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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공공임대 : 집을 사는(buy) 것에서 사는(live) 곳으로, 투기의 대상에서 거주의 공간으로 바꾸는 출발점

道雨 2020. 8. 20. 10:16

중산층 공공임대, 사는 집에서 사는 집으로

집에 대한 수요는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지금 살 집이 꼭 필요해서 집을 사는 ‘실수요’, 돈을 벌려고 살지도 않을 집을 사는 ‘투기 수요’, 당장 집을 살 필요가 없는데 집값이 더 오를까봐 불안해서 집을 사는 ‘공포 수요’, 이렇게 3가지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 연간 주택 공급 물량, 인구 증가 추세 등을 고려하면 집값이 오를 이유가 없다. 아니 떨어져야 정상이다. 투기 수요와 공포 수요 탓에 주택시장에서 수요공급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집값 불안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투기 수요가 먼저 집값을 들썩이게 하고 여기에 공포 수요가 가세하면 집값이 치솟는다.

집값이 급등할 때, 집주인이 전셋값을 터무니없이 올려달라고 할 때, 무주택자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이 있다면 굳이 집을 살 이유가 없다고 얘기한다. 적정한 수준의 보증금과 월세를 내면 이사 다닐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공공임대를 원하는 것이다.

 

경기도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기본주택’이 주목받는 이유다. 경기도의 공공주택 사업을 주관하는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무주택자면 누구나 소득·자산·나이와 관계없이 역세권 같은 좋은 위치에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양질의 공공임대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무주택 중산층이 바라 마지않던 주택이다. 경기주택도시공사는 적정 임대료를 가구별 중위소득 대비 20%를 넘지 않는 수준으로 잡고 있다. 예를 들어 4인가구가 전용 74㎡(공급면적 30평)에 살면 월세 57만3천원, 보증금은 월세의 100배인 5700만원 정도 된다.

 

공공주택특별법에 근거해 1989년부터 공급되기 시작한 공공임대는 저소득층이 공급 대상이다. 무주택 중산층은 입주 자격이 없다. 경기도는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해 무주택 중산층을 위한 새로운 유형의 공공임대를 추가하자고 한다. 무주택 중산층에게 집을 사느냐 마느냐를 넘어 또하나의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공포 수요가 해소될 수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주택의 취지를 “공공택지의 요지에 싸고 품질 좋은 중산층용 공공임대를 대량 공급해, 싱가포르처럼 모든 국민이 집을 사지 않고도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산층 공공임대가 새로 생긴다고 해서 저소득층 공공임대 물량이 줄어들지 않는다. 저소득층 공공임대는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지금처럼 공공택지에 건설되는 전체 주택 물량의 35%가 계속 공급된다. 경기도의 구상은 나머지 분양주택 물량(공공 15%, 민간 50%)을 공공임대로 돌리자는 것이다.

 

경기도는 3기 신도시 5곳 중 경기주택도시공사가 시행자로 참여하는 하남 교산지구, 안산 장상지구, 과천 등 3곳의 분양 물량 중 경기주택도시공사 지분의 50% 이상을 기본주택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약 1만3천호 정도 된다. 경기도는 시행령 개정과 핵심 지역인 역세권의 용적률 500%로 상향, 주택도시기금 융자 이율 1%로 인하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경기도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3기 신도시에 건설되는 주택 17만3천호 중, 저소득층 공공임대 35%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 중 상당 부분을 중산층 공공임대로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3기 신도시는 서울 경계에서 평균 2㎞ 떨어져 있어 입지 조건이 좋다. 광역급행철도(GTX)를 중심으로 광역교통망도 구축된다. 정부는 유치원 전체를 국공립으로 짓겠다고 했다. 중산층 공공임대가 성공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재원 조달이 가장 큰 과제이나 집값 불안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치르는 막대한 비용을 고려하면 해법을 못 찾을 일이 아니라고 본다.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가 내는 보유세도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산층 공공임대와 저소득층 공공임대를 한 아파트에 함께 공급하는 ‘소셜 믹스’를 정교하게 짜면, 공공임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의 주택 정책이 투기 억제와 공급 확대라는 기존 방식을 답습하면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투기 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공급 방식은 이제 획기적으로 개선할 때가 됐다.

중산층 공공임대는 집을 사는(buy) 것에서 사는(live) 곳으로, 투기의 대상에서 거주의 공간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공공임대를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함해 누구나 살고 싶은 ‘질 좋은 평생주택’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과감히 실행에 옮기기를 바란다.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8435.html#csidxec81e0205a02e71aa787dd063016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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