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道雨 2022. 4. 8. 08:56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써 40여일이 지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대규모 병력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의 동, 남, 북 3면을 일제히 공격하였다. 육상에서는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군사들이 국경을 넘어 진격했고, 하늘에서는 전투기와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국토 곳곳을 겨냥하여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러시아 발표로는 군사시설을 타격했다고 하나, 실제 뉴스 화면을 보면 평온했던 민간인 생활시설과 아파트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된 모습이다.

우크라이나는 병력이 러시아의 3분의 1도 안 되고, 전투기는 20분의 1, 탱크는 5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 전혀 상대가 안 되는 비대칭 전투라고 했다. 그러나 전쟁은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듯 병력이나 무기 수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상대도 안 되는 열악한 병력과 무력 수준으로도 우크라이나는 40여일을 버티고 있으나 그 희생도 만만찮다.

 

국제법상, 어느 나라나 침략자에 대항할 권리가 있다. 우크라이나도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행사하며 용감히 항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떠오른다.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행사함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결사 항전하는 것을 의미할까? 이것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유일한 최선의 선택일까?

전투를 벌이면 상대방도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수준으로 응전하게 된다. 그 결과는 참혹한 폭력의 연쇄적 진행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민간인들의 삶의 터전이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아파트, 학교, 병원이 파괴되고 수많은 남녀노소 시민들이 포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300만이 넘는 국민이 일터와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타향으로 피난을 떠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절절한 지원 요청에 응답하여,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각종 무기를 지원하고, 우크라이나군은 예상 밖의 성공적인 방어전을 펼치며 러시아군과 맞서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우크라이나 남자들에게는 입대 소집영장이 발부되고 있다. 국외 탈출을 시도하는 남자는 체포되고 배신자로 간주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결사 항전을 통해 전쟁에 승리를 거두고 러시아 군대를 국경 밖으로 몰아낸다고 하더라도, 온갖 첨단 무기를 동원하여 격렬한 전투를 치른 후의 우크라이나 국토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미 전투가 벌어진 우크라이나 여러 지역이 초토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러시아군이 철수한 지역에서 민간인 수백명이 잔인하게 집단 학살당한 참상이 공개되고 있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어 농토는 황폐해지고, 보금자리와 세간살이는 사라지고, 이웃도 뿔뿔이 흩어지고, 사랑하던 남편과 아들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전쟁에서의 승리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솟구친다.

 

온 세계의 관심과 시선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하루하루의 전황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마치 이 긴장된 분위기를 기다렸다는 듯 성능을 더욱 강화한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세계 어디든 공격할 수 있는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미사일이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 떨어지자, 일본 정계에서는 비상 대책으로 전수방어만 허용하는 일본 헌법에도 불구하고,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핵 공유’를 통한 방어전략을 검토해야 한다는 소리가 스멀스멀 들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선 기간 중 유력 후보가 선제타격 능력 확보를 공약으로 내세우더니, 최근 현 국방장관도 북한의 (한국에 대한) 미사일 발사 징후가 명확한 경우에는, 발사 지점과 지휘·지원 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선제공격을 언급했다. 그러자 북한 당국도 즉시 이에 맞서 맹렬한 비난 성명을 내보내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가 시작한 전쟁이지만, 세계 곳곳에 그 여파가 퍼져나가고, 여러 나라가 군비 강화 쪽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대의 악이다. 물론 전쟁을 시작한 쪽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여 방어전을 펼치는 쪽도 일단 전투를 시작하면 엄청난 재앙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과거의 전쟁에서는 국지적인 전투로 희생자가 제한적일 수 있었으나, 현대는 끊임없는 첨단 무기 개발로 전선과 후방의 구분,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핵무기가 수없이 쌓여 있는 오늘날, 전쟁은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거나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한반도는 남북한만이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강국들의 이해가 교차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6·25 이후 아직 정전상태를 끝내지 못한 남북은 지난 70년간 더 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무기를 경쟁적으로 비축해 전면전이 시작되면 서로가 보유한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한반도 전역이 잿더미가 될 수밖에 없다.

또 군사동맹으로 자동 개입할 수밖에 없는 강대국들이 참전하면 핵무기 사용을 피하기 어렵고, 그 결과는 지구촌 전체에 지옥문을 여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현실을 직시한다면, 선제타격하겠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식의 표현이나 정책은 결코 가볍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될 비이성적, 비인도적 폭거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군사력이 미약하여 쉽게 나치 독일에 점령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치의 지배하에서도 민중이 사회적 보이콧이나 파업으로 비폭력적 저항을 펼치며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노르웨이에서는 전국의 교사들이 단결하여 나치의 꼭두각시 정권에 저항하며 정신적인 독립을 지켰다. 나치의 탄압에 희생된 이들도 있었으나, 만일 노르웨이가 무력으로 결사 항전을 펼쳤다면,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어야 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국민에게 국가 방위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사고가 상식적이다. 이는 공화주의적 국가관이다. 그러나 수많은 세계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국가의 위상과 자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수용하는 이들은 국가가 국민에게 무기를 들고 싸우도록, 자기 목숨을 바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에게 생명을 주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은 도주할 권리가 있다. 국가가 있기 전에 인간 개인이 먼저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의 생명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항복하든가, 항복을 가장하고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든가, 아니면 도피할 자유가 있다.

국가 권력의 중추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 권력을 행사하기 전에, 국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부터 먼저 해야 한다. 인간이 먼저다.

 

강우일 ; 베드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