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자유민주주의 참칭 감별법

道雨 2022. 10. 19. 08:51

자유민주주의 참칭 감별법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에 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회에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엄중한 경고”를 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과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감사에 관해 메시지를 주고받다 노출됐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총살감 김일성주의자”라고 극언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김일성주의자” 몰이를 이어 갔다.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자유’, ‘법치’, ‘자유민주주의’를 수없이 외쳤다.

 

민주주의 연구에서 ‘리버럴 데모크라시’는 선거와 다수결의 원리뿐 아니라, 시민의 포괄적 자유와 기본권 보장, 권력분립, 법의 공정한 집행을 갖춘 정치체제를 뜻한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윤석열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자들이라고 할 만한가?

 

한국처럼 독재 종식 뒤 민주주의를 도입한 많은 나라에선, 선거민주주의의 껍데기는 있으나 자유민주주의의 알맹이는 없는 정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권력자들은 선거라는 제도는 그냥 두면서, 독재 때보다 훨씬 교묘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허무는 기술들을 발전시켜왔다.

 

학자들은 이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해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방식들을 그동안 면밀히 분석했다.

 

첫째는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여론 개입과 의식 조작이다. 군, 경찰, 정보기관 요원들이나 이들의 후원을 받는 집단이 시민여론을 가장해 가짜뉴스나 극단적 주장을 대량으로 유포한다. 이렇게 국가에 의해 공론장이 교란되면 정치와 여론은 분리될 수 없으며, 선거는 민의를 반영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런 행위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전제를 파괴한다.

 

둘째는 국가기관에 의한 정보 수집과 활용이다. 민간인 사찰과 감시가 그 대표적인 예지만, 그보다 더 정교한 통제 방식은 더 합법적인 외양을 갖춘다. 국가기관에 허용된 권한을 이용해 공직자와 민간인들의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수집, 열람, 분석하고 약점을 포착하면, 필요한 경우에 정치적 반대자를 범죄자로 만들거나 도덕적 불명예를 입혀 무력화할 수 있다.

 

셋째는 시민들에게 자유의 행사가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독재 때처럼 반정부 인사를 납치, 고문, 상해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을 본보기로 위협하고 조사, 기소하는 등, 합법적 행위로써 이를 목격하는 다수 시민을 위축시킨다. 표현, 사상, 양심의 자유를 스스로 검열하게 만드는 권력기술이다.

 

넷째는 법적 수단의 정치도구화다. 정치적 경쟁자를 명예훼손, 모욕, 직권남용, 탈세, 횡령, 배임 등 혐의로 법정에 서게 하는 방식이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 공공기관이 권력기관으로 변모한다.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정적에게 범죄자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한 선택적 법 적용이라는 점에서 법치의 훼손이지만, 법치를 명분으로 정치행위를 할 수 있다.

 

다섯째는 공적 권력의 사유화다. 선거로 대표자를 선출했는데, 실제 권력은 국민이 선출한 적 없는 개인과 조직이 쥐고 있다. 그러한 배후 실세는 기업, 지역유지, 군부, 대토지소유자, 권력자의 친구, 가족, 지인 등 실로 다양하다. 이들은 선출된 대표자와 후원-고객 관계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사실상 섭정을 하는 ‘후견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

 

여섯째는 폭력적 민간행위자를 이용한 공포정치다. 극단주의 단체, 테러조직, 범죄조직, 용역깡패, 노조파괴 기업, 사이비 종교단체 등 비국가 행위자들의 살인, 구타, 폭언, 협박 등 폭력행위를 공권력이 묵인하거나 고무, 후원함으로써, 시민들의 자유를 제약하고 순종적으로 길들인다. 국가는 폭력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되고, 폭력 행위자는 국가에 의해 선처된다.

 

일곱째는 적극적인 대중 동원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외양을 갖추려면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고, 다수의 지지를 받는 듯 보여야 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라는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국가와 시민이 대립하던 전통적 독재와 달리, 정권을 지지·엄호하는 집단행동과 여론 동원에 힘을 기울이게 된다.

 

이 같은 권력기술들은 정당성과 합법성을 가장해 부지불식간에 민주주의를 부식시키고 자유를 위축시킨다.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한 자유민주주의 훼손을 감별하는 눈이 필요한 시대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