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노동의 모욕과 존엄에 대하여

道雨 2023. 5. 24. 10:49

노동의 모욕과 존엄에 대하여

 

 

     * 노조탄압에 항거해 분신한 양회동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건설지부 지대장이 숨진 2023년 5월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김경호 선임기자

 

 

‘노동개혁’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그 변화는 한국 사회 구조와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지 모른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치는 세 단계를 거쳐왔다.

 

노동에 대한 윤 정부의 태도는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다.

지난해 6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씨가 좁은 쇠우리에 몸을 가두고 처우 개선을 호소했을 때,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특공대 투입 경고로 응답했다.

 

그해 9월, 대통령은 사회적 대화 기구 수장으로 강성 우파 김문수씨를 임명했다. 반노동 정치의 신호탄이었다.

 

지난겨울 화물노동자 파업에 강경 대응해 노동자들을 굴복시키고 보수층의 지지율이 상승하자, 노동정책은 본격적으로 정치의 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정책으로 박수받아본 적이 없던 집권세력은 ‘노동을 때리면 지지율이 오른다’는 공식을 학습했고, 이후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권익보호 행동에 악의적인 이미지를 덧입히는 비난의 정치를 본격화했다.

 

그런데 윤 정부의 반노동 정치는 이제 그 단계를 넘어 전방위적인 파괴의 정치로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 여당, 정부 부처, 검경, 법원, 언론을 망라하는 포괄적 지배동맹이 노동자들의 조직과 단결을 공격하고 있다. 경찰과 국가정보원은 몇달째 노조사무실 수십곳을 압수수색하고, 집권당은 곳곳에 ‘건폭’(건설현장 폭력) 규탄 펼침막을 걸어 건설노동자들을 폭력배로 몰았다.

 

특히 언론은 이 모든 행위를 고무, 정당화하고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해주는 핵심적 행위자다.

언론보도 실태를 보기 위해 11개 전국 일간지와 8개 경제지에서 ‘노조’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공갈’, ‘협박’, ‘폭력’, ‘부패’, ‘비리’, ‘횡령’ 중 하나와 함께 등장한 기사 건수를 분석했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1420건이었는데, 2022년 2516건으로 폭증하더니, 올해는 1~4월에만 2008건이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노조와 노동자에 관한 부정적 담론에 매일 노출됐고, 그것이 사회적 담화의 중심이 됐다.

 

노동단체와 노동자들의 투쟁 방식에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고 보는 시선이 있고, 거기엔 타당한 면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 언론, 경제단체들이 마치 한국 사회 만악의 근원이 노동자들인 것처럼 가혹하게 공격하는 이유와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해고규제 완화, 성과압력 강화, 노동시간 불안정화, 최저임금제 예외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계약직·파견직 증가 등, 노동에 대한 기업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순들인 것이다.

 

실제로 기업가들은 윤 정부의 금융·산업·통상 등 거시경제 정책보다 노동탄압에 훨씬 높은 점수를 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전국 73개 지역상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개선된 제도·정책으로 ‘노동’을 꼽은 비중은 41%로 산업(19%), 조세(18%), 규제(8%) 등보다 월등히 많았다. 향후 추가 개선이 필요한 제도·정책으로도 노동(33%)을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정권의 정치적 이익과 기업가의 경제적 이익이 ‘반노동’에서 맞아떨어진 셈이다.

 

 

지난 5월1일 노동절에 일어난 건설노동자 양회동씨의 분신자살은, 이처럼 정치·언론·기업이 뭉쳐서 노동자들을 매도, 위협, 처벌하는 현실이 초래한 사회적 타살이다.

유서에는 정당한 노조 활동과 노동자의 권리 요구를 공갈범으로 몰아 법정에 서게 된 것을 자존심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쓰여 있었다. 무시와 모욕. 인간에게 가해지는 가장 아픈 폭력이 매일 자행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유최안씨가 일하는 제조업 분야에서 3만1709명, 양회동씨가 일한 건설업에서 2만9943명, 화물노동자들이 속한 운수·창고·통신업에서 1만91명의 요양재해자가 발생했다. 재해사망자는 세 부문에서 각각 512명, 551명, 158명으로 매일 3.3명, 아침·점심·저녁으로 한명씩 죽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일하는 사람이 이렇게 지쳐가고, 무너지고, 죽어간다.

누가 ‘건폭’을 말하는가. 이것은 자본의 폭력, 국가의 폭력, 법의 폭력이 아닌가.

 

이 사회의 폭력적인 평화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침묵에, 인간을 먹고 자라는 식인자본주의에, 그 위선에, 그 기만에, 이 부끄럽고 눈먼 성장의 허상에, 우리는 항의해야 한다.

지금 노동에 가해지는 모욕은 우리 모두의 존엄의 문제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