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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8> - 김매는 한충과 김인찬을 만나다

道雨 2008. 6. 10. 12:39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8>
  김매는 한충과 김인찬을 만나다
  2001-12-11 오전 10:19:53

 

우왕 8년(1382) 7월, 이성계는 동북면 도지휘사가 됐습니다. 이때 여진 사람 호발도(胡拔都)가 동북면 인민을 사로잡아 갔는데, 이성계가 대대로 그 지방의 군사 업무를 맡아 지역 사정에 밝으므로 그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듬해 8월에 호발도가 다시 와서 단주(端州, 단천)를 노략질했습니다. 부만호(副萬戶)의 자리에 있는 자가 내응해 재물을 모두 챙겨 일부러 뒤에 빠져 있다가 거짓으로 잡혔습니다. 상만호 육여(陸麗)와 청주(靑州, 북청) 상만호 황희석(黃希碩) 등이 여러 번 싸웠으나 모두 패했습니다.
  

 
고려말 왜구들은 특히 남부 지방을 침입해 괴롭혔다.

  이때 이두란이 모친상으로 청주(靑州)에 있었는데, 이성계는 나라 일이 급하니 상복을 입고 있을 수 없다며 상복을 벗고 따르도록 했습니다. 길주(吉州) 들에서 호발도를 만난 선봉 이두란은 그와 싸우다가 크게 패해 돌아왔습니다.
  
  곧 이성계가 도착했습니다. 호발도는 두꺼운 갑옷을 세 겹으로 입고 붉은 털옷을 걸친 채 검은 암말을 타고 진(陣)을 옆으로 펼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이성계를 깔보고는 군사를 남겨둔 채 칼을 뽑아 앞으로 달려나오니, 이성계도 혼자서 칼을 뽑아 말을 달려나갔습니다.
  
  칼을 휘둘러 서로 쳤으나, 두 칼이 모두 번쩍이면서 지나쳐 맞히지 못했습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호발도가 미처 말을 타기 전에 이성계가 급히 말을 돌리고 활을 당겨 그 등을 쏘았습니다. 갑옷이 두꺼워 화살이 깊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곧 다시 그의 말을 쏘자 말이 넘어져 호발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성계가 다시 쏘려는데 그 휘하 군사들이 우루루 몰려와 함께 그를 구해냈습니다. 우리 군사도 도착하니, 이성계가 군사를 풀어 크게 적군을 쳐부수었습니다. 호발도는 겨우 몸만 빠져 도망쳤습니다.
  
  9월에 이성계는 동북면에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이성계가 안변에 이르니, 비둘기 두 마리가 밭 한가운데 뽕나무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쏘자 단발에 비둘기 두 마리가 함께 떨어졌습니다. 길가에서 한충(韓忠) 김인찬(金仁贊) 두 사람이 김을 매고 있다가 이를 보고 감탄해 말했습니다.
  
  “대단합니다, 도령의 활솜씨가.”
  이성계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도령은 벌써 지났소.”
  그러고는 두 사람에게 갖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조밥을 차려 바쳤고, 이성계는 그 성의를 보아 수저를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침내 이성계를 따르고 떠나지 않았고, 모두 개국공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9월에 명(明)나라 사신들이 우리 나라에 와 이성계와 이색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때 이성계와 최영의 이름이 다른 나라에도 널리 알려졌으므로, 사신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모두 밖에 나가 있었습니다. 최영은 교외에 나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왜적의 배 1백50 척이 함주 홍원 북청(北靑) 등지를 노략질해 사람을 죽이고 잡아가 씨가 말랐습니다. 대장인 찬성사 심덕부 등이 왜적과 홍원의 대문령(大門嶺) 북쪽에서 싸웠습니다. 심덕부는 적진에 혼자 뛰어들어갔다가 창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그 분전에도 불구하고 크게 패해 적의 세력이 더욱 강성해졌습니다.
  
  이성계는 가서 적을 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함주에 이르러 여러 장수들의 담당을 정하면서 이성계는 다시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역시 장기인 활솜씨로 말입니다. 군영 안에 소나무가 있었는데, 70 보 거리에서 몇 번째 가지의 몇 번째 솔방울을 쏘겠다고 공언하고 즉시 활로 쏘았습니다. 일곱 번 쏘아 일곱 번 모두 말한 대로 맞히니, 군중(軍中)이 모두 발을 구르고 춤을 추며 환호했습니다.
  
  이튿날 곧바로 적이 주둔해 있는 토아동(兎兒洞)으로 가서 골짜기 좌우에 군사를 매복시켜 두었습니다. 적의 무리가 먼저 골짜기 안의 동쪽과 서쪽 산을 차지했는데, 멀리서 소라 소리를 듣고는 크게 놀랐습니다.
  
  “이건 조개로 만든 이성계의 소라 소리다!”
  이성계는 상호군 이두란 등 1백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고삐를 당기면서 천천히 행군해 그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적군은 우리 군사가 적고 행진이 느린 것을 보고는 까닭을 알 수 없어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동쪽의 적군이 서쪽의 적군에게로 가 한덩어리가 됐습니다.
  
  이성계는 동쪽의 적군이 진을 쳤던 곳에 올라가서 걸상에 걸터앉아, 군사들로 하여금 말안장을 벗겨 말을 쉬게 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말을 타려는데, 1백 보 가량 되는 곳에 마른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잇달아 세 발을 쏘아 모두 맞히니, 적군이 서로 돌아보면서 놀라고 탄복했습니다.
  
  이성계는 적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뒤 항복을 권유했습니다. 적의 우두머리는 그대로 따르겠다고 대답하고 부하와 더불어 항복을 의논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성계는 공격하기로 하고 말에 올라 이두란, 고여, 조영규 등을 시켜 그들을 유인해 오게 했습니다.
  
  선봉 수백 명이 쫓아오자 거짓으로 쫓기는 체하면서 스스로 맨 뒤에 서서 물러나 복병 속으로 들어갔고, 드디어 군사를 돌려 몸소 적군 20여 명을 쏘아 모두 죽였습니다. 이두란, 안종검 등과 함께 말을 몰아 공격했고, 복병도 일어났으며, 이성계도 몸소 군사들의 선두에 서서 적군의 후면을 쳤습니다.
  
  손수 죽인 적군을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쏜 화살이 튼튼한 갑옷을 꿰뚫기도 하고 화살 한 개에 사람과 말이 함께 꿰뚫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넘어진 시체가 들판을 덮고 내를 막아, 한 사람도 빠져 도망친 자가 없었습니다.
  
  우왕은 이성계에게 백금 50 냥과 안팎 옷감 다섯 벌, 안장 갖춘 말을 내리고, 또 정원십자공신(定遠十字功臣)의 칭호를 더 내렸습니다.
  
  

  이재황/실록연구가
   

 

출처 : 황소걸음
글쓴이 : 牛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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