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미국식 인사검증에 ‘한동훈 법무부’는 없다

道雨 2022. 6. 13. 08:55

미국식 인사검증에 ‘한동훈 법무부’는 없다

 

“설마 그 여성을 연방대법관에 지명하려는 건 아니겠죠. 그를 아는 사람은 (워싱턴 정가에) 아무도 없어요. 이건 미친 짓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 법률고문 버니 누스바움의 거친 발언에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집권 초기 바이런 화이트 대법관이 사임하자, 후임에 아칸소 주지사 시절부터 아는 남성 판사를 지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연고주의 인사’라는 비판이 예상되자 이내 생각을 접었다. 다음 카드로 제이니 쇼어스 앨라배마주 대법관을 거론한 것인데, 그만 인사 참모에게 비토를 당한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더 나인>을 새삼 뒤적인 건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이다.

“미국이 그렇게 합니다.”

인사검증을 ‘한동훈 법무부’에 맡기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유의 손짓까지 보태가며 목청을 높이던 그는 기어코 한마디를 더 붙였다.

“미국의 방식대로 하는 겁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미국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거명하고, 미국 포크록의 전설인 돈 매클레인의 ‘아메리칸 파이’를 18번곡으로 꼽았다길래 ‘미국식’에 정통한가 보다 생각했는데, 인사검증에 관한 한 대통령의 말은 사실과 다른 대목이 많다.

미국식 인사검증을 주관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백악관 법률고문이다. 반면, 윤 대통령은 인사검증 업무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맡겼다.

원래 공무원 인사는 인사혁신처의 업무라고 정부조직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명시돼 있다. 그중 검증 업무를 한 장관에게 넘기기 위해, 윤 대통령은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대신 편법적인 우회로를 뚫었다. 모법의 위탁 조항을 이용해 관련 대통령령에 근거를 만든 것이다. 검증 실무를 담당할 인사정보관리단(관리단)도 한 장관 휘하에 신설·배치했다.

미국에선 백악관 법률고문이 직접 연방수사국(FBI)의 특수탐문·배경조사과(Special Inquiry and General Background Investigation Unit), 국세청(IRS), 정부윤리처(OGE) 등을 동원해 공직 후보자를 교차 검증한다. 당연히 결과는 ‘직보’를 받는다. 미국의 법무부 장관이 인사검증에 관여한다는 설명은 관련 자료들에서 찾을 수 없다.

백악관 법률고문은 검증 결과에 대한 판단에서도 전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 역할도 사실상 한 장관 몫으로 넘겼다. 미국 같으면 연방수사국·국세청·정부윤리처가 각기 수행할 검증 기능을 몽땅 관리단에 모아놓고, 그 결과는 한 장관이 독점적으로 파악하는 구조다.

한 장관은 “중간보고를 받지 않는다”는 애매모호한 말―최종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다―로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대통령실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에게 검증 결과를 알려줄 사람, 그 내용을 최종 결정할 사람은 한 장관이다. 한 장관이 이 비서관의 대학·검찰 선배라는 사실, 또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는 걸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힘이 누구에게 실릴지는 자명하다. 이건 미국식이 아니라 ‘족보’를 알 수 없는 ‘윤석열식’일 따름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대통령실이 직접 정보수집 업무를 안 하고, 받아서 해야 한다”(5월27일)면, 자신이 좋아하는 “법대로” 인사혁신처에 검증 기능을 되돌려주면 된다. “인사검증이 감시받는 통상 업무로 전환되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한 장관의 말은 법무부가 아니라 인사혁신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관리단도 인사혁신처에 두는 게 효과적이다. 국가인재데이터베이스, 공무원 인사평가 자료 등이 모두 그곳에 있으니까.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초대 관리단장에 인사혁신처 출신을 임명함으로써 이 본말전도 코미디를 완성했다. 인사검증을 꼭 그렇게 한동훈에게 맡기고 싶었다면,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인사혁신처장에 기용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클린턴은 누스바움의 험한 입을 감내한 덕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발굴할 수 있었다. “대단히 꼼꼼하고 정밀한 검증 끝에” 최선의 답안을 고른 것이다. 연방대법원 역사상 두번째 여성 대법관인 긴즈버그는, 그러나 지명 직전까지 클린턴과 일면식조차 없었다. 96 대 3이라는 상원 인준 투표 결과는 대통령의 선택이 얼마나 적절했는지를 말해준다.

자신이 아는 검찰 출신들로 주요 공직을 뒤덮고, 그것도 모자라 인사검증까지 “동훈이”에게 맡기는 ‘대통령 맘대로’ 행보 역시 미국식과는 거리가 멀다. 30년 전에도 ‘미국의 방식’은 그렇지 않았다.

 

 

강희철 | 논설위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