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서방님 | |
윤관 장군의 연인과 그의 죽음 진정코 아깝고도 야속한 것은 하나 뿐인 목숨입니다. 서방님을 위하여 초개처럼 목숨을 버렸건만 오호라 서방님은 일부러 나를 골려주려고 연극을 꾸몄다고 합니다. 우째 이런 일이 나에게.... 이창호는 그동안 세계대회에서 여덟 번이나 우승하는 등 발굴의 실력을 발휘했으나 매메드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더니 이번에야 오랜 숙원을 푼 격이지요. 가수 설운도도 ‘원점’이란 노래를 불러 빅 히트를 쳤지 않습니까? 하지만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이 혼만은 오늘도 파주의 용미리에 있는 낙화암에 내려앉아 하늘을 우러러 통곡합니다. 오, 서방님! 저는 고려 때에 여진족을 물아내고 9성을 쌓아 국방을 튼튼히 한 윤관(尹瓘, ?~1111) 장군의 애인입니다. 여진족은 장군의 이름만 듣고서도 와들와들 떨었지만 저에겐 언제나 착하고 다정한 낭군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시기(詩妓) 김부용(金芙蓉)이가 생각나네요. 어느 날, 정담을 나눈 어떤 남자와 헤어지는데 서로 배웅하는 장소에서 남자가 먼저 아쉬움을 노래했어요. 여진족이 국경에서 약탈을 일삼자, 임금은 장군에게 그들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저는 윤 장군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며 주안상을 대접했어요. 전화도 없고, 라디오나 테레비도 없으니 어떻게 전황을 알 수가 있어야지요. 무조건 마음을 조리며 기다렸어요.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 밤은 저의 마음을 한없이 고적하게 만들었어요. 특히 장군이 떠난 자리에 그대로 놓인 원앙금침을 바라보면 혼자라는 외로움이 뼈까지 시려 와 목이 메이도록 울었어요.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어요. 저는 정신을 차리고 느티나무로 기어올라 가 저 멀리를 바라보았어요. 꼭 붉은 깃발이 펄럭이길 바랬는데, 바램과는 달리 흰 깃발이 너풀댔어요.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 보아도 역시 흰 깃발이었어요. 저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으며 나무에서 힘없이 미끄러져 내려왔어요. 윤 장군이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생각한 저는 앞 뒤를 가릴 것 없이 곧바로 연못에 몸을 던졌어요. 저는 무척이나 화가 났어요. 비록 시신이지만 외간 남자가 내 몸을 주무르는 것은 망자를 욕보이는 처사이지요. 너무도 화가 치밀어 그 자를 혼내주려고 팔을 걷어 부치며 멱살을 움켜 쥐었어요. 그런데 아뿔사, 저도 모르게 손을 놓고 말았어요. 놀랍게도 그 사람은 윤관 장군이었어요. 너무도 기가 막혀 말도 못한 채 멍하니 바라만 보았어요.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던 장군은 통곡하며 말했어요. 이 때 조정은 당초 한 통로만 막으면 여진의 침입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예측이 맞지 않았고, 터전을 잃은 여진의 보복이 두렵고, 거리가 너무 멀어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장군이 생명을 걸고 공략한 9성을 돌려 준 거지요. 여진 토벌이 실패로 돌아가자, 조정은 장군을 모함하여 관직과 공신의 칭호조차 삭탈하였고, 명분 없는 전쟁으로 국력만 소모하였다고 비방했어요. 너무나 억울한 처사지요. 군대를 철수한 장군은 임금에게 보고도 하지 못한 채 벼슬을 물러났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였어요. 인간 만사가 모두 허망하고 덧없을 뿐이지요. 윤관 장군을 추모할 때면 어렵지만 저의 외로운 혼도 함께 위로해 주세요. 덕을 쌓으면 언젠가는 복을 받을 거여요. 안녕히 계세요.
*** 윗 글은 '고제희의 역사나들이'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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