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차등 적용한다는 윤석열 정부, 이 통계를 봐라
[소셜 코리아] 큰 폭 인상 이후 오히려 고용 늘어… 1만 원은 사회적 합의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지 30년도 더 지났다. 도입 초기인 1990년대에는 최저임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사회적으로 별다른 관심도 끌지 못 했다. 최저임금 적용대상이 제한적이고 그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저임금계층 일소, 임금격차 축소, 분배구조 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 하다는 비판이 있을 뿐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임금불평등이 심화되고 저임금 계층이 늘어나자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최저임금 수준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2000년 1850원이던 시간당 최저임금이 2022년 9160원으로 다섯 배 올랐고,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19%에서 34%로 두 배 가까이 개선됐다.
5년 전 대통령선거 때는 주요 정당 모두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문재인, 심상정, 유승민 후보는 2020년 1만원을 공약했고, 안철수, 홍준표 후보는 2022년 1만원을 공약했다. 목표 시점에 차이가 있을 뿐 '최저임금 1만원'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라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서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1060원(16.4%) 인상했다.
이때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야당과 재계,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공세를 펴기 시작했고, 정부와 여당 내에서도 속도조절론이 제기됐다. 최저임금 인상 폭은 2019년 820원(10.9%), 2020년 240원(2.9%), 2021년 130원(1.5%)으로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인상률은 연평균 7.2%에 불과해, 박근혜 정부 7.4%에도 못 미쳤다.
주요 정당 모두 1만 원 공약
2018년과 2019년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 비중과 임금불평등을 줄이고, 노동소득분배율을 끌어올리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017년 22.3%에서 2020년 16.0%로 크게 감소했다. 임금 하위 10% 대비 임금 상위 10% 비율인 임금 10분위 배율은 4.3배에서 3.6배로 하락해 임금불평등이 크게 축소됐다. 노동소득분배율도 2017년 62%에서 2020년 67.5%로 크게 개선됐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불러왔다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취업자는 2018년 10만 명, 2019년 30만 명 증가했다. 취업자 수를 인구수로 나눈 고용률은 2018년 0.1%P 감소했지만, 이내 회복해서 2019년에는 60.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 돈으로 노인 일자리를 늘렸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을 뺀 15~64세 고용률을 보더라도, 2017년 66.6%에서 2019년 66.8%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었음에도 고용이 감소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도 사업주들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처했기 때문이다. 조직효율성을 높이거나 노동시간을 줄이고, 고임금자 임금을 덜 올려 임금격차를 축소하고, 설비투자를 늘리거나 미숙련자를 숙련자로 대체해 생산성을 높이고, 제품가격을 조금 올리거나 이윤 감소를 감수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이직률 감소로 신규채용과 훈련비용도 감소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상가임차인 보호 확대, 사회보험료 지원, 카드수수료 인하, 소상공인 버팀목자금 등 영세자영업자 지원 대책도 한몫했다. 2018년 한 해 동안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인상 총액이 7조 2천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일자리 안정자금만 2조 5천억 원을 지원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의 이면
지난 5년 동안 재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을 주장했다. 올해 대통령선거에선 윤석열 후보가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을 공약했다. 그러나 국정과제에서는 사라졌다. 지역별 차등은 법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지역 낙인 효과를 우려해 정치권에서도 멀리 한 지 오래다.
업종별 차등은 법적 근거는 있지만,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1988년 단 한 해만 운용되었을 뿐, 지난 30여 년 동안 사문화된 조항이다. 최저임금위원회라는 하나의 기구에서 둘 이상의 최저임금을 정하라는 얘기인데, 어느 업종은 높은 최저임금, 다른 업종은 낮은 최저임금을 정할 근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같은 업종에서도 소분류, 세분류, 세세분류로 구체화하면, 편차가 커서 납득할 만한 기준을 제시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은 지난 30여 년 동안 사문화된 조항이다. 민생경제연구소와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 5월 18일 국회 정문 앞에서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근거 조문 삭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유선민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음에도 재계가 매년 반복해서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을 주장하는 것은 "매년 정해지는 최저임금 수준을 낮추고, 장기적으로 있으나 마나 한 최저임금제로 되돌리고 싶어서"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업종별 차등이 필요하면 법정 최저임금제도는 유지하면서 업종별 임금교섭이나 임금위원회를 활성화하면 된다. 지역별 차등이 필요하면 미국처럼 전국 최저임금을 하한선으로 유지하면서 광역시도 단위에서 지역 최저임금을 정하면 된다. 공공부문에 한정된 지역 생활임금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어서 노동계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노사 간에 마찰 없이 윤석열 정부가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미달자 매년 줄어
재계는 최저임금 동결이나 차등 적용을 주장하면서 최저임금 미달자 비율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 부가조사에서 2021년 최저임금 미달자가 322만 명(전체 노동자의 15.3%)인데, 이처럼 미달자가 많은 것은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가구원이 응답한 월 임금총액을 노동시간으로 나눠 계산한 것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가구조사에서 임금은 적게 보고하고 노동시간은 무급 노동시간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같은 조사에서 시급제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본인의 시간 당 임금이 얼마인지 따로 묻고 있다. 시급제 노동자 209만 명 가운데 최저임금 미달자는 3만 명(1.4%)이고,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85만 명(44.8%)이다. 하지만 이들의 시간 당 임금을 '월임금총액÷노동시간'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 미달자가 110만 명(52.8%)으로 늘어난다. 시급제 노동자들의 시간 당 임금 응답결과만 반영하더라도 최저임금 미달자는 322만 명(15.3%)에서 214만 명(10.2%)으로 줄어든다.
임금대장에 기록된 임금과 노동시간 정보를 사용하는 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최저임금 미달자는 2016년 113만 명(7.3%)에서 2020년 72만 명(4.4%)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 부가조사에서 시급제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자도 2016년 7만 명(5.2%)에서 2021년 3만 명(1.4%)으로 감소하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높아서 최저임금 미달자가 늘어난 게 아니라,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최저임금 미달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 최저임금 미달자 수(천 명) / 출처 : 통계청, 고용노동부 ⓒ 김유선
▲ 최저임금 미달자 비율(%) / 출처 : 통계청, 고용노동부 ⓒ 김유선
1만원 시대, 2023년? 2024년?
최저임금위원회는 2023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8%, 물가상승률을 4.2%로 전망했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만 고려해도 최저임금인상률이 7%는 넘어야 한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최저임금 1만원'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였다. 올해 최저임금이 9160원이니 840원(9.2%) 올리면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 수 있다. 2023년이냐, 2024년이냐 선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 첫 해, 오랜 사회적 합의인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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