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독식 비판에 ‘전 정권’ 핑계 댄 윤 대통령
정부 요직에 측근 검사들을 대거 등용하는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과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인사 때)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또 “미국 같은 선진국일수록 거번먼트 어토니(정부에서 일하는 법조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라고 했다. 사실을 호도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실책을 과거 정부에 덮어씌워 비판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논리다.
윤 대통령은 ‘도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문재인 정부에서 특정 단체 일색의 인사가 이뤄진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민변뿐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 출신이 발탁됐다.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운 시민사회 출신들이 각각의 전문 영역에서 국정에 참여했던 것이다. 이를 검찰이라는 특정 국가기관 출신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요직을 독점해가는 지금의 인사 행태와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게다가 윤 대통령의 말을 뒤집으면 ‘과거 정부에서 그랬으니 나도 그러겠다’는 말이 된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정권을 잡은 윤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미국 사례를 들어 검찰 편향 인사를 정당화하려는 것도 견강부회다. ‘거번먼트 어토니’는 변호사 자격을 갖고 정부에서 일하는 공직자를 말하며, 검찰 이외에도 다양한 직역에서 전문성을 갖고 활동한다. 이를 검찰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 또 미국에서 검사 출신이 정·관계에 진출하는 것을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검찰이 대부분 지역별로 주민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데다, 분권화가 강하게 이뤄져 있어 우리나라 검찰처럼 단일한 집단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사 편중은 검찰이라는 동일집단 안에서, 그것도 현직 대통령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측근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다. 법조인이 정·관계에 많이 포진하는 게 법치국가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 또한 법치주의의 본질과 무관한 일차원적 시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 출신 측근 인사들이 요직을 꿰차는 현실을 보며 많은 국민이 ‘이권 카르텔’ ‘권력 사유화’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지 윤 대통령은 돌아보기 바란다.
[ 2022. 6. 9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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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출신 도배" 윤 대통령 주장, 실제와 비교해 보니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8일 오전 출근길에 "과거엔 민변(진보성향 변호사 단체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약칭) 출신들이 아주 도배하지 않았나"라며,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지만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
검찰 출신 15명, 주요 권력기관 핵심 요직 차지
실제 윤석열 정부의 '검찰 편중 인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과 비교해봤다.
한때 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 출신인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설이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강 교수가 후보군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윤 대통령과 성남지청에서 같이 근무하며 '카풀'한 인연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강 교수를 제외하면 권영세 통일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등 장관급이 4명이고,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 이복현 금감원장, 이완규 법제처장, 이노공 법무부 차관,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 차관급이 5명이다.
대통령실에는 성비위 논란을 빚은 윤재순 총무비서관을 비롯해 복두규 인사기획관, 강의구 부속실장 등 검찰 공무원 출신 3명을 포함해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에 관여한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등 모두 6명이 들어있다.
반면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 구성 당시 검찰 출신 인사는 3명에 그쳤다.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서는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 출신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에 참여했다 좌천된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유일했고, 이금로 법무부 차관과 신현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정도였다.
현재 검찰 출신이 차지한 15개 자리 가운데 법무부 차관과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을 제외한 나머지 13개 자리는 국회의원 출신 정치인을 비롯해 학자, 공무원, 판사, 예비역 군인, 금융인, 변호사 출신 등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참여연대 "윤석열 사적 인연으로 권력기관 집중배치하는 게 문제"
그렇다면 '과거 민변 출신이 도배했다'는 윤 대통령 주장은 사실에 부합할까? 적어도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과 대통령비서실에서 민변 출신 주요 인사는 김외숙 법제처장과 민정수석실 이광철 선임행정관, 김미경 법무행정관 등 3명으로 검찰 출신 숫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임명하거나 취임한 민변 출신 주요 인사.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민변 출신은 김외숙 법제처장을 포함한 3명이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진선미 전 여성가족부 장관을 비롯해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노정희 전 선거관리위원장(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이석태 헌법재판관 등이 민변 출신들이었지만, 행정부보다는 사법부 비중이 높았다. 차관급 가운데 민변 출신은 김외숙 전 법제처장, 김진국 전 감사원 감사위원 정도였고, 이들은 문 대통령 임기 중후반 각각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을 맡아 청와대로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변 출신 인사는 과거 검찰 출신이 주로 맡았던 민정수석실이나 법무부 주요 요직을 맡으면서 더 크게 부각됐다. 이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나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 현 정부와 검찰의 대결 국면에서 전면에 나섰다. '과거 민변 출신이 도배'했다는 윤 대통령 발언도 과거 자신의 경험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참여연대는 윤 대통령의 이날 '민변' 발언을 자신의 '검찰 편중 인사' 논란을 잠재우려는 일종의 '물타기'로 봤다.
장동엽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에 민변 출신이 많았다는 주장은 당시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에서 비판했던 내용"이라면서 "나는 정당하다고 과거가 더 문제였다는 논리야말로 인사 기준이나 인사 원칙이 빈약하거나 '검찰 편중 인사'를 인정하는 발언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금 윤석열 정부는 특정 기관 출신 인사일 뿐 아니라, 대통령과 특정한 인연이 있는 사람 위주로 권력기관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는 지난 7일 논평('견제와 균형 무너뜨리는 검사 편중 인사')에서도 "윤 대통령은 말로는 '능력'에 따라 인사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이 검찰에서 함께 일했거나 소위 '측근'으로 사적 관계가 있는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동엽 간사는 "수사기관인 검찰 출신들이 마치 점령군처럼 권력기관 요직을 장악하는 것은,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 민주적 통제의 원칙을 무너뜨려, 정권에 부담으로 되돌아왔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시연,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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