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죄와 벌: 사모펀드와 주가조작

道雨 2024. 7. 26. 08:55

죄와 벌: 사모펀드와 주가조작

 

 

 

 ‘정치 막장 드라마’라는 새 장르를 열어젖힌 ‘돌풍’을 끝까지 본 이유가 하나 있다면, 검사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박동호(설경구)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대사였다.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야. 더 큰 거짓말이지.”

 

마치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오늘을 예견한 것 같은 이 대사가, 드라마의 다른 모든 허물을 상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격노와 이를 감추려는 일련의 거짓말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처리에 관한 모순적인 해명과 말바꿈들, 더 큰 거짓말로 거짓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도전하기 어려운 곡예사 수준의 저글링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가 절정으로 치달으려면,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처럼 인상 깊은 신스틸러의 등장이 필요하다. 그의 출연(녹취파일)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가 브이아이피(VIP)라는 꼭짓점을 통해 연결된 하나의 도형이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이상 파고드는 언론은 없고, 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리도 없다. 오히려 누군가 드라마에서와 같이 검찰과 공수처를 통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의심이 든다.

김규현 변호사가 이종호 녹취록을 언론에 폭로하기 전, 공수처에 출석해 녹취록을 제출하고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를 맡은 담당 검사가 이종호의 변호인이었다니, 단순한 우연일까.

 

사람이 아니라 아내에게만 충성하는 윤 대통령이 이 모든 사태의 시작과 끝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내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저글링용 공을, ‘한동훈-이원석’에서 ‘박성재(법무부 장관)-이창수(서울중앙지검장)’로 교체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한동훈-이원석’의 잘못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그동안 대체 뭘 하다가 임기가 다 끝나가는 이제 와서 ‘패싱’당했다며 화를 내는 것인가.

대통령에게 맞설 강단은 없었지만, 나는 정의로웠노라고 역사에 남으려는 알리바이 아닌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 제안으로 끝날 게 아니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견해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의 ‘충신’이었던 시절,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제기되자 “ㅎㅎㅎ 공작치곤 수준이”라고 비아냥거린 메시지가 채널에이(A) 기자 휴대전화에 남아 있다.

 

그는 법무부 장관이 되고 나서는, 김 여사가 직접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매를 지시한 사실을 재판에서 공개한 검사 두명을 다른 곳에 발령 내는 등, 수사팀을 공중분해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대표가 개입한 것으로 의심받는 이른바 ‘고발사주’ 문건의 고발 대상에는,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도 포함돼 있다.

한 대표와 김 여사가 332차례 카톡을 주고받은 시기가 바로 고발사주 문건이 작성되던 무렵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통정매매와 가장매매 등 불법적 수단으로 시세를 조종한 중대범죄다. 김 여사는 당시 도이치모터스 이사로 재직 중이라고 스스로 밝혔으므로,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전 회장처럼 내부자거래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더구나 당시 김 여사의 계좌를 관리한 블랙펄인베스트는 금융위원회 미등록 업체였다. 미등록 업체의 투자 일임 행위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 김 여사 모녀는 불법 업체의 불법 영업으로 23억원의 불법 수익을 챙긴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의 주인공이 김 여사가 아니라 조국 대표의 부인 정경심씨였다면 어땠을까?

검찰은 수십 군데를 압수수색하고 언론은 없는 의혹까지 부풀려가며 사건을 키웠을 것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사모펀드 가입 자체가 범죄인 것처럼 떠들던 이른바 ‘좌파’ 지식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부부의 사모펀드 투자를 권력형 비리로 예단하고 수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권력형 비리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윤 대통령을 포함해 누구 하나 반성이나 사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탈탈 털어 나온 곁가지 혐의로 유죄가 입증됐다고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다.

집단적 망각에 기초한 우리 사회의 이런 ‘대충주의’는,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면 똑같은 문제가 재발하는 근본적 원인이다.

 

드라마 ‘돌풍’은 정의의 기준을 궁극적으로 해체해버린다는 점에서 퇴행적이고 청산주의적이다.

정의가 완벽하게 관철되는 사회는 지구상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정의의 기준을 촘촘하게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내로남불에도 질량의 차이가 있고, 질량의 눈금에 합당한 분노와 처벌이 따라야 한다.

정의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가까스로 다가서는 것이다.

 

 

 

이재성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