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스크랩] 삼국유사의 행간읽기

道雨 2009. 5. 15. 11:37

 

삼국유사의 행간읽기

 

 

 

삼국유사하면 고려 고승 일연 선사(1206~1289)가 떠오른다. 지난 2006년에는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여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 것으로 기억한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함께 한국 고대사서의 쌍두마차로 꼽힌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체제와 내용에서 서로 다르다.

삼국유사는 사서(史書)이지만 유사(遺事)라고 이름하여 역사 사(史)자를 쓰지 않고 일 사(事)자를 썼다. 삼국사기는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나 삼국유사는 고조선·부족국가·삼국시대 등을 기록하여 우리의 상고사를 확장시켰다.

단군신화와 향가의 수록은 삼국사기에는 없는 내용이며 불교관련 기록이 많은 것도 ´유사´의 특징이라 하겠다.

삼국유사는 읽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을 펴낸 이범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가 국보에 속하는 사서라는 말만 믿고 아무런 준비 없이 읽는다면 대부분 실망할 뿐만 아니라 몇 쪽 읽지도 않고 덮어버린다.

내용도 어렵지만 어린 학생도 웃어버릴 허무맹랑한 소리를 비빔밥·잡탕식으로 엮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다섯 번 책을 덮은 후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체제와 의미의 일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즉 귀신이야기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우리 조상들의 삶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며 잡탕식 편집인 듯이 보이는 것은 일연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행간에 숨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연과 교감하여 살았던 일연의 시대에는 상징과 함축은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합리주의에 젖은 현대인은 원문 번역 자체만으로 그 의미 전체를 알기는 참으로 어렵다. 결국 삼국유사를 읽어내는 요체는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행간이란 글의 줄과 줄(行) 사이(間)다. 거기는 아무런 글이 없는 백면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읽으라는 말은 표현된 글 속에 숨은 뜻을 읽으라는 말이다.

´행간을 읽는다´는 것은 글을 읽을 때 매우 중요하다. 글 쓴 사람의 의도가 행간에 담겨 있기에 그것을 알아내지 못하면 글 내용을 잘 모르거나 잘못 알게 되 해석의 오류를 범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를 읽지 않았더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는 마치 동화처럼 널리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 경문왕조에 실려 있다. 경문왕은 신라 제48대 왕으로 재위는 14년간이다. 이야기가 나오는 원문 번역은 이렇다.

"…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됐다. 왕후와 궁전의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복두 만드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평생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돼서야 도림사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소리치기를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고 했다.

그 후에 바람이 불면 대나무가 소리를 내어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 하였다. 왕이 이것을 싫어하여 곧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임금 귀가 길다네´하는 소리가 났다…."

이 내용의 행간을 읽으면 다음과 같다. ´왕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되다´는 당나귀는 미련한 짐승으로 대표되며, 귀의 의미는 쇠귀에 경 읽기처럼 무능한 경문왕에게 진실이 들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재해와 반란으로 곤궁한 백성들을 헤아리지 않고 대규모 부역동원과 같은 미련한 정책을 강행했다는 뜻이다.

´복두´는 왕의 무능과 미련함을 감추는 허위의 상징이요 ´대나무 숲을 베었다´ 함은 여론의 탄압을 의미한다. 경문왕이 권력의 힘으로 민심을 통제함을 뜻한다. 삼국유사의 행간을 읽어내려면 당시의 국내외 정세와 왕위계승을 둘러싼 귀족들 간의 알력 등을 알아야 한다. 또한 왕의 치세가 선정이었는지 억압정치를 했는지도 헤아려야 한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한 의도는 몽골의 침략으로 인한 민족적 수난을 극복하고 민족사의 자주성과 문화의 우위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연의 의지는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하여 중국역사의 시작이라는 요 임금과 동시대로 인식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행간읽기를 통해 일연의 의지를 바로 아는 것은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갈 역사의 방향과 내용 설정에 큰 일깨움을 얻자는 데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데일리안/이정복 동산도기박물관장 2009.5.13>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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