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 대통령에 '간보기' 대표…두 전직 검사에 여권 자멸
국민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려운 단계 이른 윤석열
'명태균 게이트'에 국회 시정연설 불참…11년 만
그나마 국정 파탄 호도하는 자화자찬, 책임 회피
한동훈은 신발 신고 발바닥 긁는 미봉책만 일관
"어떤 이름을 붙인 헌정 중단이든 앞장서 막겠다"
"이번 사안은 법을 앞세울 때 아냐" 기만적 궤변
정치 문외한들의 반(反)정치에 국민 분노 임계치
위기에도 직언 못하는 여권…정권 붕괴 징후 심화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거부권 행사 21회, 국회 동의 없이 장관급 인사 임명 강행 29회,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국회 개원식 불참, 급기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도 불참.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패싱'이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직무유기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국정 전반에 걸친 무능‧무책임‧무도한 행태에 더해 국민의 대의기구인 입법부를 이토록 능멸한다는 것은 독재자의 전형적인 특징으로서 한편으로는 그 말로가 임박했다는 징후로도 해석된다. 이번 시정연설 불참은 '명태균 게이트' 및 '김건희 스캔들'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윤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당 사령탑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신발 신고 발바닥 긁는 수준의 미봉책만 내세우며 여론을 떠볼 뿐 특검 도입에 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연일 최저치를 갱신하며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형국임에도 "어떤 이름을 붙인 헌정 중단이든 앞장서 막겠다"고 해 다수 국민의 뜻을 완전히 오판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치 문외한인 두 전직 검사의 반(反)정치에 국민적 분노가 임계치까지 치솟아 여권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팽배해 있지만 아직 누구도 선뜻 나서 직언할 엄두는 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발만 구르는 모습이다. 여러모로 정권의 붕괴를 예고하는 말기적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대신 한덕수 국무총리를 국회 본회의장에 내보냈다.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하는 시정연설을 총리가 대독한 것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과거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첫해에만 직접 시정연설을 했지만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매년 제 발로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가 여야 의원 및 국민과 직접 소통해 관례로 자리 잡았다. 취임 초 '의회주의자'를 자처했던 윤 대통령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협치를 위한 중요한 관례마저 깨면서 이렇다 할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그나마 한 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은 '경제영토 확장' '성장동력 회복' '새로운 도약' '눈부신 성과' 등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화자찬과 장밋빛 전망을 통해 국정 파탄을 호도하는 내용 투성이였다. 예컨대 윤 대통령은 반도체·자동차 산업의 수출 증가와 체코 원전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역대 최대 규모의 방산 수출 등이 성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민생의 회복 속도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는 국민의 삶 구석구석까지 경기 회복의 온기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또 "국제적인 고금리와 고물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됐고, 주요 국가들의 경기 둔화는 우리의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글로벌 복합 위기는 우리 민생에 큰 타격이 됐다"고 책임 회피성 환경 탓만 늘어놨다. 아울러 "연금·노동·교육·의료 4대 개혁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정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 낼 것"이라고 했다. 4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성찰은 전혀 없었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노쇼'를 두고 국회의장부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한 총리가 연설문을 대독하기에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 수장으로서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 불가피한 사유 없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다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국민들도 크게 실망하셨을 것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본회의장 여당 의석에서는 "뭐 하는 거예요" "민주당 원내대표냐" 등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야권에서는 성토가 빗발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을 저버린 것이다. 국정을 이렇게 운영하겠다는 것을 입법기관이자 예산 심사 권한을 가진 국회에 보고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다"며 "이것은 '서비스'가 아니라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이다. 이 책임을 저버린 것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개탄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회 개원식도 불참, 시정연설도 불참, 민주화 이후 이처럼 노골적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대통령은 없었다. 한마디로 오만과 불통, 무책임만 있는 '불통령'이다"라며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격이 없다. '장님 무사'는 이제 그 칼을 내려놓으라"고 우회적으로 퇴진을 거론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에 충고한다. 김건희 특검은 필연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온갖 의혹들에 대해 진상을 철저하게 밝히고 투명하게 털어내는 것이 그나마 보수 전체의 궤멸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며 "더 이상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 한동훈 대표는 이제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어 11월을 '김건희 특검의 달'로 정하고 특검법을 반드시 관철하기로 결의했다.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14일까지 '1차 비상행동'에 나서 상임위별로 매일 오후 8시부터 2시간 동안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벌일 방침이다. 이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재투표가 예상되는 28일까지 '2차 비상행동'에 들어가 대응 수위를 높여나가기로 했다. 당내에 '명태균 게이트 진상조사단'도 이미 구성했다. 지난 2일 서울역 일대에서 개최한 대규모 범국민대회에 이어 9일 대전에서 2차 장외 집회를 개최하는 등 여론전에 당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 주말 대구에서 '탄핵 다방'을 열고 시민들에게 '탄핵 아메리카노'를 나눠줬던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구 탄핵다방 일정이 먼저 잡혀 서울에서 열린 민주당의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집회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뜨거운 열기를 확인하고 기뻤다"며 "대구 열기도 그에 못지않았다. 대구는 대한민국에서 보수 세가 가장 강한 곳인데도 윤석열 대통령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하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조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앞서 국회 개원식에도 오지 않았다. 국민의 대표자를 만날 용기조차 없는 쫄보"라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그간 제대로 된 입장조차 내지 못했다. 김건희 특검법을 받을 용기는 전혀 없다. 간만 보는 '간동훈'이 된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제 보수진영과 국민의힘도 택일해야 한다. 탄핵이냐 방탄이냐, 그것이 문제"라며 "김건희윤석열 정권을 지키려다가는 같이 몰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김건희 씨를 비롯해 국정감사 불출석, 위증·국회 모욕 등의 사유가 있는 증인 41명을 고발하기로 했다. 야당 주도로 의결한 고발 대상 명단에는 김건희 씨 외에 국민의힘 공천 개입 사건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와 김영선 전 의원,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이 포함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불출석한 김건희 씨의 모친 최은순 씨도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을 향해 상투적인 수준의 국정 쇄신을 재촉할 뿐 실효성 있는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명태균 씨의 통화 파문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민주당이 해당 녹음을 공개한 이후 나흘 만의 입장 표명이었지만 보수 언론들도 관심을 두지 않는 없는 특별감찰관 타령 등 종전에 언급했던 '3대 요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 대표는 "국민과 지지자들께서 정치 브로커 명모 씨 관련한 현재 상황에 대해 실망하고 걱정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죄송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지난 주말 민주당 지도부가 거리로 총출동해서 이 나라의 헌정 중단을 선동했다. 이재명 대표의 중대범죄 혐의들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에 아예 헌정을 중단시켜 버리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중대범죄 혐의'가 자신을 비롯한 정치검찰의 작품임에도 '기승전이재명'식의 정국 인식과 선동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한 대표는 한술 더 떠 "분명히 말씀드린다. 어떤 이름을 붙인 헌정 중단이든 국민과 함께 국민의힘이 막겠다"면서 "보수당의 당 대표로서, 집권여당의 당 대표로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제가 앞장서서 막겠다"고 단언했다. 이어 "이재명 대표 범죄 숨기고 이재명 세상 만들려고 우리 시민들이 촛불 들지 않을 거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라는 말씀을 민주당에 드린다"고 특유의 연기 톤과 스타카토식 화법으로 비아냥댔다.
탄핵은 물론 임기 단축 개헌, 자진 하야 등 윤 대통령 퇴진과 관련한 그 어떤 방안에도 반대하고 야당과 협상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 대표는 대신 정부‧여당의 위기 탈출을 위해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대통령실 참모진 개편, 쇄신용 개각, 국정 기조 전환, 그리고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과 특별감찰관 임명을 대안으로 꺼냈다. 한 대표는 "(민주당의) 그 뻔히 속 보이는 음모와 선동을 막기 위해서는 변화와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통령과 영부인이 정치 브로커와 소통한 녹음과 문자가 공개된 것은 그 자체로 국민들께 대단히 죄송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명태균 씨에 대해 사법 처리를 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기이한 궤변을 펼쳤다. 한 대표는 "제가 오랫동안 법 다루는 삶을 살아왔다. 법이 대단히 중요한데 법이 앞장서서 등장해야 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며 "이번 사안의 경우에 적어도 지금은 국민에게 법리를 먼저 앞세울 때는 아니다. 국민이 듣고 싶어 하시는 말씀은 전혀 다른 것일 거다"라고 국민의 뜻을 아전인수로 내세웠다.
나아가 "민심이 매섭게 돌아서고 있다.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는 점을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우리 정부의 임기는 아직 2년 반이 남았다. 전반전도 끝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해 윤 대통령의 5년 임기 완수를 강조했다. 그는 회의 뒤 취재진이 '사과 정도로는 국민감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질문하자 "중요한 건 이 상황을 푸는 것"이라며 "하나하나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으레 그렇듯 물에 물 탄 듯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날 국민의힘 3선 중진 의원들도 여권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당과 대통령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교환했으나 역시 구체적인 원인 분석과 행동이 동반되지 않은 하나 마나한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추경호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주재한 3선 의원 간담회에는 김석기·김성원·김정재·송석준·신성범·이만희·임이자·정점식 의원 등이 참석했지만 대부분 강성보수에 친윤 성향이라 처음부터 결론이 예상되는 회동이었다.
김성원 의원은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 상황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며 "당과 대통령실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국민 눈높이에 맞춰 함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원내와 용산이 더 많은 소통을 통해 분열하지 않고 단합해 함께 갈 수 있는 방안이 최선이 아닌가(라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막연하게 소개했다. 한 대표의 국정 쇄신 요구와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에 관해서는 "특별하게 말을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김호경 에디터haojing610@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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