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조용환 변호사의 헌법재판관 인준 거부 사태다. 조 변호사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는다”며 “그러나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국회라는 공적 장소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한,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그 정도의 공개발언조차 불온시하는 이념적·정치적 공세를 퍼붓고 결국 그를 낙마시켰다. 그런 식의 공세 덕에 ‘북의 소행’이라는 주장은 더 많은 호응을 얻고 확신으로 공유될 수 있었던가?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게 6·2 지방선거 등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아직도 천안함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고들 흔히 얘기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 사회는 그걸 놓고 자유로운 공방을 벌인 적이 없다. 조 변호사 정도의 발언 수위조차 위험시하고 불이익을 주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진실공방은 설 자리가 없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같은 이조차 정부 발표를 불신하고 있을 정도로 사건은 여전히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깡통’ 수준이라던 북의 잠수정이 한-미 연합훈련 중인 남쪽 해역에 감쪽같이 잠입해 어뢰로 천안함을 격침시키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정부 발표 자체가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국가안보망이 그토록 허망하게 뚫리고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은 데 대해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없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계속 바뀐 사건 발생 시각, 문제의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1번’ 글씨나 거기에 붙은 흡착 화학물질, 역방향으로 휘어진 천안함 프로펠러 등을 둘러싼 의혹도 여전히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 확신은 윽박질러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합리적 접점을 찾으려면 이념적·지적 편향 및 편협성에서 벗어나 먼저 공정한 조사와 자유토론을 보장해야 한다. 문제는 문제를 풀려는 자세와 방법이다.
[ 2012. 3. 26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