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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10돌, 우울한 초상

道雨 2011. 11. 17. 11:55

 

 

 

             인권위 10돌, 우울한 초상 

 

인권위는 세계적 모범사례였다. 다른 나라들이 앞다퉈 배우려 했다. 하지만 정부는 흔들기에 골몰했다

 

 

 

» 손준현 에디터부문장
뇌병변 1급 장애인 우동민은 올해 1월2일 급성폐렴으로 숨졌다. 그에게 세상은 거대한 감옥이었다. 그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처럼 늘 탈옥을 꿈꿨다. 여섯살 때까지 일어설 힘조차 없어 누워 지냈다. 성인이 돼서도 불편한 몸과 어눌한 말투는 감옥이었다. 우동민은 언제나 자립을 꿈꿨다. 장가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고…. 이런 꿈 때문에 우동민은 장애인 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는 자리마다 달려갔다.

 

하지만 소박한 꿈은 철저하게 짓밟혔다.

우동민은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장애인 복지 확대와 현병철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다 독감에 걸렸다. 동료는 “자정 이후 건물의 전원이 차단됐고, 30여명의 장애인들이 밤새 추위에 떨었다”고 했다. 몇몇은 고열로 쓰러졌고, 우동민을 실어간 응급차는 끝내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떠나던 날 서울 도심에는 만장이 펄럭였다. 거리의 장례식을 끝낸 뒤 그의 영혼은 마지막으로 농성했던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인권위가 승강기를 막았다.

 

이 사건은 ‘불통 인권위’를 상징한다. ‘현병철 인권위’가 인권보장 요구에 귀를 막고, 소통 대신 불통을 택했으며, 끝내 비극을 불렀다는 점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인권위는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지난해 11월 현병철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에 이어 조국 비상임위원이 사퇴하는가 하면 전문·자문위원 60여명도 물러날 뜻을 분명히 했다.

인권·여성·장애인 등 시민사회는 물론 법학자들까지 법학 교수 출신인 현 위원장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설립 이후 20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모범사례였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 사례를 배우려 앞을 다퉜다.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인권위를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부터 인권위 흔들기에 골몰했다.

2008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가 인권위의 소속을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려고 한 일부터 시작해, 같은해 5월 촛불집회와 그에 따른 2009년 조직 축소, 위원장 교체 및 인권위 파행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현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특별주문을 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남한의 산적한 인권을 외면한 채 북한만 쳐다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실 현병철 위원장의 문제는 남쪽의 문제를 철저히 외면한 데서 발생했다.

현 위원장 퇴진 요구는 박원순 변호사 사건에서 촉발된 측면이 크다.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내는 것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던 현 위원장은 아무런 의견을 표명하지 않기로 했다.

또 김종익씨에 대한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에도 침묵했다. 진행중인 재판에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재판이 끝난 사안에만 개입한다면 인권위는 있을 필요가 없다. 인터넷실명제, 사이버모욕죄 등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한국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큰 틀의 기준과 방향이 필요하고, 그에 걸맞은 촘촘한 이행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병철 하나 바꾼다고 인권위가 금세 바뀌지는 않는다.


오는 11월25일 국가인권위는 설립 10년을 맞는다. 인권·학술단체 등은 18일부터 이틀간 서강대에서 지난 10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연다. 불신과 불안 속에서 다시 한번 더!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