며 “안기부로서도 (이 씨의) 정보가치가 약해진데다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일으켜 관리대상에서 사실상 제외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한겨레신문> 1997.2.18)
안기부는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1급 탈북자’에 대한 경호를 중단하지 않는다. 책 출간 관련 불화 따위는 그런 이유가 될 수 없다. 이한영에 경호를 중단한 것은 ‘이한영 제거 공작’이 결행 단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좌초 사건 때부터 이한영이 불안해했다는 CBS 뉴스쇼의 주장도 가당찮은 ‘안기부 각본’일 뿐이다. 잠수함 훈련하다 좌초된 사건을 두고 무장공비 남침이라고 떠벌리는 수작에 불과하다.
『특히 96년에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있었죠. 그리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까지 한국으로 왔고요[1997년 4월]. 그러자 이한영은 “북한의 첫 보복 대상은 내가 될지 모른다.”면서 더욱 불안해했습니다. 북한 특수공작원이 이한영의 행방을 쫒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네. 공작원들이 이때부터 그 아파트 단지를 차량으로 배회하면서 답사했어요.』(CBS 뉴스쇼)
황장엽의 망명에 대한 보복 운운은 더 가당찮다. “[십중팔구 정보사 소속] 공작원들이 아파트 단지를 차량으로 배회하면서 답사”한 때는 황장엽 망명 소식이 공개되기 약 열흘 전이다.
[범인들은 북한의 황장엽 비서의 망명 사실이 알려지기 전부터 이 씨의 소재를 추적하고 있었던 흔적이 ... 이 사건은 황 비서 망명 전부터 계획된 것 ... 김장현 씨의 부인 남상화(南相華. 42) 씨는 경찰 진술에서 “... 사건이 나기 10일 쯤 전 거주자를 확인하는 ‘이상한’ 전화가 있었다”고 ... 전화를 건 남자는 “여기는 전화국이다. 그곳이 702-53XX 맞느냐”고 ... 아파트 동 호수와 전화받은 사람의 이름, 김장현 씨와의 관계, 다른 동거인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 “왜 그런 것까지 묻느냐”고 짜증을 내자 상대방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고 ... 경찰은 이 당시 전화를 건 사람이 사건 당일 이 씨의 귀가 여부를 전화로 확인한 범인과 동일 인물로 보고 ... 남 씨는 이 전화를 받은 것이 사건 발생 10일 쯤 전이라고 진술하고 있어 경찰은 황 씨가 망명을 요청한 12일보다 7일 앞선 지난 3일을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사건 10일 전 거주자 확인 전화”<매일경제> 1997.2.18)
이한영 살해 공작이 최후 실행 단계에 들어갔음을 드러내는 첫 징후가 바로 의문의 전화였다. 그 전화가 처음 걸려 온 날이 “사건 발생 10일 쯤 전” “황장엽이 망명을 요청한 12일보다 7일 앞선 지난 3일 전후”다. 그렇다면 황장엽 망명 공작 마무리 단계에서 안기부가 그의 망명 계획을 언론에 공개하기 약 10일 전, 이한영 살해 공작도 실행 단계로 전환됐다는 말이다.
결어
앞에서 이한영 사건 목격자들에게 날라 온 협박편지를 보낸 조직이 안기부나 정보사 대공조직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유가 있다. 1960년대 <동아일보> 기자들을 두들겨 패고, <동아방송> 간부의 집 대문을 폭탄으로 날려버린 자들, 1980년대 김영삼 민추협 의장과 문익환 목사 집에 몰래 들어가 문서를 훔치고, 국회의원 양순직과 김동조를 두들겨 패고 이를 부러뜨린 자들, 문화운동단체 <우리마당> 일꾼들을 테러하고 강간한 자들이 바로 정보사 조직원들이었다.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절이 1980년대 ‘내수공작(테러) 전성시대’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시절의 안기부는 박정희 시절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 시절의 안기부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안기부가 김영삼 정부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악명 높은 ‘안기부’라는 이름조차 바꾸지 않은 것을 보면, 김영삼 정권을 잉태한 3당 합당 때 ‘안기부 존치’ 내약(內約)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은 추락하는 비행기’라고 떠벌린 때가 1995년 12월 1일이었다. 안기부가 이한영에 대한 재정 지원을 끊고 그와 <월간조선>을 붙인 뒤 성혜림 자매 망명 공작에 급피치를 올릴 때였다.
당시 안기부는 김일성 주석 사망(1994.7.8)에 이어 끔찍한 한해를 당한 북측이 곧 망할 것이라고 보고했을 것이고, 멍청한 청와대 권력의 묵인 아래 북녘의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망명 공작을 가속화했을 것이다. 그 전리품들이 바로 잠비아 주재 3등 서기관 현성일 부부(1996.2 망명)와 황장엽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1997.4.20 서울 도착)였다. 또 성혜림 자매를 데려오겠다며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의 청와대와 안기부가 이한영을 시켜 성혜림 자매의 망명 공작을 펼 때인 1996년 초는 우성건설과 한영건설 부도를 시작으로 우리 경제에 암운이 드리울 때였고, 저들이 황장엽 망명과 이한영을 살해 공작에 여념이 없던 1997년 2월은 한보 사태를 시작으로 국가부도의 서막이 오르는 때였다.
그렇게 청와대와 안기부가 대북 적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곧 북한을 집어먹을 것 같은’ 망상에 도취돼 있는 동안 미국 자본은 서서히 우리 경제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엉뚱한 데 눈이 멀어 발등의 불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1996-1997년 2년 동안 김영삼 정권이 보인 대북적대의 언동은 미국이 조작하는 분단체제 아래서 키워진 위정자라는 부류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무리들인 지 여실히 보여줬다. 국가의 안전을 지켜야 할 자들이 동족인 북녘에 대한 적의에 눈이 멀어 국가의 재난을 방치한 것이다. ‘헬조선’의 문을 연 것은 바로 이 자들이었다. 지금은 다를까?
불과 3년 전, 이한영이 살해된 지 꼭 20년이 지난 2017년 2월,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의 대공(대북) 조직이 보인 행태는 2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 내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을 납치하다시피 해 데려오고(2016.4), 두 달 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태영호를 불러들인(2016.8) 뒤 대통령 박근혜에게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박근혜가 비서관회의에서 ‘북한 점령 후 시장화 방안’을 지시한(2016.10 ‘안종범 수첩’) 지 넉 달 뒤 김정남이 살해됐다.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된 김정남의 이종사촌(형)으로 김정남이 살해되기 직전 이한영의 이름이 자주 거론됐고, 김정남이 살해된 직후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한영을 살해한 조선(북한)의 ‘최순호 공작조’의 소행이라고 보도했다. 가짜뉴스!
이한영 살해 배후를 그렇게 조작해 놓은 터라 똑같은 작업방식(modus operandi)으로 벌인 사건의 배후를 그렇게 몰고 가려 했을 것이다.(이한영과 김정남 살해가 동일 조직의 소행이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김정남 사건의 조작’에 대해서는 졸고 「[김정남 사건] 조작+억지+허위의 ‘꼴라보’ : 박근혜 정권, 정보당국과 언론의 공모」https://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table=byple_news&uid=4622 <진실의 길>(2018.8.13) / 유튜브 「[초하사랑방 대담]“김정남 살해 ‘박근혜 국정원’+CIA의 소행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ORk4qFT-Gs (2020.6.19) 참조)
적어도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이런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행정부(청와대) 권력은 외세(미국)와 연결된 ‘군사-정보 권력’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 숨은 권력은 자신들과 결이 다른 이들이 청와대에 있는 동안은 몸을 사릴 것이다.
그러다 외세와 결탁해 동족을 적대시하고 자국민의 일부마저도 적으로 돌리는데 주저함이 없는 자들이 청와대에 입성하면 이 ‘숨은 권력’은 ‘북한의 테러’를 빙자한 또는 그와 유사한 국가조작사건들을 다시 저지를 수 있다(이 ‘숨은 권력’을 들어내지 못하는 ‘국정원 개혁’은 말짱 도루묵이다).
<끝>
강진욱 /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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