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등장한 로봇... 이런 게 정말 가능하다니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보며 새로운 꿈을 꾸다
제가 사는 동네에 로봇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 주는 자율주행 배달로봇입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합니다. 마트에서 쇼핑을 한 후, 배달 담당자에게 상품을 전달하고, 원하는 배달 시간을 정합니다. 담당자가 정해진 시간에 상품을 로봇에 넣고 주문정보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배달이 시작됩니다.
▲ 마트 입구에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이용해서 배달을 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상품을 구매한 후 배달 담당 직원에게 전달만 하면 원하는 시간에 로봇이 배달을 해 줍니다. ⓒ 이봉렬
배달이 시작되면 고객의 휴대폰 앱으로 배달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 로비에 도착하기 5분 전에 알림 문자를 보내고, 로비에 도착해서도 문자를 보냅니다. 그 후로 10분 간 고객을 기다립니다. 고객은 앱을 이용해서 본인 확인을 한 후 상품을 꺼내기만 하면 됩니다. 배달이 끝나면 로봇은 다시 마트로 돌아갑니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로봇이 배달을 하기 때문에, 쇼핑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갈 필요도 없고, 배달을 기다리느라 집을 비우지 못하는 일도 없습니다.
거리에 등장한 배달로봇
로봇 혼자서 보행자 도로를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 3D 라이다 센서, 카메라, 음파 탐지기,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4륜구동 장치 등이 설치되어 있고, 장애물 감지를 위해 인공지능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최대 속도는 5km/h로 제한이 됩니다.
▲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경사로를 따라 로봇이 상품 배달을 위해 스스로 내려 오고 있습니다. ⓒ 이봉렬
배달하는 로봇의 뒤를 따라가 봤더니 보행자 도로의 보도블록도, 오르막이나 내리막길도, 180도로 휘어진 길도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의 평균적인 보행속도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에, 인도 위에서 딱히 방해가 된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습니다. 움직이고 있는 로봇 앞에 잠시 서 봤습니다. 그랬더니 로봇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옆으로 방향을 틀어 저를 피해갔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IMDA(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는 싱가포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이 로봇의 움직임에 LTA(도로교통청)의 자율주행차량 안전기준을 똑같이 적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3월 11일부터 두 대의 로봇으로 시작된 시범서비스는 앞으로 1년간 풍골 지역에서 계속될 예정입니다. 시범서비스 기간 동안은 안전 및 사례 수집을 위해 로봇 옆에 사람이 배치되어 함께 움직이게 됩니다.
"보다 나은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의존하고 있는 배달 서비스를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 배달을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자율주행 배달로봇. 1년 시범 서비스 기간에는 사람이 함께 움직이며 문제점을 확인합니다. ⓒ 이봉렬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드론을 이용해서 집 앞에 배달해주는 것도 가능한 시대에 배달로봇이 무슨 대수인가 생각되겠지만, 사실은 배달로봇이 훨씬 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드론은 배달 위치까지 하늘을 날아가는 거라 가는 도중에 장애물을 만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건물이나 나무, 전봇대 같은 것만 잘 피하면 됩니다. 자동주행 자동차가 상용화 된 상황이지만 자동차는 잘 닦인 도로 위만 달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퀴를 이용해 보행자 도로에서 움직여야 하는 로봇은 지면의 상태부터 아무렇게나 놓인 장애물, 지나다니는 사람들까지 모든 게 장애물이 됩니다. 그걸 다 피해서 원하는 장소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고, 보다 많은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1년의 시범 서비스를 마치고 이 사업이 확대된다면 그만큼 기술이 진보했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여기까지가 싱가포르에 새로 도입된 자율주행 배달로봇에 대한 제 기사의 전부입니다. 새로운 기술로 중무장한 로봇이 사람을 대체한다는 소식은 새롭지도 않고 기분 좋은 이야기도 아닙니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은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걱정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에 두 대밖에 없는 그 로봇을 직접 보고 와서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로봇이 다닌다면 휠체어도
로봇이 움직이는 모습에서 자꾸만 휠체어가 겹쳐 보였습니다. 바퀴 네 개를 가진 로봇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물건을 배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길은 넓고, 지면은 고르고, 계단 대신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도, 휠체어도, 유모차도 모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어야만 자율주행 배달로봇도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도 신도시로 조성된 지 10년이 채 안 되는 풍골 지역을 시범 운행 단지로 지정했습니다. 다른 곳은 로봇이 혼자 다닐 만한 여건이 아직 안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1년의 시범서비스가 끝난 후 이 로봇이 싱가포르 전체로 서비스를 확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싱가포르 전체에 로봇이 다닐 수 있도록, 보행자 도로를 넓히고, 장애물은 치우고, 계단 대신 경사로를 설치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길 위로 휠체어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도 자율주행 로봇을 볼 수 있습니다. 로봇이 건물 로비 청소를 하기도 하고, 식당 안에서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건물 안에서는 편의점 상품을 배달해 주기도 합니다. 배달의 민족에서 개발한 로봇이 대학교 안에서 시범적으로 배달 서비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로봇이 거리로 나와서 배달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 휠체어를 끌고 나오기도 힘든 거리를 혼자 돌아 다니며 배달을 할 수 있는 로봇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만 말고 한국에도 하루 빨리 이 로봇을 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로봇으로 배달 서비스를 하는 지역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겁니다. 가는 곳마다 계단이고 턱이라 휠체어를 타고 외출하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지금의 상황을 배달로봇을 핑계로 삼아서라도 바꾸고 싶습니다.
▲ 싱가포르에서는 휠체어를 탄 노인과 장애인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도 쇼핑몰에서도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그만큼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기 좋은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진은 모두 양해를 구하고 찍었습니다) ⓒ 이봉렬
한 가지 더. 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자동차로 도로를 달리고, 로봇을 이용해 배달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좋은 기술을 휠체어에도 도입하면 어떨까요?
전동휠체어 조작마저 힘든 중증 장애인이나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율주행 휠체어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그 삶의 질이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까요?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이유로 대기업의 전기자동차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보조금을 얹어 주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해 자율주행 휠체어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과정에 보조금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고 기업의 이익만 더해주는 게 아니라,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율주행 배달로봇에서 자율주행 휠체어를 봅니다. 그런 휠체어가 어려움 없이 거리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기술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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