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관련

천안함 재판관련 자료 2

道雨 2012. 4. 7. 11:05

 

 

 

  “천안함 제3부표 한주호 준위가 직접 설치”

KBS 취재진 녹취록 제출 “제3부표서 제3물체 침몰했을 가능성도 염두”

(미디어오늘 / 조현호 / 2012-02-23)


천안함 수색작업을 하다 숨진 고 한주호 준위가 함미와 함수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사망했다는 이른바 ‘제3의 부표’ 의혹에 대해 당시 이를 보도했다 기사를 삭제했던 KBS 취재진이 ‘제3의 부표’를 설명한 UDT 동지회원과의 취재녹취록을 법원에 제출했다.

UDT 동지회원들은 녹취록에서 군 당국이 밝힌 함수나 함미가 아닌 용트림바위 앞 1km 이내의 위치에서 한주호 준위가 부표(제3의 부표)를 설치했고, 그곳에서 작업하다 숨졌다고 증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KBS 취재진은 당시 제3의 부표에 함수나 함미가 아닌 ‘제3의 물체’가 침몰해있을 가능성까지 가정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23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황현택 KBS 기자의 진술서에 첨부된 UDT동지회원의 녹취록에 따르면, 정철 UDT 대전지회장은 지난 2010년 4월 6일 KBS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한주호 준위가 자신이 세운 용트림 바위 앞 부표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정 지회장은 이곳을 함수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함수의 위치는 이곳으로부터 3~4km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었고, 해상크레인도 함께 있었다.

제3의 부표 위치에 대해 정 지회장은 용트림바위 앞 단상에서 “1km 안 됐죠. 너무 가깝게 보이죠. UDT 현역병들이 고무보트 타고 뺑뺑 돌고 그랬잖아요”라고 말한 것으로 녹취돼있었다.

▲ 천안함 함미

UDT동지회원인 이헌규 씨는 자신이 제3의 부표 아래로 잠수해 목격한 것이 “함수”라고 설명하면서도 그 모습에 대해서는 “낡은 와이어가 있었다. 와이어 2개에 부표를 띄우고 나서 로프 연결을 해치문에 건 후 해치문을 열고, 김진호(함께 작업한 UDT동지회원)는 로프를 잡고 있고 나는 해치문 안으로 들어가서 탐색을 하고 나왔다. (그 크기는) 한 5m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부표에 대해 이씨는 “3월 29일 함수를 한주호 준위가 어탐으로 그 자리를 찾아서 부이를 띄웠다고 하더라구요. 소방호스와 다른 것들이 있어서 괜찮은데 함수에서 절단된 그쪽에는 날카롭다, 위험하다 그러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이 찾아서 부표를 부이를 띄웠다. 이곳에서 한 준위가 사망했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부분에 대해 이씨는 “직접 들어가진 않았다”며 “한 준위가 위험하다고 해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씨는 실제 함수가 가라앉아 있던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의 지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준위로부터 ‘함수’라며 전해 들은 이 ‘제3의 부표’와 관련해 한 준위 외에 군 당국으로부터는 아무런 설명을 들은 바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황현택 KBS 기자는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UDT동지회원들이 ‘함수’라고 주장했는데도 ‘제3의 부표’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 “UDT 동지회원들이 지목한 함수는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함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며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제3의 부표’라고 표현했다”고 밝혔다.

▲ 지난 2010년 4월 7일 방송된 KBS <뉴스9> 제3부표 관련 뉴스

제3의 부표 관련 보도를 한 취지에 대해 황 기자는 “당시 ‘제3의 부표’ 위치에서 UDT 동지회가 함수 수색에 나섰고, 별도의 장소에서 소형 크레인이 함수 인양 작업을 하고 있다면 결국, 함수 위치가 2개인 셈이 된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군은 일관되게 ‘천안함이 두 동강 났다’고 주장했고, 당시 공개된 TOD 영상에서도 사고 직후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황 기자는 “당시 취재진은 승조원 구조 직후 천안함이 2차 폭발에 의해 세 조각 났을 가능성부터, ‘제3의 부표’에 함수나 함미가 아닌 ‘제3의 물제’가 침몰해있을 가능성까지 가정 아래 둔 바 있다”고 답했다.

한편, 당시 4월 6일 오후 2시 ‘제3의 부표’ 인근에서 헬기가 등장해 물속에서 2m가량의 긴 물체를 건져 올린 상황에 대해 황 기자는 “해군 헬기 한 척이 함미와 함수 부분 가운데 해역에서 정지 비행을 했다”며 “바다 위에선 군인들이 고무보트 위에서 무언가를 헬기로 실어 올렸는데 긴 막대기 모양의 물체 2개를 하나씩 차례로 올렸고, 마지막에는 모터보트에서 잠수부 한 명이 물에 뛰어내린 뒤 헬기에서 나온 줄을 잡고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황 기자는 “이는 KBS 촬영 포인트 3곳(중계카메라, 용트림바위, 연화리)에서 동시 촬영했고, KBS 외에 인근 언덕에서 방송 4사가 모두 촬영한 가운데 진행됐다”고 밝혔다.

앞서 KBS는 지난 2010년 4월 7일 <뉴스9>에서 ‘제3의 부표’ 관련 리포트를 두 건을 방송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지만, 방송 직후 취재에 응했던 UDT동지회원들이 위치를 착각했다고 번복해 결국 KBS 홈페이지에서도 기사를 삭제해버렸다.

그러나 황현택 기자는 KBS가 UDT동지회원들에게 침몰한 함수 함미 수중 촬영을 부탁하기 위해 타사와 달리 활동 초기부터 꾸준히 접촉하면서 이들과 숙식까지 함께 하는 등 상당한 신뢰 관계를 쌓아왔고, UDT동지회원들도 자신들의 활동을 KBS에 줄곧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 지난 2010년 4월 7일 방송된 KBS <뉴스9>

황 기자는 “우리는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한 일은 없다”며 “리포트 내용이 해군이 지목한 함수 지점과 현장 수색 작업에 나선 UDT 동지회원들이 지목한 함수 위치가 충돌하고 있어 이에 대한 해군의 정확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취지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판부에 “당시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정보의 비대칭이 매우 심각했고, 그런 상황에서 현장 기자들의 취재와 보도 내용은 그나마 진실에 접근해 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며 “여러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이뤄진 합리적 의심을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그 진의를 따지는 게 바람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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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부표’ 아래 60m 길이 물체 있었다
KBS 기자·UDT대원 증언 통해 최초 확인… 용트림바위 앞

(진실의길 / 신상철 / 2012-02-28)


KBS 황현택 기자. 그와의 만남은 참으로 유쾌했습니다. 법원에 제출할 답변서를 들고 온 그를 서초동 법조타운 근방에서 만났을 때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첫 만남이었지만 여러 차례 전화로 의논해 왔던 터라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천안함 사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제3의 부표’를 둘러싼 논란입니다.

2010. 4. 7 KBS 9시 뉴스를 통해 보도된 3:38초 영상 <한주호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 취재내용은 천안함 관련 모든 매체의 보도 내용을 통틀어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를 취재해 낸 특종보도였습니다.

당시 문제의 보도가 나가자 국방부에서는 즉각 부인 성명을 내고 인터뷰에 응했던 당사자들에게 증언을 번복게 하였으며 KBS로 하여금 정정보도를 내도록 강요합니다. 그리고 이후 그 뉴스 영상은 KBS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어 사라져버립니다.

하지만, 영민한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사전에 중요한 영상을 잘 녹화해 두었다가 정말 필요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올려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지요. 아래 영상이 바로 2010. 4. 7 KBS 9시 뉴스로 보도된 내용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 2010. 4. 7 KBS 9시 뉴스 <다른 곳에서 숨졌다>

저 보도가 나간 이후 KBS는 국방부의 입장을 전하는 <반론보도>를 내었으며 당시 백령도에서 취재를 하였던 기자들은 방송통신위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KBS 경영진은 취재기자들을 징계의 성격으로 한적한 지방으로 전출시켜버립니다.

그렇게 되자 2010. 4. 7 <한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 보도는 천안함 관련 KBS 최고의 특종이었음에도 마치 <오보>였던 것처럼 비춰지고, 당시 취재기자들은 젊은 혈기에 무리한 보도를 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일단 국방부의 대승으로 끝나는 듯합니다.


난항을 겪은 제5차 & 제6차 공판

작년 8월부터 11월까지 네 차례의 공판은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이 되었으나 ‘제3의 부표’와 관련된 증인들이 나오는 제5차 공판에 이르자 재판이 난항을 겪기 시작합니다.

관련 증인들이 법정에 나오기를 꺼리거나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아예 병원에 입원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제3의 부표’ 문제는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몇 차례의 연기 끝에 열렸던 지난 1월의 제5차 공판에서는 88수중개발의 현장 책임자가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함으로써 ‘함미 인양 후 저수심 지역으로의 이동’과 관련 매우 중요한 정황자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또 다른 증인이었던 이헌규 UDT 동지회 회원은 끝내 본인이 거부하여 나오지 않았고 KBS 황현택 기자는 회사의 사정상 법정 출석이 불가능하다고 전해 왔습니다. 하여 황 기자에 대하여는 질문지를 보내어 진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됩니다.


제3의 부표 아래 60여m 물체가 존재했다

황현택 기자가 제출한 자료와 진술서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이 담겨 있으며 국방부의 주장처럼 오보를 낸 것이 아니라 세 기자 모두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취재를 하였으며 매우 신중하게 결론을 내어 보도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1. KBS 취재팀은 UDT 대원들과 상당한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함께 지냈다

2010. 4. 1일부터 열흘간 백령도에 머물었던 KBS 취재팀들은 UDT 동지회원들에게 함수와 함미 수중촬영을 부탁하기 위하여 활동 초기부터 함께 숙식을 하며 상당한 신뢰관계를 구축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자 UDT 회원들 역시 자신들의 활동을 KBS에 줄곧 공개했고 군의 천안함 수색작전 방향을 간접적으로 전달해 KBS 보도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2. 제3의 부표가 있는 위치와 함수의 위치는 분명히 다르다

제3의 부표는 용트림바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함수와 함미는 그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에 있음은 당시 현장에 있던 취재진들 누구나가 확인하여 알고 있던 사안입니다. 그리고 국방부의 공식발표 역시 제3의 부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위치는 참고부표라고 둘러댑니다. 또한, 며칠 후 제3의 부표가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 함수 크레인이 자리를 잡음으로써 제3의 부표는 함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 백령도 용트림 바위와 UDT 동지회 전우들이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를 지낸 전망대 부근 모습(2010. 가을) 

3. UDT 동지회 회원들은 제3의 부표 아래에서 작업하였다

UDT 동지회 회원들은 제3의 부표 아래에서 작업한 것에 대해 아무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작업을 하였고, 그곳은 한 준위가 발견하여 직접 부이를 설치한 곳이며, 그곳에서 한 준위가 순직했노라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UDT 대원들은 그곳이 함수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착각인지 아니면 어느 지휘관으로부터 <이곳이 함수다>라는 지침을 강력하게 받은 것인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제3의 부표 아래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UDT 동지회 회원들은 자신이 <함수>에 들어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3의 부표와 실제의 함수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취재진들은 <UDT 동지회가 지목한 함수>와 <해군이 지목한 함수>로 나누어 구분하자니 시청자들에게 혼선을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UDT 동지회원들이 지목한 <함수>는 당국이 지목한 <함수>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제3의 부표>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4. UDT 동지회원, 제3의 부표 아래에서 60m 구조물을 보았다

기자는 보도 하루 전 UDT 동지회 회원과 전화 인터뷰를 하는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됩니다.

<길이 60여m의 물체가 수심 20미터 이하에 침몰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지금까지 한 번도 거론된 적도 보도된 적도 없는 새로운 사실입니다. <제3의 부표 아래에서 구조물을 보았다>는 내용은 나온 적이 있지만 <길이 60여m>라는 구체적 증언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UDT 동지회원이 들어간 곳은 제3의 부표 아래이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함수와 비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지만 참고로 절단된 천안함 함수의 길이는 47m 정도 됩니다.

이에 대해서 국방부는 어떠한 반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UDT 동지회원이 들어간 곳은 분명 함수의 위치가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고, 그 속에서 60여m 물체를 보았다는 것에 대해 어떠한 논리로 해명할 수 없는 것이지요.

5. UDT 동지회원들의 불편한 마음

UDT 동지회원들은 4월 3일 용트림 전망대에서 故 한주호 준위 추모식을 갖습니다. 그때 추도사를 읽는 정철 UDT 동지회 대전지회장은 뼈있는 말로 추도사를 시작합니다.

“한 준위가 설치한 부표를 바라보면서 추도사를 읽겠습니다.”

참고로 실제 함수가 있는 위치는 전망대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망원경으로 보아야 할 정도로 먼 거리에 있습니다.

6. 취재진은 제3의 부표와 함수위치에 대해 여러 차례 확인하였다

KBS 취재기자들은 UDT 동지회원들에게 여러 차례 반복해서 위치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거리가 얼마가 되느냐,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 바다 중간쯤은 아니냐 등등 질문을 합니다. 게다가 저번에 저희랑 보면서 확인한 그 자리가 맞느냐는 등 수차례에 걸쳐 위치 확인을 합니다.

그때마다 UDT 동지회원들은 확인해 줍니다. 용트림 바위에서 불과 1킬로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곳이라고 확인해 주며, 그 아래에서 그들이 잠수하여 작업을 하였음을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에 취재진들이 확보하고 있는 녹취록만으로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할 것입니다.

7. 국방부에 굴복한 KBS 경영진, 유능한 후배 기자들을 징계하다

황현택 기자가 제출한 진술서를 보면서 강한 의문과 함께 분노가 일었습니다.

마치 2010. 4. 7 보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시끄러운 논란을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번 거듭된 확인과 크로스체크,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증거채증과 녹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백데이터를 확보해 놓고서도 왜 국방부의 무논리 주장과 압박 앞에 KBS 경영진이 무릎을 꿇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3의 부표’와 관련한 KBS 9시 뉴스 보도는 천안함 사건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자정신이 빛났던 취재였으며 훌륭한 보도였습니다. 그럼에도, KBS 경영진들은 국방부의 횡포 앞에 비굴하게 굴복했으며 참으로 유능한 후배 기자들을 방통위 소환대에 서게 하고 지방으로 전출시키는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맺으며

머지않아 조작과 왜곡을 주도한 국방부는 국민의 심판대에 서고, 참으로 빼어난 취재를 하였던 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세 분의 기자는 국민의 박수를 받게 될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지방으로 전출되었다가 다시 여의도로 복귀한 분들이 이 글로 인하여 다시 불이익을 받게 될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신상철

 

※ 덧붙이는 말 : 다음 편 글에서는 함수의 위치와 제3의 부표 위치가 어떻게 다른지 항해기법을 이용하여 과학적으로 입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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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어뢰’ 흰색 물질이 폭발재가 아니고 부식 생성물인 이유

                                                                                         (서프라이즈 / 철이21 / 2012-02-28)


‘1번 어뢰’ 흰색 물질이 어뢰 폭발재라고 주장하는 합조단

 

합조단은 ‘1번 어뢰’에 있는 흰색 물질이 어뢰 폭발재라고 주장한다. 알루미늄 성분이 섞인 어뢰 속 폭약이 폭발하면서 고열과 고압으로 알루미늄산화물이 생겨 선체와 어뢰 부품에 흡착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승헌, 양판석, 정기영 교수 등은 ‘1번 어뢰’에 있는 흰색 물질은 폭발과 무관하고 상온이나 저온에서 오랜 기간 부식 과정을 걸친 알루미늄 수산화물이라고 실험을 통해서 밝혔다. ‘1번 어뢰’의 흰색 물질이 폭발재가 아니고 부식 생성물인 것을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증명됐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입증할 수 있다.


“‘1번’파란색 잉크가 타야 한다” vs “철판 뒷면, ‘1번’의 온도는 단 1도도 올라가지 않는다”

이승헌 버지니아대 물리학 교수와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2010년 6월 1일 “폭발 직후 어뢰 추진 후부의 온도는 쉽게 350℃ 혹은 1000℃ 이상 올라가 잉크가 타버리게 된다”며 어뢰의 ‘1번’ 글씨가 지워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와 서 교수는 어뢰 추진체가 부식된 것은 외부에 칠해 놓은 페인트가 탔기 때문인데 일반 유성 페인트의 비등점이 최소 325℃라는 사실로 볼 때, 폭발 시 그보다 높은 열이 가해졌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합조단은 “단열 팽창으로 폭심 온도는 3000도가 넘지만 수밀리 초의 순식간에 상온까지 떨어진다”며 “반경 5m만 가도 상온으로 떨어져서 폭심에서 수m 떨어진 디스크 전후좌우로 고온 환경일 수가 없고 멀쩡할 수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송태호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교수도 8월 2일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천안함 어뢰 ‘1번’ 글씨 부위 온도 계산’이라는 논문을 통해 “‘1번’ 글씨가 폭발 때 고열의 화염에 타 버렸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됐다”며 “‘1번’ 글씨가 씌어 있는 디스크 부분은 폭발 이후에 초기 온도에서 단 0.1℃도 올라가지 않았다”고 국방부의 주장을 거들었다. 송 교수의 계산 결과를 보면 버블이 반경 6.3m까지 팽창해 어뢰의 ‘1번’ 글씨 부분을 감싸는 순간 버블의 온도는 섭씨 28도이다.

어뢰가 폭발했는데도 디스크 후면에 어떤 영향도 없어 ‘1번’ 글씨가 타지 않았다고 한다. 어뢰 폭발로 폭심 온도는 3000도인데 어뢰 추진후부에 있는 디스크 후면 온도가 0.1도도 올라가지 않는다는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뢰 스크루의 페인트가 훼손됐으므로 디스크 후면 ‘1번’ 글씨는 멀쩡할 수 없다

합조단과 송태호 교수의 주장이 가당치 않지만 사실이라고 하면 더 큰 문제점이 생긴다. 어뢰가 폭발했는데도 어뢰 추진후부 디스크 후면의 온도에 변화가 없다면 어뢰의 끝에 위치한 스크루에는 어뢰 폭발의 영향이 없었다. 과연 그럴까?

[출처 : 가을밤 님 블로그] 위 사진 크게 보기

‘1번 어뢰’의 스크루를 보면 심하게 훼손돼 있다. 위 언론사가 찍은 사진에는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스크루에 흰색 물질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가을밤님이 정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검은색 페인트가 벗겨져 은백색 금속이 드러나 있고 그 위에 흰색 물질이 붙어 있다.

합조단과 송태호 교수가 주장한 대로 흰색 물질이 어뢰 폭발재고 어뢰 폭발이 어뢰의 끝 부분에 있는 스크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검은색 페인트가 온전한 상태에서 그 위에 흰색 물질이 붙어 있어야 한다.

국방부는 2010년 12월 12일께 전쟁기념관에 전시했던 ‘1번 어뢰’를 회수해 갔고, 대신 ‘1번 어뢰’와 거의 유사한 모조품을 제작해 전쟁기념관에 전시했다. 위 사진은 가을밤 님이 촬영한 ‘1번 어뢰’ 모조품이다. 흰색 물질이 어뢰 폭발재고 어뢰 폭발이 어뢰의 끝 부분에 있는 스크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위 ‘1번 어뢰’ 모조품처럼 검은색 페인트는 온전하고 그 위에 흰색 물질이 붙어 있어야 한다.


사진상에 나타난 스크류 프로펠러를 보니 페인트칠이 두번이상 들어갔네요. 첫째로 강철이나 알루미늄등 철분 표면에 칠하는 (약간의 녹색의 색소가 들어간 ‘회색’ 표면) 방수용 코팅 페인트 ‘초벌’(Prime paint coating) 작업으로 보여지고, 두 번째로 날개 외곽의 검은색 부분은 ‘완성’용 페인트칠 (Finish paint coating)로 마무리된 프로펠러였네요~! [문학산 님]

스크루의 페인트가 심하게 훼손됐다.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어뢰 폭발의 충격과 열로 훼손되거나 수년 동안 부식 과정을 거치는 경우다. 만약 어뢰 폭발의 충격과 열로 스크루의 페인트가 훼손됐다면 ‘1번’ 글씨도 훼손돼야 한다. 그러나 합조단은 어뢰 폭발이 ‘1번’글씨가 있는 디스크 후면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번’ 글씨가 멀쩡한 이유를 만들려다가 스크루의 페인트가 벗겨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1번 어뢰’의 흰색 물질은 폭발재가 이니고 스크루의 알루미늄 성분이 부식돼 생성된 물질이다

‘1번 어뢰’ 전체를 두고 볼 때 흰색 물질이 주로 스크루에 있다. 스크루의 성분은 알루미늄 86%, 규소 14% 합금이다. 샤프트나 추진후부 등 다른 부분은 적갈색으로 녹이 난 것으로 보아 대부분 철이다. 흰색 물질이 폭발재고 폭발 직후 퍼져 나갔다면, ‘1번 어뢰’에 일정한 방향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 폭발 후 일정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침전했다면, ‘1번 어뢰’에 골고루 분포해 있어야 한다. 흰색 물질이 주로 스크루에만 붙어 있는 이유는 스크루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고, 그 알루미늄이 부식돼 흰색 물질이 된 것이다. 이승헌, 양판석, 정기영 교수 등은 흰색 물질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알루미늄 부식 생성물인 알루미늄 수산화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1번 어뢰’의 흰색 물질이 다른 배의 스크루에도 붙어 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004379  

배탄 경력만 25년인 naslon 님이 스크루가 하얗게 된 자신의 배(모터보트)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스크루가 하얗게 된 것은 알루미늄 부식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기저기 긁혀서 표면이 벗겨져 간 상태에서 2년 이상 바닷물 속에 있어야 부식된다”고 글을 올렸다.

http://www.scubadubacorp.com/Anodes-electrolysis.htm  

위 사진들은 미국 항구에 있는 배의 스크루 사진이다. 저 스크루에도 ‘1번 어뢰’ 스크루와 같이 흰색 물질이 붙어 있다. 사진 출처 주소로 들어가면 스크루 흰색 물질이 어뢰 폭발재가 아니고 부식 생성물임을 알 수 있다.

‘1번 어뢰’ 스크루를 다시 보자. 검은색 페인트가 심하게 벗겨졌다. 위 미국 항구에 있는 배의 스크루보다 상태가 훨씬 안 좋다. 1차로 어뢰 폭발열에 의해 스크루의 검은색 페인트가 심하게 훼손됐고, 2차로 스크루의 알루미늄 성분이 장시간의 부식 과정을 거쳐 흰색 물질의 부식 생성물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1번 어뢰’ 스크루의 훼손 상태를 상태를 보면 추진 후부에 있는 파란색 1번 글씨가 멀쩡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누가 썼는지 그 오만함과 무모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1번 어뢰’의 출처다.

 

철이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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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절단면, 폭발로 저런 모양 나올 수 없어”

[천안함 2주기] 카이스트 전문가·신상철 “절단형태 삼각형, 폭발충격 없었다는 증거”

(미디어오늘 / 조현호 / 2012-03-20)


천안함 2주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일부 공학 전문가 사이에서도 천안함 선체의 절단 형태가 폭발로 생길 수 없다는 분석이 제기돼 주목된다. 함미 우측에 생긴 스크래치를 들어 사고에서 반드시 좌초가 있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민군합조단 민간위원)도 절단된 부위가 삼각형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재판정에서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카이스트 소속 전문가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방부 합조단이 지난 2010년 9월 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 나오는 절단된 함미와 함수를 이어놓은 시뮬레이션 그래픽(보고서 97쪽)과 사진을 두고 “절단된 면이 크게 보면 삼각형의 형태인데 아래에서 폭발해 그 충격이 위로 솟구쳐 올가가는데 어떻게 이런 형태가 유지되느냐”고 비판했다.

이 전문가는 “폭발이 일어났을 경우엔 무슨 형체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형체가 된다”며 “물리적으로 볼 때 이런 단면을 형성하면서 폭발이 일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스터빈과 연돌의 상태에 대해서도 그는 “가스터빈 덮개 부위에 충격이 강타했는데 어떻게 가스터빈과 그 덮개가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느냐”며 “연돌 역시 충격을 받으면 이런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수 함미와 절단면을 나타낸 시뮬레이션 그래픽 ⓒ합조단 천안함 조사보고서  


천안함 함미와 함수 옆모습을 나란히 이어놓은 사진 ⓒ합조단 천안함 조사보고서 


함미 선저 부위에 스크래치 현상이 나타난 함미 인양 초기 사진을 들어 이 전문가는 “사건초기 인양된 함수, 함미와 절단면 등을 봤을 때 좌초로부터 사고가 시작된 것이 분명해보인다”며 “소나돔이 손상되지 않을 정도로 그라운딩 된 상태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의 심리로 속개된 신상철 대표의 천안함 의혹관련 명예훼손 사건 공판기일에서 신상철 대표도 합조단 조사보고서의 그래픽 모양을 들어 “이는 뭔가가 직접 들이받은 형태이지, 폭발의 잔해는 아니다”라며 “폭발의 결과물이라면 절단면의 윗부분도 다 날라갔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신 대표는 “내가 합조단 위원을 할 때 시뮬레이션한 이 사진을 공개하지 않을 줄 알았다”며 “충돌 부분을 자세히 보면 둥근 형태로 말아 올려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판정에는 예정됐던 증인인 이원보 전 2함대 22전대장(해군대령)과 김태호 전 해군 2함대 정훈공보실장(해군소령)이 불참해 증인 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 측은 “한 사람은 제주해군기지에 가 있고 한 명은 훈련이 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새로 교체된 재판부(박순관 부장판사)가 지금까지 제출된 증거와 증언내용 등이 소개됐고, 검찰의 공소요지 설명에 이어 피고인인 신상철 대표의 천안함 프리젠테이션을 하도록 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3일 오후 2시에 진행되며 김태호, 이원보 증인과 박형준 전 실종자가족대책협의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천안함 함미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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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명 목숨 잃었건만…당시 지휘라인 징계는커녕 되레 승진

 

천안함 사건 2주년(26일)을 앞두고 당시 목숨을 잃은 46명 장병들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군 지휘관 중 누구하나 이들의 희생에 대해 책임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책임자들은 대부분 징계는커녕 오히려 승진했고 징계처분을 받은 이들도 이에 불복해 징계가 취소되거나 완화됐다.

 

21일 국방부에 따르면 2010년 6월 감사원의 천안함 직무감사 결과 장성급 13명을 포함해 총 25명의 장교가 징계 통보를 받았다. 이 가운데 12명에 대해서는 군법에 의거해 사법처리를 권고했다.

같은해 11월 군 검찰은 황중선 전 합참 작전본부장(중장)을 비롯해 박정화 전 해군작전사령관(중장), 김동식 전 2함대사령관(해군소장), 최원일 전 천안함장(중령) 등 4명을 군형법상 전투준비태만과 허위 보고 혐의로 입건했으나 기소유예 또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됐다.

이후 열린 군 징계위원회는 1명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 5명의 장성에게 감봉·견책, 4명의 영관급 장교에겐 근신·견책 등의 경징계 처분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징계처분에 불복하거나 항고해 김학주 전 합참 작전참모부장(근신→견책·감경), 박동선 전 2함대사령부 작전참모(근신→견책·감경), 이원보 2함대 22전대장(근신)은 징계가 완화됐다.

양철호 전 합참 작전처장과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 정기웅 합참 지휘통제실장, 백종찬 합참 지휘통제반장 등 나머지 4명은 징계가 아예 취소됐다. 감사원 결과에서도 이들의 지휘책임을 문제 삼았음에도 군 스스로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

결과적으로 김동식 전 2함대사령관과 박정화 전 해군 작전사령관만이 각각 정직3월과 감봉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김동식 소장은 징계에 불복해 법원에 징계무효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지난해 11월 1심에서 패소했다.

더욱이 징계를 받았거나 징계 대상에 올랐던 이들 상당수가 진급하거나 군의 요직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심지어 천안함 사고 책임에 따른 문책성 인사도 없었다.

김학주 합참 작전참모부장은 지난해 11월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중징계를 받았던 김동식 소장은 해작사 부사령관에 보임됐다.

감사원 감사결과 징계대상자로 분류된 직후 전역한 김기수 전 합참 전력기획본부장(예비역 중장)은 요직인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안함 사고 당사자이면서 징계유예처분을 받았던 최원일 전 천안함장(중령)은 해군본부에 근무하다 지난해 12월 해군 교육사령부로 옮겨 해군 교범 작성을 책임지고 있다.

이밖에 징계대상자로 분류된 이기식 합참 정보작전처장(해군 준장)은 소장으로 진급한 뒤 현재 2함대 사령관을 맡고 있다.

징계가 취소된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육군 소장)은 지난해 4월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으로, 징계 대상이었던 최병로 전 3군사령부 작전처장(육군 준장)과 전병훈 전 해병대사령부 참모장(준장)도 소장으로 진급했다.

군 관계자는 "군 내부에서도 당시 지휘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수위와 후속 인사를 두고 말들이 많았었다"며 "천안함 피격 이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다면 오히려 군이 더욱 신뢰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같은 군인으로서 유감이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ohjt@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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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 합조단은 ‘합숙’과 ‘외출금지’를 요구했다

천안함 사고의 진실은 그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야 말 것

(서프라이즈 / 신상철 / 2012-03-26)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지 오늘로 어느덧 2주기가 되었습니다.

그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남편, 아들,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분들로서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고 가슴 한켠을 도려낸 듯한 고통으로 오래 남는 법입니다. 다시 한 번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천안함 사고’ 이후 저의 사고(思考) 역시 그 지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2년 전 오늘, 그 차가운 물속에서 정지한 채 벽에 걸린 시곗바늘처럼, 쉼 없이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당시의 상황 속으로 빠져들곤 합니다. 그간 수도 없이 반복하여 찾고, 검색하고, 정리하고, 기록해왔습니다. 보도된 기사들은 물론 사진과 영상들을 보고 또 봤습니다.

천안함 사고의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의 길로 접어든 후 이제 저는 돌아가려야 돌아갈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앞을 보고 갈 뿐입니다. 그렇게 지나버린 두 해를 돌이키며 주마등처럼 스치는 과정과 시간들을 거슬러 그 처음을 떠올려 봅니다.

 

▲ 지난 2010년 3월 28일 밤 방송된 KBS <뉴스9> 톱뉴스


처음부터 ‘합숙’을 요구했던 합조단

천안함 사고(2010.3.26)가 난 지 20여 일이 지난 4월 15일경, 저는 국회 추천으로 천안함 민군합동 조사단의 민간조사위원으로 ‘천안함 진상조사 민군합동조사단’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합조단의 문병옥 준장(대변인)이 제게 전화를 걸어와 ‘합숙을 준비하여 평택으로 오라. 숙식은 해상에 떠있는 독도함에서 한다. 외출은 일체 금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첫 느낌부터 황당했습니다. 합조단이 무슨 대입수능시험 출제자가 들어가는 곳도 아닌데 왜 합숙을 해야 하며, 육상 거치대에 올려져 있는 천안함을 조사하면서 왜 숙식은 바다에 떠있는 독도함에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외출을 금지하겠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명쾌한 설명도 없이 그저 그렇게 정했으니 그에 따라야 한다는 그의 말 속에서 비릿한 압박감이 묻어 나왔습니다.

심지어 제가 “그러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조사가 끝날 때까지 나올 수 없단 말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변했습니다. 그 답을 듣고 저는 바로 합숙을 거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요청하면 그때마다 가서 조사를 하겠다고 합조단에 통고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천안함 사고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과 함께 정부와 군이 진실의 대부분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밝히고 있던 과정이었으며 그 내용을 칼럼으로 인터넷에 게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합조단 요구대로 합숙을 하게 된다면 자유로운 검색과 글쓰기가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에 합숙을 거부하였던 것이지요.

이후 합조단과는 몇 차례의 통화를 거쳐 합숙은 하지 않되 중간조사와 최종조사에 참여하기로 하고 2010년 4월 30일 평택 2함대로 가서 천안함에 대한 첫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조사 전 브리핑에서 미국조사단, 영국조사단 그리고 합조단은 이미 사고원인을 ‘폭발’로 결정해 놓은 상태였으며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설명으로 채워갔습니다.


천안함은 온몸으로 좌초를 말하고 있었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기초적인 정보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처음부터 사고원인을 ‘폭발’로 정해놓은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돌아오는 것은 ‘박제된 강요’뿐이었습니다. 저는 논쟁을 접고 천안함 선체를 조사하자고 요구하였고 미국, 영국 전문가들, 학계 전문가와 군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으로 가서 반 토막 난 채 거치대에 올려져 있는 천안함 선체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배와 함께 살아온 저는 어쩌면 ‘천안함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제 젊은 시절 십수 년간 배우고 경험하고 체험했던 모든 지식과 경험이 하나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천안함의 진실규명을 위해 쓰이고 있으니 한편으로 보면 ‘MB와 그 집단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쳇말로 걸려도 제대로 걸렸으니 말입니다.

선박 검사에 관한 한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한 저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함수부터 함미 끝까지 면밀히 조사를 하였지만 '폭발'의 존재를 입증해 줄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 선체 하부는 '좌초'될 때 해저를 파고들면서 심하게 긁힌 흔적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또한 프로펠러는 좌초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휘어지고(Bending) 연마된(Grinding)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평택 2함대 사령부에 거치되어 있는 천안함 함체

게다가 절단면 내부에는 폭발로 인한 고열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리적 절단으로 끊어진 케이블, 멀쩡한 유리케이싱, 나풀거리는 비닐조각조차 불에 닿은 흔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확인한 바 그때까지 합조단이 발표하는 내용은 사실과 달랐으며, 정부와 합조단은 천안함 사고의 진실을 왜곡하고 또한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조사를 끝내고 평택 2함대 정문을 나서며 저는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군이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이 엄청난 사실에 대해 국민들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조작된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즉각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직접 칼럼을 써서 그 내용을 알렸던 것이지요. 이후 합조단은 국회에 공문을 보내 저를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압박과 압력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역사의식과 민족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사람들

천안함 사건이 가진 중대한 심각성은 단지 사고의 진실을 감추고 거짓과 조작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 뿐만이 아닙니다. 장차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평화에 매우 중대한 위기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무모한 행위를 너무나 쉽게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군(軍)은 그 결과에 대해 역사적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일말의 고민과 두려움조차 없어 보이니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누누이 주장하듯 천안함 사고는 일종의 ‘교통사고’입니다. 야간에 항해를 하던 ‘선박’이 수심이 얕은 곳에서 ‘좌초’하였고, 무리하게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손상된 선체 하부로 침투해 들어오는 해수로 인해 운항에 제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모종의 수중 함선’과 충돌하는 2차 사고를 당해 반파된 후 침몰한 ‘해난사고’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이 ‘해난사고’를 ‘살인사건’으로 둔갑해 놓은 것이지요.

<KBS 9시 뉴스>에서 특종보도한 ‘제3의 부표’ - 2010. 4. 7

장차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혼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는 우리 민족의 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판단을 저리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또 하나는 국가가 전 세계와 우리 국민을 상대로 진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일을 저토록 버젓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와 군(軍)은 함부로 조작과 왜곡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역사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가졌더라면 자신들의 알량한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저토록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진실의 참모습을 기어코 세상에 드러내어 ‘거짓을 일삼는 자 거짓으로 망한다’는 진리를 반드시 입증해 보일 것입니다.

“천안함이 어디에 있었나?"
“비밀이다.”
“어디로 갔는가?”
“기밀이다.”
“속도는? 엔진상황은?”
“말할 수 없다.”
“교신내용은?”
“군사기밀이다.”

▲ 신상철 전 민군합동 조사단 민간조사위원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초적인 정보들조차도 군은 ‘비밀’과 ‘기밀’이라는 미명하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군은 새로 드러나는 진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감추고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적’의 공격 앞에 무기력하게 당했다고 스스로 주장하면서도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줄줄이 ‘진급잔치’를 벌였습니다. 참으로 괴이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안함 사건’입니다.

거짓과 조작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머지않아 천안함 사고의 진실은 그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왜곡과 조작과 거짓을 일삼는 세력들이 발을 붙이고 살지 못하도록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 가진 힘’이요, ‘진실을 향한 길’인 것입니다.

 

신상철