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빼앗긴 자유, 자유주의

道雨 2022. 6. 10. 09:59

빼앗긴 자유, 자유주의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화려한 수사로 시작한 문재인 정권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책무도 완수하지 않은 채 물러난 뒤, 윤석열 신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하면서 새 정권의 괄호를 열었다. 오랫동안 인신을 구속하려고 씨름했을 검사 출신이 자유의 기치를 높이 드는 역설적인 면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자유는 반가웠을까? 굴곡진 현대사의 칼바람을 맞아 유린당하고 왜곡되고 버림받아온 이 땅의 자유는, 새 대통령의 입에서 자신이 거듭 호명되는 것에 반가웠을까?

약관 18살에 쓴 <자발적 복종>으로 아나키즘의 원조로 추앙받는 에티엔 드 라 보에티에 의하면, 자유는 “수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다. 그래서 “이것을 잃어버리면 곳곳에 악이 창궐한다”.

어쭙잖은 말이지만, 그의 영향을 받아 불온성을 감추지 않는 나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 땅에서 진실은 소극적이고 정의는 언제나 지각한다. 진실과 정의는 권력, 금력과 달라서 그 자체에 힘이 없다. 이 힘의 불균형을 메워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약동하는 자유의 힘인데, 우리는 자유를 빼앗겼다. 우리의 비극은, 자유를 빼앗겼는데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긴 탓에, 빼앗긴 자유를 되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자유에 빙의된 탓일까, 윤 대통령 취임사에서 거듭되는 자유라는 말에 잠시 멍했는데 곧이어 “누구의 자유를 말하는 것인가?” 물었다. 모든 개인의 자유라는 보편성을 지닌 게 아닌, 힘센 자들, 가진 자들만의 자유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타락이다. 그것은 지배와 억압의 기제로서 약자의 굴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혹시나”는 금세 “역시나”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의 자유는 국민의힘의 뿌리인 자유당-민주자유당-자유한국당에 담긴 자유와 완전히 단절된 게 아니었다. 설령 공산세계에 맞서는 자유세계의 이름으로 모든 자유의 원점인 신체의 자유를 학살과 고문으로 유린했던 자유에서는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자유의 확대를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에서 찾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자유는 시장의 자유, 자본의 자유, 신자유주의의 자유와 친화력을 갖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당하거나 자유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차별금지법에 관해서는 언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특히 국가보안법에 관한 발언도 없었다. 자유의 반대가 억압이라고 할 때,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부정하지 않고 자유를 말할 수 없다.

결국 그의 자유는 가진 자들, 힘센 자들만의 자유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대통령 취임사에서 당당하게 자유를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왜일까?

이 물음은 “우리에게 자유는 그 본래의 참된 의미로 남아 있는가?” “왜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고집할 때, 우리는 자유를 뺀 민주주의를 고집할까?” “우리가 자유와 자유주의를 회피했던 것은 아닐까?” 등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실제, 자유라는 기표는 오랫동안 수구세력의 전유물이었다.

얼마 전에 작고한 김지하 시인이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외치면서 쓴 것은 자유가 아니라 민주주의였다. 시민사회운동에서도 자유는 거의 민주, 평등, 정의, 인권 등에 비해 뒷전이었다. 이른바 삼민(민족, 민주, 민중)에 자유가 끼어들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조지 레이코프는 <자유전쟁>에서 자유를 “본질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으로 보았다. 자유에는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 이외에 중요한 부분이 여백으로 남아 있는데, 그것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를 놓고 진보와 보수 사이에 쟁탈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빼앗기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자유 개념을 빼앗기는 일은 더욱 슬픈 일”이라고 썼다. 우리는 자유 쟁탈전에서 싸워서 빼앗기기 전에 지레 물러났던 게 아닐까. 급기야 윤 대통령 후보 시절 “5·18 민주항쟁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항쟁”이라는 발언을 듣기에 이르렀다.

실상 한국의 진보운동 진영에 자유주의를 뛰어넘겠다는 급진성이 있었고 조급성이 관철됐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경향은 개인의 자유를 개인주의와 연결하고, 그것을 다시 이기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집단을 개인 위에 두었던 타성과 결합해 더욱 공고해졌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진전을, 개인의 자유 신장과 사회민주화가 줄탁동시처럼 이뤄지도록, 다시 말해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안에서 쪼는 ‘줄(개인의 자유)’과 밖에서 어미 닭이 쪼는 ‘탁(사회민주화)’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기대하기보다 탁에 집중했다. 어차피 자유 개념은 수구세력에게 빼앗겼고 훼손됐으니 멀리한 채.

물론 개인의 자유는 사회민주화의 결과물로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바이처럼 간직했겠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을 경시하는 경향을 낳았다. 또 줄탁의 형상과는 정반대로, 중앙의 심장만 바라볼 뿐 주변의 혈맥과 실핏줄을 소홀히 대하도록 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는 온전히 흐를 수 없었다. 사회 각 부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집단이기주의, 조직이기주의는 더욱 팽배해졌고, 선후배 간 위계질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시민사회운동 진영까지 질식시켰다.

욕망의 주체가 그렇듯, 의식의 주체는 집단이 아닌 개인이다. 사회주의를 경험한 동유럽이 북유럽이나 서유럽보다 사회토착주의, 가부장제의 퇴행을 보인다. 자유주의를 외면하고 개인의 가치를 경시할 때, 주체성(자율성, 자발성, 능동성), 비판성, 연대성을 품은 시민성을 기대할 수 없다. 자유의 확장은 성숙한 시민성과 함께 모든 개인의 몸이 거하는 모든 곳에서 자유로운 주체가 될 때 그 참된 길이 열릴 것이다.

아직 가부장제가 남아 있는 집들, 경쟁지상주의가 학생들을 시민이 아닌 고객으로 몰아가는 학교들, 노동자들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일터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연줄의 그물망으로 지역을 주름잡고 있는 토호들과 종교적 구루들까지 곳곳에서 활개치는 땅이다.

그렇다면 “봉건제의 속박과 종교적 도그마, 절대주의의 억압에 맞섰던 ‘해방의 이념’ 자유주의가 시장주의와 보수의 전유물이 되도록 방치한 건, 한국 정치와 한국 민주주의의 불행이자, 진보의 뼈아픈 실책이었다”는 진단(<한겨레21> 1415호, 이세영 ‘어찌하다 ‘자유’가 보수의 전유물이 되었나’)을 우리는 곱씹어야 한다.

가진 자들, 힘센 자들만의 자유인 윤석열식 자유에 모든 개인의 자유로 맞받아치기 위해서도 자유주의를 더는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홍세화 |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