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전설, 설화

마원, 복파장군.... 율무이바구

道雨 2010. 1. 19. 10:48

 

* 아래의 글은 '고전의 메아리' 카페에서 옮겨온 것인데, 부분적으로 제가 주석을 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원(馬援), 복파장군(伏波將軍).... 율무 이바구
 
 

 

중국 남방 여행가시는 분들은 참~ 좋겠십니더!.... 이제 서서히 맘이 설레이시겠네요.

중국 남방을 생각하다가 명심보감의 마원 云云... 구절이 생각나네요. 

제갈량의 칠종칠금(七縱七擒 : 촉의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사로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었다는데서 유래함) 고사도 무대가 남방이라면서요....

 

馬援曰, 終身行善이라도 善猶不足이요 一日行惡이라도 惡自有餘니라.

(죽을 때까지 착한 일을 행하더라도 선은 오히려 부족한 것이요, 하루만 악한 일을 행하더라도 악은 남는 것이다) 

馬援曰, 聞人之過失이어든 如聞父母之名하여 耳可得聞이언정 口不可言也니라.

(남의 허물에 대해 듣거든 부모님의 이름을 들은 것 처럼 해야 하느니, 귀로는 듣되 입으로는 말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또한 이른바 老益壯 구절도 마원과 관련이 있다죠?...  

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 

 

여기저기 뒤져보면... 다음과 같은 이바구가 나옵니다.

후한때 마원이 남방을 평정하고...거기서 율무를 가지고 들어오고.... 그러다가 모함을 받고....

결국 남쪽 지방에서 싸우다가 거기 풍토병이 들어서 병사했다는군요.

(또 다른 곳에 보면) 마원이 조카들에게 쓴 편지 이바구도 있습니다. 

아무튼 율무는 몸을 가볍게 하고 피부에 좋다고 하군요.

운남성은 특히 기후가 년중 따뜻하고 참 좋다고(?) 하더군요. 습도가 높은 곳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마원이나 칠종칠금이  이번 여행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요... 그냥 찾아 보았십니더...

아래 글은 한문 이바구라기 보다는 한방 이바구입니당.... 참고하이소...(이하 베껴온 글)

 

 

옛날부터 의이인(薏苡仁)은 식용은 물론 약용으로 쓰였다. 신농본초경에 상품약(上品藥 : 많이 먹을 수록 몸에 좋은 약)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껍질이 얇고 차진 것이다. 입속에 넣고 씹을 때 이빨에 들어 붙는 것이 좋다. 또 껍질이 단단한 것은 보제자(菩提子) 라고 부르는데 두 가지 모두 비슷한 작용을 가지고 있다.

 

의이인은 화본과(禾本科 : 벼과) 식물이며, 알맹이가 크고 살이 찌고 하얀 것이 가품(佳品)이다.

의이인은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미워하거나 남이 가지고 있는 좋은 물건을 샘내고 속을 태우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성질을 누그러지게 해준다.

의이인은 진주 보석과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의이인은 구슬주(珠)자가 들어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즉 보제주(菩提珠), 교염주(膠念珠), 의주자(薏珠子), 초주아(草珠兒), 필제주(必提珠), 노아주(老雅珠), 진주미(珍珠米) 등의 별칭을 가지고있다.

 

 

 

한(漢)나라 때 발생된 "의인명주방(薏仁明珠謗 : 의이인을 보석이라고 비방함)에 대한 고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계림(桂林)의 리강(漓江)변에 있는 6 만 5 천개의 산봉우리 중에 복파산(伏波山)이 있는데 그곳에 환주동(還珠洞)이 있다. 굴이 상당히 크고 넓기 때문에 일 이백명은 족히 굴속으로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다. 그 굴속에 3 미터 쯤 되는 돌기둥이 굴천정에서 땅바닥으로 내려와서 굴 밑바닥에 달라붙은 것 같이 생겼다. 

전설에 의하면 이 돌기둥은 마복파 장군의 칼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복파장군은 동한(東漢) 때 명장(名將)이었다. 본명은 마원(馬援)이다. 마원은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 : 동한의 창건자)의 명령을 받들어 교지(交趾)로 원정을 나섰다. 교지는 지금의 월남 국경지대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복파 장군의 군사들이 새로운 지역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족마비와 통증은 물론, 하지가 부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결국 온 몸이 붓는 장기(瘴氣 : 풍토병의 일종)라는 괴질병에 걸렸다.

후에 이 지역에 살고있는 백성들의 도움으로 의이인을 끓여 복용하여 다행히 질병은 치료되었다. 물론 복파장군을 비롯한 모든 병사들이 의이인을 복용하고 질병이 치료되었다.

 

복파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철수하면서 의이인 한 수레를 싣고 낙양(洛陽)으로 돌아왔다. 복파 장군이 귀중한 값비싼 보석을 개인 재산으로 한 수레 싣고 돌아왔다는 소문이 낙양 성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조정(朝廷) 내에는 복파 장군을 질투하며 임금께 아첨하는 간신배들이 있었다. 그들은 광무제에게 "마원 장군이 교지에서 진주를 비롯하여 많은 값비싼 보석을 한 수레 싣고 귀경했다" 고 아뢰었다.

마원은 이 소식을 뒤늦게 듣고, 자기를 함정에 빠뜨려 죄를 씌우려는 사람들을 반격하여 "그것은 진주보석이 아니라 리강에서 가져 온 의이인이다." 고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표명했다. 그러나 어명으로 참수형이 집행되었다.

 

마원 장군이 죽은 후, 감군(監軍) 도량(稻梁)이 마원 장군은 사실상 거짓으로 누명을 쓰고 참수형을 당했다고 임금에게 진술서를 써서 올렸다. 감군은 그 당시 밤중에 도성(都城)의 안팎을 순행하며 군사들의 순행(巡行)을 검독(檢督)하던 벼슬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헌병대장 쯤 되는 벼슬이다. 그러므로 도량은 어느 누구보다 관리들의 비행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마원을 질투하던 관리들은 남방으로 부터 대량의 진주와 무소뿔(犀牛角)을 강제로 백성들로 부터  탈취하여 수레에 가득 싣고 와서 사유재산으로 착복했다.

 

광무제는 감군 도량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마원에 대한 종전의 벌을 모두 취소하고 감군 도량이 새로 상고한 상소문을 인정한다는 전지(傳旨)를 내려 보냈다. 이 소문을 듣고 마원을 추모하는 많은 백성들은 더욱 더 처절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후세 사람들이 마원 장군의 청렴결백함을 기념하기 위하여 리강변에 있는 산을 복파산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복파산 속에 있는 동굴을 환주동(還珠洞)이라고 명명하였다.

 

당나라 때  대 시인 두보(杜甫 : 서기 712 년 - 서기 770 년)는 복파장군의 고사에 대하여 "도량구미족(稻梁求未足), 의이방하빈(薏苡謗何頻)" 이라고 시를 읊었다. 다시 말하면 "감군 도량이 복파 장군을 구해내지 못했지만 의이명주방(薏苡明珠謗)이 어찌 반복 될소냐?" 는 뜻이다.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의이참우마복파(薏苡讒憂馬伏波)" 라고 시를 읊었다. 즉 "의이인은 마복 장군에 대한 중상모략을 슬퍼하고 있다." 는 뜻이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대 문학가 주이존(朱彛尊) 역시 "오동야우사처절(梧桐夜雨詞凄絶), 의이명주방우연(薏苡明珠謗偶然)" 이라고 시를 읊었다. 다시 말하면 "벽오동 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밤비 내리는 쓸쓸하고 처량한 이 밤에 의이인을 진주보석이라고 비방한 고사가 문득 생각나누나!" 라는 뜻이다.

 

복파 장군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후에 사람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방을 받는 일이 생기면 의인명주방(薏仁明珠謗)" 이라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의인명주방이란 고사성어(故事成語)는 마복파장군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복파 장군이 걸렸던 장기병(瘴氣病 : 습기가 많고 더운 지방인 남방지방에서 많이 유행하는 풍토병의 일종으로 각기병에 해당된다)은 영남(岭南)지방의 유행병이었다. 심한 경우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본래 장기병은 하지(下肢)에서 시작하므로 각기병이라고도 부른다.

 

남북조시대의 양(梁)나라 때 남경에서 각기병이 유행하여 무수한 생명을 앗아갔다. 이 병을 각기충심(脚氣衝心)이라고도 부른다. 당나라 때에는 이 병이 강남지역에 만연하여 수 많은 생명을 앗아갔기 때문에 강남병(江南病)이라고 불렀다.

 

천금방과 외대비요에 보면 "장기병은 콩으로 치료 가능하다" 고 기록되어 있다. 또 식료본초(食療本草)에 보면 "의이인거건습각기(薏苡仁去乾濕脚氣)" 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의이인은 건습각기(건각기와 습각기로 모두 각기병의 일종)를 물리친다." 는 뜻이다.

 

19 세기 말 화란의 의사는 쌀겨(米糠)로 각기병을 치료하였다. 화란의 과학자 Eckerman 은 쌀겨속에 비타민 B1 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20 세기 초에 "각기병은 비타민 B1 결핍증이다" 고 규명되었다. 의이인 속에는 비타민 B1 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광무제는 서기 25 년 부터 서기 57 년 까지 32 년간 통치한 동한(東漢 : 後漢이라고도 한다)의 초대 임금이다. 그 당시 의이인을 사용하여 장기병을 치료한 사실이 과학적으로 현대에 와서 비로소 증명되었다.

 

근대 연구에 의하면 율무속에 "율무 에스테르(Ester)" 가 포함되어 있다고 증명되었다.

에스테르란? 

탄소와 유황과 인 등을 포함하고 있는 유기물이다. 율무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전분, 비타민 B 등 풍부한 영양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 화본과 식물의 왕" 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광동 지방 사람들은 여름철에 생의인과 신선한 동과(冬瓜)를 함께 끓여 죽을 만들어 먹는다. 왜냐하면 청열이습(淸熱利濕 )작용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의이인, 녹두, 백합, 연자(蓮子)로 죽을 끓여 먹으면 청화(淸火), 안신(安神), 보허(補虛), 익위(益胃)의 효과가 있다.

 

현대 연구에 의하면 의이인 속에 함유되어 있는 율무에스테르는 암세포의 생장을 억제하며 암세포를 죽이는 작용이 있다고 나타났다. 그러므로 현재 율무는 위암, 장암, 자궁암, 유방암의 보조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발행된 '한방연구(漢方硏究)'에 보도된 논문을 보면, 일본 정강시(靜崗市) 산부인과 병원에서 의이인편을 사용하여 4 명의 여성첨예습우(尖銳濕疣) 환자를 치료하였다고 한다. 이 병은 인유두종류병독(人乳頭腫瘤病毒 : HPV)의 감염으로 발생되는데, 인체내의 호발부위는 여성의 대음순과 소음순과 회음(會陰)에 주로 발생된다.

 

일본 소태랑(小太郞) 한방제약회사에서는 의인편(薏仁片)을 현재 생산하고 있다. 의인편은 최유(催乳: 젖을 잘 나오게 함))와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으므로, 일본 여성들은 의이인을 미용식품으로 애용하고 있다.

의이인은 우리 말로 율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