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난적 2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 조선의 주자 vs 사문난적 # 보수의 세기, 주자학의 광기(狂氣) 조선의 유학사를 말할 때, 대개 율곡 이이의 학통은 사계(沙溪) 김장생 → 신독재(愼獨齋) 김집 → 동춘당(同春堂) 송준길 → 우암(尤庵) 송시열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율곡은 ‘경장(更張)’과 ‘안민(安民)’을 정치의 최우선적 가치로 여긴 개혁적 성향의 성리학자였던 반면, 김장생 이후 김집과 송시열에 이르기까지 서인(특히 노론 계열) 세력은 ‘신분 질서’와 ‘춘추의리(春秋義理, 중화를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를 정치와 사상의 최고 가치로 삼은 보수적 성향의 주자학자였다. 율곡의 성리학 사상과 정치 철학이 집약되어 있는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살펴보면, 그는 시무(時務)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마땅히..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 수락산이 맺어준 200년의 인연 # 매월당(梅月堂) : 매화와 달을 사랑했던 광사(狂士) 김시습은 천재였다. 수많은 천재 중에서도 천재가 인정하는 유일한 천재였다. 아홉 번이나 과거 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천재 율곡 이이가 천재라는 기록을 남긴 유일한 인물이 김시습이다. 율곡은 ‘시습(時習)’이라는 이름 역시 김시습의 타고난 천재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적었다. ··· (김시습은) 태어날 때부터 천품(天稟)이 다른 사람과 달랐다. 세상에 나온 지 불과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알았다. 최치운이 보고서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시습(時習)’이라고 지어주었다. 시습은 말은 더디었으나 정신은 놀라워서, 글을 보면 입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뜻은 모두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