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언, 귀감이 되는 말

인생의 목표와 삼립(三立)

道雨 2010. 11. 19. 17:22

 

 

 

 

                      인생의 목표와 삼립(三立)

 

 

 

 

* 사마천은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 나와 가져야 할 인생의 목표로 삼립(三立)이란 것이 있다고 보았다.

세 가지 세워야 할 목표다.

그 첫 단계가 공명을 세우는 입공(立功)이다.

그보다 높은 차원은 자신의 철학을 글로 나타내는 입언(立言)이고, 최고의 단계가 덕을 세우는 입덕(立德)이다.

인간으로서 이 셋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은 수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사마천은 이 중에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立言을 필생의 책무로 여겼다. 그리하여 죽음 대신에 남자로서 죽음보다도 더 비참하다고 할 궁형(宮刑)을 택했던 것이다.

 

*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죽음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바로 사마천의 생사관(生死觀)이다.

그리고 生과 死는 함께 하는 것이니 '삶이 위대하면 죽음이 영광스러워지고, 삶에 의의가 있으면 죽음이 값어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 사마천은 헛된 죽음을 경멸한다. 그런 죽음은 구우일모(九牛一毛 :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과 같이 하찮은 일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또 별 볼일 없는 자들이 한순간의 욱하는 감정때문에 극단적인 언행을 취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생각이 모자라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진실로 자신의 죽음을 소중히 여긴다.

죽음 그 자체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이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어렵다는 것이다. 

 

* 우리는 매일매일, 또 어떤 때는 순간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선택이 되었건, 결국은 생사에 대한 자신의 깊은 고뇌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곤경에 처했을 때라면 더욱 그렇다. 어려운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과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평소 각자의 '삶의 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질이 삶은 물론 죽음의 질까지 결정한다.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자신을 가진 사람들은 올바른 결정을 내렸고, '위대한 죽음'으로 승화되었다.

 

 

 

 

 

 

*** 윗 글들은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김영수 지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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