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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충렬사와 착량묘

통영 충렬사와 착량묘 # 통영 충렬사(忠烈祠)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8년 후인 1606년(선조 39) 제7대 수군통제사 이운룡이 이순신 장군의 충절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어명을 받아 건립한 사당이다. 충렬사(忠烈祠) 현판은 현종 임금이 1663년에 내린 사액 현판으로, 문정공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1670년에 제51대 수군통제사 김경이 동재와 서재를 지었고, 1681년에는 제60대 수군통제사 민섬이 충렬묘비(忠烈廟碑)를 세웠다. 충렬묘비는 각 면이 평평하게 손질된 길쭉하고 네모진 형태이다. 비문은 1614년 좌의정 이항복이 지었던 여수 ‘이충무공 대첩비’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1695년(숙종 21)에 수군통제사 최숙이 경충재를 증축하여 서당을 ..

문화, 문화재 2023.07.07

당포해전의 경과와 승리 요인

당포해전의 경과와 승리 요인 [이봉수 칼럼] 1592년 5월 30일(이하 음력)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함대는,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후, 모자랑포(사천군 용현면 주문리)에서 1박 하고, 사량(통영시 사량면 진촌리)으로 향하였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왼쪽 어깨에 적탄을 맞고 큰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6월 2일 오전 8시경 사량 해상에서 휴식 중이던 이순신 함대는, 적선이 당포(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선창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순신은 바로 출발하여 10시경 당포 앞바다에 도착했다. ​ 당시 당포에 머물고 있던 적병은 약 300 명이었다. 이들은 당포성 안에서 노략질을 하며 민가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당포 선창에는 21척의 적선이 정박하고 있었으며, 이순신함대가 접근하자, 성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