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서 만나면 상극이니라
# 꼭 지켜야 할 ‘양약-음식 궁합’
- 제산제 대부분 주스와 상극관계…고혈압약 일부 과일·채소 주의
- 아스피린 속쓰림엔 우유가 좋고 미지근한 맹물 1컵 ‘최고의 만남’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 있듯, 약과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 특정 약과 함께 먹으면 약효를 높여주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약효를 떨어뜨리거나 부작용을 일으키는 음식이 있다. 따라서 질병의 빠른 치료와 건강한 일상을 위해 약물의 효능에 영향을 미치는 식품들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 감기약·항생제↔커피·녹차·콜라 약을 먹고 난 뒤 쓴맛 때문에 초콜릿을 먹거나 커피나 홍차, 녹차, 영양드링크, 탄산음료 등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서씨처럼 약을 거부하는 아이들에게 “약 먹으면 이것 주지” 하면서 초콜릿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문제는 대부분의 감기약과 복합진통제에 졸음을 방지하기 위한 크산틴계 중추신경 흥분제인 카페인이 들어 있다는 점. 감기약과 항생제를 카페인 함유 음료와 함께 먹으면 카페인이 과다섭취되어 불안, 불면증, 현기증, 메스꺼움, 구토, 구역질 등은 물론 부정맥 같은 부작용의 원인이 된다. 천식치료제나 감기약 등에 사용되는 기관지확장제(테오필린)도 카페인 함유 음료와 함께 복용하면 각성효과와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아스피린을 포함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칼슘보충제 역시 카페인 음료와 먹으면 속쓰림, 위궤양 등의 부작용은 물론 약효를 떨어뜨리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빈혈약을 먹는 사람이라면 타닌 성분이 들어 있는 홍차나 녹차를 함께 마시면 안 된다. 철분과 결합해 철분 고유의 성분을 변화시킬 수 있다. 보리차는 골다공증 치료제의 흡수를 저하시킬 수 있으며, 옥수수차는 이뇨작용을 증진시키므로 이뇨제 복용 시에는 권장되지 않는다.
■ 고혈압·고지혈증 치료제↔과일주스 오렌지주스와 어울리지 않는 약은 위의 산도를 줄이기 위해 먹는 겔포스나 알마겔 같은 제산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대중적으로 애용된 이 약들이 주스와 상극관계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산제 속의 알루미늄 성분이 흡수를 방해해 약효를 떨어뜨리므로 약 복용 전후 2시간 동안에는 주스 마시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다.
고혈압약, 우울증 치료제, 면역억제제를 비롯하여 알레르기나 기침, 콧물, 재채기 등에 두루 쓰이는 항히스타민제도 주스와 함께 복용하면 좋지 않다. 고지혈증 치료제와 주스를 함께 먹어도 약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은숙 분당서울대병원 약제과 과장은 “직접 갈아 만든 과일주스도 약과 함께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단, 철분제는 오렌지주스와 같이 먹으면 약의 흡수가 더 잘된다.
주스 형태는 아니더라도 바나나, 귤, 오렌지, 양배추, 녹황색 채소처럼 칼륨 함유량이 높은 식품은 동맥경화, 심근경색으로 항응고제를 먹을 때 가급적 피해야 한다. 체내에 혈액응고를 촉진하는 비타민K 성분이 늘어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고혈압약 역시 녹황색 채소, 바나나, 오렌지 등과 함께 먹으면 체내에 칼륨이 많아져 혈압을 과도하게 떨어뜨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항진균·항생제↔우유 및 유제품 곰팡이균에 감염된 질환을 치료하는 항진균제나 항생제를 우유, 치즈, 요구르트와 함께 먹으면 약물의 흡수력이 떨어져 약효를 반감시킨다. 우유의 칼슘이 피부병을 완화시키는 테트라사이클린 성분이 든 항생제와 결합해 체내 흡수율을 낮추기 때문이다. 물을 많이 먹어주거나, 항생제 복용 전후 2시간 동안 우유 섭취를 삼가야 한다. 변비약과 함께 우유를 먹으면 약이 대장에 도착하기 전에 위에서 약이 녹아 복통, 위경련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알레르기나 류머티즘 치료에 사용되는 부신피질호르몬제나 아스피린 같은 소염진통제는 우유와 함께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우유가 위장 자극을 막아 속쓰림, 위궤양을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 반면 비타민 음료와 함께 아스피린을 복용하거나, 아스피린을 먹은 뒤 비타민 음료를 마시면 효과가 떨어진다.
■ 미지근한 물과 먹어야 효과 뛰어나 약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가능한 한 맹물과 함께 먹자. 이때 물의 온도는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되지만, 기왕이면 위장 온도와 비슷한 35도 전후가 좋다. 물의 온도가 높을수록 약이 위에 더 오래 머물러 있게 되고, 너무 찬물로 복용하면 점막의 약 흡수력을 저하시키거나 설사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보영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약제과 과장은 “약은 미지근한 정도의 맹물 1컵과 먹어야 식도나 위에 자극이 적고 흡수되는 속도도 빠르다”며 “보리차나 옥수수차는 농도가 진하지 않다면 큰 영향이 없으며, 오히려 미네랄 등을 섭취할 수 있어 좋다”고 조언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도움말: 최민규(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황보영(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약제과 과장), 분당서울대병원 약제부, 식약청 온라인 복약정보방(medication.kfda.go.kr), <약과 음식의 궁합>(넥서스BOOKS)
한약 먹을 때 주의할 음식
밀가루 꼭 피할 필요 없어
한약을 복용할 때에도 피해야 할 음식들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돼지고기와 개고기, 기름진 음식과 고깃국, 생선회, 날고기, 날채소, 과실, 마늘 등을 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되어 있다. 한의원에서 돼지고기, 닭고기, 생무, 녹두, 술, 밀가루 등을 삼가라고 하는 것은 이 음식들이 소화장애를 일으키거나 한약의 흡수를 방해해 약효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는 기름기가 많고 찬 성질을 갖고 있다. 추위를 많이 타고, 비위 기능이 약하며, 장 기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다. 특히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한약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이에 반해 닭고기는 열이 많은 음식이어서 태양인, 소양인에게 좋지 않다. 더위를 많이 타거나 찬 것을 좋아하는 사람, 열성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피해야 한다. 자생한방병원 척추디스크센터 김창연 원장은 “소음인이나 태음인은 소화기능이 약해 돼지고기를 먹으면 설사를 하거나 위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밀가루 음식은 평소 위장병을 앓고 있거나 위가 약한 사람, 소화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가릴 필요까진 없다. 예부터 한약을 먹을 때 생무를 먹으면 머리카락이 희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속설이다. 정용재 가로세로한의원 잠실점 원장은 “지황·하수오가 무와 상극관계여서 약효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며 “한약을 먹을 때에는 생무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녹두는 부자, 초오 같은 맹독성 약물을 잘못 복용했을 때 해독제로 쓰인다. 따라서 한약과 녹두를 함께 복용하면 약효를 중화시켜 한약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녹두가 모든 한약을 중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용재 원장은 “열을 없애는 약을 쓰는 경우에는 가릴 필요가 없지만, 속이 찬 경우나 몸을 따뜻하게 할 목적으로 한약을 쓸 경우에는 가리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술, 커피, 맵고 짠 음식, 탄산음료, 인스턴트처럼 몸에 해로운 음식들도 한약의 흡수를 방해하는 원인이 되므로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다. 단, 통증질환 치료가 목적일 때는 오히려 약간의 술이 한약의 흡수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김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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