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인사로 군을 길들이는 정권

道雨 2011. 10. 7. 11:42

 

 

 

           인사로 군을 길들이는 정권 

 

‘아무개 장교는 누구 사람’ 식으로 사조직과 계파를 지칭하는 말이 아직도 통하는 게 장교단의 문화다

 

 

 

 

»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와 연중 갈등을 빚은 남재준 육군총장도 2년의 임기를 마쳤다.

통상 정권은 마음에 들지 않는 대장이라도 함부로 임기를 훼손하진 않았다.

 

예외가 있다면 당시 이상희 합참의장이 임기를 6개월 남겨놓고 퇴진한 일인데, 필자는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오점이라고 본다.

군 인사법에 2년으로 정해진 임기 아닌가.

당시 김장수 육군총장의 조기 퇴진은 장관으로 영전하기 위한 것이니 논외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대장 인사를 보면, 도대체 임기를 제대로 마친 총장과 의장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마구 바뀐다.

 

한민구 합참의장이 10월에 교체된다면 이 정부는 전임 김태영·이상의 의장에 이어 4명의 의장이 거쳐간다는 얘기가 된다.

육군총장 역시 임충빈·한민구·황의돈·김상기 4명의 총장이 평균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었다.

 

그나마 해군은 정옥근 총장이 임기를 마쳤고 현재 김성찬 총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군은 김은기 총장을 조기 퇴진시킨 뒤 이계훈·박종헌 총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에서는 모두 13명의 대장이 의장과 총장을 거쳐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주어진 임기를 마치는 사람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많아야 4~5명 정도다.

 

 

아프리카의 독재국가에서 쿠데타가 일어날까봐 군 수뇌부를 자주 갈아치우는 경우 말고 적어도 민주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마음에 안 들면 시키질 말든가, 일단 시켜놓고 흔들어서 쫓아내는 권력의 횡포가 정권 내내 이어진다.

 

군의 유력인사에게 줄서기 하는 풍토가 만연한 군에서 수뇌부의 교체는 장교들의 운명을 가른다.

‘아무개 장교는 누구 사람’이라는 식으로 사조직과 계파를 지칭하는 말이 아직도 통하는 게 우리 장교단의 문화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1등을 하면 진급이 된다는 믿음은 깨지고, 누구든 유력자와 줄을 대야 한다는 절박감이 장교들의 가슴을 태운다.

 

10월에 그들이 마시는 ‘초조주’에는 애간장이 녹아 있다. 총장·의장이 교체되면 하루아침에 정책이 바뀌고 작전계획이 재검토될 것이 자명하다.

1990년대에 ‘도로견부종심방어’라는 희한한 작전을 표방한 한 합참의장이 퇴진하자, 다음 의장은 취임 첫날 전임자가 만들어 놓은 작전 상황판을 뜯어내 불태워 버렸다. 죽어라고 일한 하급자만 개고생이다.

 

일선의 대장급 주요 지휘관의 사정도 비슷하다. 특정 지역, 특정 인맥이 약진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지금 육해공군 총장 전원이 영남 출신이다.

과거 정부에서 요직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진급에서 배제하는 정치논리도 지금처럼 기승을 부린 적이 없다.

 

춘추전국시대 같은 혼란 속에서 인사정보 수집에 고성능 레이더를 가동시키는 군대가 되었으니 ‘전투형 군대’라는 말도 무색하다.

 

이런 일을 천연덕스럽게 자행하면서 군 지휘의 효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국방개혁을 표방한 것은 또 무슨 이중성인가.

정권이 군 인사를 희롱하는 일만 없더라도 해결될 일을 굳이 국방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개선하겠다는 것도 말장난이다.

 

이유는 딱 한 가지.

‘인사를 통해 군을 길들이자’는 정치권력의 속내다. 여기에 군의 고위 장군들도 적극 부응했다.

 

한때는 ‘장군 되기를 포기한 대령’이라는 뜻의 ‘장포대’라는 말이 이제는 ‘장관 되기를 포기한 대장’, 즉 길들여지지 않는 ‘강직한 대장’이라는 의미가 되고 말았다.

 

정치화된 군에서 우리 군의 장교단은 북한이 아닌 서울로, 청와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 정권이 바로 원하던 바다.

이렇게 되면 독일군에게 맥없이 무너지던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군대의 폐단이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