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나는 사퇴하지도, 위촉되지도 않았다

道雨 2024. 7. 23. 16:25

나는 사퇴하지도, 위촉되지도 않았다

 

 

 

국회가 추천한 방심위원, 대통령이 끝내 위촉 안 해

여권 추천 위원들만 선별 위촉, 명백한 기본권 침해

최소한 나 스스로 그만두는 사유 만들지 말자 다짐

헌재에 ‘행정 부작위 위헌’ 헌법소원…외로운 싸움

불법에 굴복 않으려…국회가 권리 적극 행사해야

 

 

[편집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추천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임명을 하지 않아 위촉되지도 않은 채 22일자로 임기 만료가 된 최선영 연세대 겸임교수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글을 보내 왔습니다. 

 

 

오늘로 8개월 8일, 날짜로는 248일째. 마침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궐 심의위원 임기 만료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장이 추천한 나를 방심위원으로 끝내 위촉하지 않았다. 왜 위촉을 못 하는지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못한 상태로, ‘위촉하지 않는 공권력’을 행사했을 뿐이다.

위촉에 대해 승낙의 의사 표시도 승낙을 거절하는 의사 표시도 전혀 없었다.

나는 대통령의 이러한 행위가 불법이고 위법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의 이러한 ‘의사 표시 부존재’로 말미암아, 몹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왜 여태 위촉이 안 되는가를 묻는 이들 중에 더러,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뉴스로 다뤄질 것도 아닌데 자리를 왜 버티고 있냐는 말도 들었다. 당당히 사퇴하여 여당에 강력하게 항의하자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중엔 위촉권자인 대통령에게 묻는 사람은 없었다.

4월 말 여야 영수 회담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편파 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보도를 본 적은 있다. 대통령은 방심위에 대해 ‘잘 몰랐다. 독립기관에서 하는 일 아니냐, 언론을 장악할 생각은 전혀 없고, 관여해서도 안 되고 관여할 생각도 없다. 잘 모른다’고 답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정말 방심위를 잘 몰랐을까?

방심위를 잘 모른다는 대통령은 정연주 전 방심위원장 해촉 바로 다음 날 류희림 씨를 현 방심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정민영 전 위원에 대해서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해촉안을 신속히 재가했다. 대통령 추천 인사 두 명을 위촉할 때, 나는 위촉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나를 위촉하지 않는 사유는 모를지언정, 이 상황을 모를 리 없다고 확신하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위촉되지 않은 채 피추천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엉뚱하게도 맨유 시절 박지성 선수가 생각났다. 위대한 선수의 발자취는 특별한 메시지로 다가왔는데, 특히 2010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AC밀란과의 경기에서 안드레아 피를로를 끈질기게 따라붙어 밀착 마크했던 경기가 계속 떠올랐다. 내가 감히 박지성 선수처럼 위대하지는 않더라도, 모기처럼 웽웽거리면서 끈질기게 윤 대통령을 밀착해 책임을 물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나 스스로 그만두는 사유를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위촉되건 위촉되지 않건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자신의 권리를 타인의 발밑에 던지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에 위반하는 것”이라는 칸트의 말을 응원 삼아 미련스럽게 버텼다.

 
대통령의 선별 위촉, 명백한 기본권 침해

대통령이라는 공권력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생각을 한 건 올해 1월.

문재완, 이정옥 위원을 빛의 속도로 위촉하면서, 나만 위촉 배제했을 때였다. 합리적 이유 없이 대통령이라는 공권력으로부터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꼈다. 참담했다. ‘이유는 없지만, 아무튼 넌 아니야’라는 차별을 느꼈다. 특정인만 선별 위촉해, 일부러 따돌려서 모욕감을 주려는 의도인가 할 정도로 이상했다.

국회의장이 야당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추천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위촉을 거부했다면, 단지 그 이유 때문이라면 대통령은 우리 헌법 원리인 평등의 원칙(11조 1항)을 위반한 셈이다.

독일의 저명한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법과 권리의 침해가 인격 멸시를 포함하는 불법적인 경우에만 투쟁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비겁함과 나약함으로 불법이나 부당한 권리 침해를 감수해서는 안 된다”는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법과 나의 권리가 침해당했는지 스스로 거듭 성찰했고, 대통령이 나의 인격을 멸시했는지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곱씹을수록 개인이 감수할 정도의 경미한 권리 침해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으로서 방송의 자유와 책임은 막중하다. 요사이 방심위와 방심위원의 막대한 영향력은 류희림 위원장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편파적 운영을 고려할 때, 방심위원의 직무 수행은 그 자체로 매우 중대한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나 개인의 위촉 여부를 떠나, 심의위원 결원 시 30일 내로 위촉해야 한다는 방통위 시행령을 위반하면서까지, ‘위촉 부작위’하는 대통령의 행위 그 자체가 위헌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내 개인의 권리 구제 차원을 넘어서, 나에게 행한 대통령 권한 행사 방식인 ‘위촉 부작위’가 헌법 위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향후 방심위원 추천 및 위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취지로 지난달 24일, 대통령이 국회의장으로부터 2023년 11월 1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추천을 받은 나를 위촉하지 않는 부작위가 헌법에 위반됨을 확인해달라는, 대통령의 ‘행정부작위 위헌 확인’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헌법재판소 사전심사 통과한 ‘행정부작위 위헌 확인’ 사건

혹자는 헌법소원을 왜 그리 늦게 청구했냐고 지적한다. 임기 8개월인 보궐위원인지라 청구 시점은 그리 문제 될 것 없다고 본다. 더군다나 대통령을 상대로 곧장 법적 절차로 들어갈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특히 이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법을 무기 삼아, 대통령 대리인들을 통해 언론과 언론학계를 기습적으로 겁박하고 위축시켰던 터라 두려움이 있었다.

2022년 9월 감사원을 통해 TV 조선 재승인 심사를 문제 삼아, 검찰이 학계 추천 심사위원들을 압수수색한 일, 학자 신분인 심사위원장을 구속한 일은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도 학계는 거대한 침묵으로 일관했고, 학회 명의의 변변한 입장조차 발표되지 못했다. 학계의 비겁함으로 치부하기엔 공권력이 발휘하는 공포의 강도는 상식을 초월했다.

현실이 이러하니, 홀로 싸우는 나를 누가 지지하고 지켜줄 수 있겠는가. 내 스스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피추천 되자마자 코바코 비상임이사직을 바로 사임했는데, 코바코는 방송 사업자가 아닌 방송 광고대행업이어서, 위촉 후 사표를 내도 문제 없음을 확인했지만 즉시 그만두었다.

정기적으로 해오던 방송 관련 협회 프로그램 심사도 못 한다고 통보했다. 함께 해온 동료 교수가 “특정 방송사 일도 아니고 여러 방송사 프로그램을 심사하는데 너무 위축되는 거 아닌가” 되물을 정도였다. 학술대회 방송사 후원 세션 발표와 토론도 거절했고, 연구 용역은 응모조차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한 방송사와 몇 년째 같이 해오던 보수가 없었던 트렌드 이슈 연구 모임도 불참했다. 혹여라도 이해관계가 있을까봐서였다.

그러나 위촉 부작위가 길어지면서, 방심위원 위촉을 고려한 단절된 생활을 영위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방송은 현장과 소통 없이 연구가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방심위원과 이해관계가 없다고 확인한 일은 다시 시작했지만, 여전히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이렇게 우울한 상황만 있었던 건 아니다. 최근 기쁜 소식도 있었다. 7월 16일 헌법재판소 지정재판부(재판장 이종석, 재판관 문형배, 정정미)가 이 헌법소원 청구 사건을 재판부 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것. 내 잔여 임기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심사에서 이 사건을 각하하지 않았다니. 희망이 보였다. 8개월여 동안 줄곧 막막한 어려움만 맞닥뜨려 오다 보니, 헌법재판소에서 법의 부당한 행사를 일정 부분 공감해 준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재판부 심판은 갈 길이 멀지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불법을 허용한 권리에 굴복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갈 길이 먼 까닭은, 5기 방심위원으로서 내 임기가 오늘부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권리 보호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헌법소원 심판 자체가 종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임기 종료 자체가 대통령의 위법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위촉을 해태한 대통령의 부작위 행위 방식이 헌법 위반이라면, 사건의 본질이 달라진다. 헌법재판소가 법리대로 심판 해주길 기대한다.

폭력도, 겁박도, 압수수색도 없었지만, 차별적으로나 선택적으로 위촉하지 않는 대통령의 행위에 의해, 상식적인 수준에서 법률 준수를 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삶이 고난에 시달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폰 예링의 지적대로 “본래 동료여야 할 사람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일반의 무관심과 비겁함에 의해 확대된 무법 질서에 홀로 맞서게 된다. 겨우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다는 자기만족밖에 얻지 못하는데도 엄청난 희생을 지불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세상의 칭찬이 아닌 조롱뿐이다”.

그는 이어 “그러한 참담한 상태를 초래한 책임은, 법률을 위반한 사람들이 아니라, 법률을 지키고자 하는 용기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다. 불법적으로 권리가 추방된 경우 고발해야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 이를 허용한 권리다”라고 말한다.

폰 예링은 ‘불법을 저지르지 마라’보다는, ‘불법에 굴복하지 마라’를 첫 번째 원칙으로 삼겠다고 했다. 위안 삼아 이 글을 읽고 또 읽어본다.

지난해 11월 보궐 방심위원으로 추천하겠다는 야당 교섭단체 의원실의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지체 없이 수락했다. 주위에선 다들 의아해했다. 정연주 위원장, 이광복 부위원장, 정민영 위원처럼 갑자기 해촉될 수 있고, 당치 않은 구설에 오를 게 뻔한데, 굳이 왜 임기 8개월 남짓의 보궐위원을 선택하냐며 만류했다. 영리하지 않은 선택일지라도, 내 생각은 단순했다. 만류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은데, 방심위원 하겠다는 사람 찾기는 무척 어렵겠구나 싶었다.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출범도 앞둔 때라 공석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불법을 허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국회와 국회의장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방심위원 추천권자의 권리를 적극 행사해 주시기를 바란다. 스스로 가진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태만히 한다면, 그 권리를 보호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권리의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해 줄 이유가 없다.

* 참고 : 루돌프 폰 예링.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박흥규 역(2022). 문예출판사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