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자료, 기사 사진

박근혜에게 역사를 묻다

道雨 2011. 11. 17. 11:48

 

 

 

              박근혜에게 역사를 묻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운데)가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개최된 ‘박정희 대통령 제막식’에 참석했다.(사진=경북도 제공)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다행이다. 원망보다는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충격이었다.

관동군, 만주국군 장교로 항일연합군 토벌에 나섰던 다카기 마사오(박정희)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진 않았다.

 

필자는 이런 주장도 했다.

 

“전시에 여성은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을 예외적인 현상으로 간주해 문제제기하는 것은 좌파적 발상이다. 굴욕당했다는 노파를 내세워 보상금이나 거듭 요구하는 건 고상한 민족의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환자였구나. 제 어머니, 제 누이도 당할 수 있었던 건데….’

 

 

그러나 필자는 정신병자는커녕, 정신 멀쩡한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 한승조씨였다. 그런 그가 환자로 몰리면서까지 이런 글을 일본의 극우 잡지 <정론>에 기고한 까닭을 보면, 그 맥락은 쉽게 이해된다.

 

당시(2005년 5월)는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이 집행되던 시점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뜻을 계승해 친일 청산을 집요하게 주장해온 386세력과 노무현 정부가 결국 박근혜의 정치적 발판을 붕괴시키고, 기득권층과 보수세력을 정치적으로 거세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들었다.”

 

그에겐 보수의 상징 박 대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일제하 다카기 마사오 중위의 행적을 숨길 수 없으니, 그 평가를 뒤집어버리자는 것이었다. 충정이 눈물겹다. 당시 박 대표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신나간 논란에 휩쓸려 공연히 과거사 논란의 벌집을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6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상전벽해다.

중학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친일 청산 부분을 송두리째 삭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해방 후 친일 부역자들이 독재의 철옹성을 쌓은 것을 두고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기술할 수 있게 했다.

학계는 거세게 항의하고 반발했지만, 정권은 오불관언 밀어붙였다. 이런 정권이 한 번 더 등장하면 망국을 축복하고 병탄을 자랑삼는 것이 집필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박 전 대표는 나서서 말해야 한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챙기는 기회주의적 처신은 치사하다. 언제 어디서나 원칙주의자로 통하길 원했던 건 그 자신이다.

한승조씨가 누설했듯이, 친일 청산 논란의 종착지는 박정희 그리고 박근혜일 수밖에 없다. 동생 박지만은 아버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 것을 막으려고 소송까지 걸었다. 되레 부친이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세 번이나 피로써 충성을 맹세한 사실만 드러냈을 뿐이지만, 그가 종착지란 사실을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이것은 보수·우익이라면 생명처럼 여기는 국가관을 뿌리부터 흔드는 문제다. 계속 회피한다면 국가는커녕, 보수·우익을 이끌 지도자 구실도 할 수 없다.

 

나아가 이제 여권과 보수세력 안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빛도 에너지도 시들한 낮달 같은 신세다. 한나라당이나 정부기관은 모두 박 전 대표의 눈치만 본다.

교과서 집필기준을 그리 만든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의 새 태양을 친일 논란의 구름이 가리는 것을 막으려는 고육책인지도 모른다.

그로 말미암아 정치권력과 학계가 역사전쟁까지 벌인다. 이런 상황에서 모른척할 순 없는 일이다.

» 곽병찬 논설위원

 

엊그제 경북 구미 생가 앞에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다. 본래 키의 3배나 되는 큰 구리 동상 앞에 선 박 전 대표의 모습은 행복했다. 그 모습은 온갖 매체에 크게 실렸다.

 

박정희의 후광은 그만큼 컸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그건 또다른 질곡이다. 동상의 품 안에서, 그는 그저 향수이자 그림자일 뿐이다. 깊고 깊은 친일과 독재 논란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미래가 있을 리 없다.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이 국가를 이끌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구리 박정희 앞에서 그는 답해야 한다.

 

첫째, 일제의 지배를 축복이라고 보는가.

 

둘째, 독재와 민주주의는 양립한다고 보는가.

 

셋째, 역사적 사실 판단을 정치권력이 해도 되는가.

 

넷째, 친일 청산 노력은 교과서에 넣어도 되고 빼도 되는 그런 문제인가.

 

하나 더. 한국에선 강한 자를 의지하고 섬기고, 그에게 주권까지 넘기는 자들이 보수·우익을 자처한다. 조선조에도 그랬고, 구한말에도 그랬고, 요즘도 그런다.

박 전 대표도 그런 이들과 가는 길이 같은가 다른가.

 

[ 곽병찬, 한겨레 논설위원 chank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