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우크라이나 전쟁과 존 미어샤이머를 위한 변명

道雨 2022. 3. 11. 09:11

존 미어샤이머를 위한 변명

 

캄캄한 밤에 한 남자가 해안가 절벽에 난 길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 죽음의 이유를 진단하는 데는 여러 시각이 있다.

늦은 시각, 무모하게 위험한 장소를 찾아갔다가 실족을 한 그 남자의 ‘바르지 못한 행실’은 죽음의 가까운 이유, 즉 근인(近因)이다. 시야를 확장하면 이 절벽엔 최소한의 안전을 지켜줄 난간이나 경고문도 없었다. 오히려 지방정부는 이곳을 관광명소로 홍보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유도했으니 예고된 참사였다. 이런 무책임함이 남자의 죽음을 초래한 먼 이유, 즉 원인(遠因)이다. 더 멀리 죽음의 근본적인 이유, 즉 원인(原因)을 따지자면 남자를 추락하게 만든 지구의 중력 때문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시각을 달리하면 죽음의 책임 주체가 달라진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 논쟁에서 이런 시각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일 러시아 외무부가 트위터 계정에서 미국 시카고대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2014년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 ‘우크라이나 위기는 왜 서구의 책임인가’를 공유한 것에서 시작됐다.

기고문에서 미어샤이머는 “서방의 세가지 정책 패키지인 나토 확대, 유럽연합 확장, 민주주의 촉진은 점화를 기다리고 있는 불에 연료를 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2014년 2월에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는 쿠데타를 미국이 지원했다는 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분노는 당연하다. 러시아의 뒷마당에서 무리하게 전략적 이익을 취하려는 서구에 대해 푸틴은 여러차례 경고했다. 그러니 위기의 원인은 서구, 특히 미국이라는 주장이다.

푸틴을 독재자이며 망상가로, 악마로 몰아가며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주류들은 미어샤이머의 주장에 크게 반발하면서 그를 폭격했다. 푸틴의 바르지 못한 행실을 응징해야 하는데 거꾸로 서구의 책임을 거론하니 말이다.

절벽에 방치된 위험한 도로, 즉 원인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반드시 추락사를 당하지는 않는다.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심야에 절벽을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미어샤이머 식의 설명이라면 세상의 모든 범죄자는 무죄다. 굴욕감을 강요한 사회가 책임이지 개인에게는 죄가 없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원인이 있든 말든 21세기의 문명사회에서 침략전쟁은 범죄다. 국제적 고립은 푸틴이 자초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질서가 선이고, 이에 도전한 푸틴은 악이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

 

물론 이런 선과 악의 이분법은 미어샤이머에 의해 재반박된다. 우리는 병에 걸렸을 때 단순히 직접적인 증상을 치료하는 걸 넘어 병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야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찰을 불온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러시아 제재가 계속될 경우 상상을 뛰어넘는 재앙이 초래될 것이다.

최근 전문가들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농업이 붕괴되면, 이 지역에서 인도주의 위기, 식량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동 난민 문제로 분열된 유럽은 우크라이나 난민 문제가 장기화하면 붕괴될 수도 있다. 러시아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에너지와 금융에서도 극심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푸틴은 재래식 전쟁을 교착시키면서 서구의 군사 및 상업위성을 무력화하는 반위성 작전을 전개할 것이고, 사이버전으로 서구 사회의 기반을 침식한다. 이와 함께 2천개가 넘는 전술 핵무기를 러시아 서부전선에 전진 배치할 것이다.

이게 진실이다.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서구의 가치와 영향력 확대가 동시다발적인 복합 위기를 초래하는 역설 말이다. 이럴 바에야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고 우크라이나는 중립 완충지대로 유지하는 편이 더 현명할 것이다.

 

논쟁은 중국으로 확대된다. <포린 어페어스> 최신호는 미어샤이머와 자유주의자들 간의 ‘미국이 만든 경쟁자―워싱턴의 중국 전략에 관한 논쟁’을 게재했다.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미어샤이머는 중국의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서구화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위기를 고조시킨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이미 미국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의 이상으로 중국에 관여하면, 미국의 지위는 더 불안해지고 전쟁의 문턱은 더 낮아질 것이다. 중국을 서구화하려는 무의미한 노력보다 적절하게 봉쇄하는 편이 낫다.

무정부적인 국제사회의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평화를 위한 현실적 방법을 모색하자는 석학의 호소는 들을 가치가 있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