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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심사 수사의뢰한 감사원의 ‘개소리’

道雨 2022. 10. 5. 09:50

종편 심사 수사의뢰한 감사원의 ‘개소리’

 

 

 

전문가를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주작도 서슴지 않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프레임. 반려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개소리’다. 누군가는 개소리가 자신의 필요와 입맛에 따라 그저 툭 튀어나오는 말이라 했다. 말하는 ‘속셈’만 있을 뿐, 그 안에 ‘진실’도 ‘거짓’도 담겨 있지 않은 말이 개소리라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개소리가 진실을 압도하는 시대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 제임스 볼이 지은 책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에 나오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탈진실, 이른바 ‘개소리’를 앞장서 퍼뜨리던 시절, 팩트 체크에 대한 책임감으로 책을 펴냈다는 그에 따르면, 개소리는 언제나 정확한 타이밍을 안다. 그래서 냉철한 사람도 흔들릴 수 있다.

 

지지율이 30%대를 밑돌면 정부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리가 많아지는 가운데, 요즘 유독 열일하는 정부 기관이 있다. 바로 감사원.

 

과로사가 걱정될 정도로 종횡무진 활약상을 보여주다가, 지난달에는 ‘2020년 상반기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피피(PP) 재승인’ 심사에서 점수 조작이 의심 간다며, 검찰에 ‘수사참고자료 통보’를 했다.

쉽게 말하면 ‘티브이(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점수를 낮게 고친 정황이 드러났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역시 불철주야 나랏일 하는 검찰은, 감사원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지 16일 만에 발 빠르게 민간 심사위원의 휴대전화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조사했다. 심사위원들 입장에선, 전문가적 식견을 바탕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심사를 수행했는데, 감사원에 불려 나가고, 검찰에 휴대전화와 사무실이 압수수색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이에 학계가 반발했다. 한국언론정보학회와 한국지역언론학회는 감사원 조사 사실이 알려지자, ‘학자적 양심과 전문성에 입각해 진행된 심사에 대해 감사원 조사를 받게 된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도 입장문 전달 형식으로 관련 사실을 알렸다.

 

또 사건이 검찰의 압수수색으로까지 번지자, 한국언론정보학회는 긴급이사회를 열고 향후 정부의 각종 심사, 평가, 자문위원 추천을 거부할 것을 비롯해, 긴급 학술세미나 개최 등을 결의했다.

 

통상 정부 기관에서 심사를 진행할 때는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진을 구성하는데, 이 과정에 학계는 전문가 추천 의뢰를 받는다. 특히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특정 학회만이 아니라 여러 학회의 추천을 받아 구성한다. 이번에 조사를 받은 전문가들도 2개 학회에서 각각 추천한 심사위원들이었다. 물론 심사위원은 학회뿐 아니라 회계, 기술, 시민단체 등 각계 대표로 구성된다.

이들은 3~5일가량 휴대전화 반납 등 엄격하게 외부와 격리돼 제출된 자료를 검토하거나 새로운 자료를 요청하고, 마지막에는 경영진을 대상으로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고 경영진의 의지나 비전을 청취하는 과정을 모두 거친 뒤 최종 점수를 매긴다.

이 때문에 심사 과정에서 점수는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 그리고 최종 점수를 매긴 다음에는 봉투를 밀봉한다. 그것이 통상적인 심사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에 감사원이 지적한 사안은, 점수를 다시 썼을 경우 과거에는 새로운 심사 용지에 작성하도록 돼 있던 것을, 투명성 제고를 위해 기존 점수에 두 줄을 긋고 그 위에 새로운 점수를 쓴 다음 해당 심사위원의 서명을 받게 한 대목이라고 한다.

 

밀봉한 봉투가 뜯긴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점수 조작’ 정황이라면 심사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거나 ‘개소리’임에 틀림없다.

 

 

 

한선 |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