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불평등과 격차 해소에 중점을 둬야...

道雨 2021. 6. 8. 09:58

전국민 재난지원금? 돈이 남아도는가

 

 

 

민주당이 ‘확대 재정’과 관련해 착각을 하는 것 같다. 확대재정 정책은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평등과 격차 해소를 위해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온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도 강력히 권고한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확대재정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도 앞다퉈 확대재정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재정 확대를 돈을 막 쓰라는 걸로 오해해선 곤란하다. 재정지출을 과감히 늘리되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나랏빚이 늘어나는 걸 감수하면서 재정을 확대하는 것인 만큼 꼭 필요한 데 써야 한다. 한푼이라도 허투루 사용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예산 낭비다.

 

민주당이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추가경정예산을 추진하고 있다. 초과 세수를 활용해 국민 1인당 30만원씩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약 15조원이 든다. 반도체 등 수출기업 실적 호조와 부동산 세수 증가 등에 힘입어, 올해 1분기에 세금이 계획보다 19조원 더 걷혔다.

민주당은 코로나로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올해 추석에는 국민들께서 양손에 선물을 가득 들고 고향에 가실 수 있게 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세금이 많이 걷혔다고 모든 국민이 똑같이 나눠 가질 때가 아니다.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코로나의 고통은 더 무겁다. 반면 코로나 무풍지대에 있는 사람도 많다. 대기업·금융기관·공공기관 임직원, 전문직, 공무원 등은 코로나발 충격이 비껴갔다. 코로나 이전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재난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불평등과 격차를 더 키우겠다는 건가. 공정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할 때다.

 

1차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지급됐던 지난해 봄과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는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 대유행의 공포에 짓눌려 소비가 아예 얼어붙었다. 지금은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보복 소비’까지 분출하고 있다. 일각에선 인플레이션 걱정도 나온다.

 

지금 재정 투입이 시급한 분야가 한두곳이 아니다. 자영업자 손실보상이 대표적이다. 몇달째 같은 논의만 되풀이하면서 여태껏 입법이 안 되고 있다. 빚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자영업자들의 피를 마르게 한다. ‘희망 고문’이다.

손실보상 입법을 하루속히 매듭지어야 할 때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꺼내는 건, 일의 경중을 가리지 못하는 처사다. “심폐소생술 하다 말고 동네 사람들에게 영양제 나눠주려고 한다”는 정의당의 논평이 정곡을 찌른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진행 중이다. 노동계는 “지난해와 올해 역대 최저 수준의 인상으로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 반면 경영계는 “현재 수준의 최저임금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겐 버겁다”며, 동결이나 인하를 주장한다.

이대로 놔두면 또다시 ‘을들의 싸움’으로 격화된다.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정 소득 이하의 근로소득자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해주는 근로장려금(EITC)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추경에 근로장려금 예산을 대폭 증액해 반영하자.

 

초과 세수 가운데 부동산 관련 세금이 4조원에 이른다. 청년주택 사업에 쓰자.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의 청년주택을 방문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보증금이 주변 원룸 시세(2천만원)보다 훨씬 싼 100만원이고 월 임대료도 절반 정도로 저렴해 청년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며 “공급량이 적어 입주 기회가 제한적이고 모집 경쟁률도 높은데, 앞으로 더욱 과감히 추진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로 미룰 이유가 없다. 이번 초과 세수를 활용하자. 집값 폭등으로 더 걷힌 세금을 집값 폭등으로 가장 고통받는 청년들을 위해 쓰는 것이니 안성맞춤이다.

 

이렇게 재정 투입이 절실한 곳이 숱하게 있는데도, 민주당이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집착하는 건, 내년 대통령 선거를 고려한 계산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선심성 정책으로 부정적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하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공돈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마워할 사람도 얼마 안 될 것이다. 세금을 함부로 써도 되는지 걱정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민주당에 당부한다. 불평등과 격차 해소에 집중하라. 그게 시대정신의 실천이고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게 하는 길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헛심 쓰지 말기 바란다.

 

 

안재승 ㅣ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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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8370.html#csidx8b441dcbbeea369963d587246429fa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